영화 산업에 투신한 사람 중에
거금을 버는 것을 가장 우선시하는 사람은 무척 적다.
당신이 직업을 갖고 일하는 중이라면
돈을 버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영화 업계에서 일하기보다 포르쉐나 석유 시추 장비를 파는 편이 낫다.
<잘 팔리는 시나리오의 성공 법칙> (알렉스 앱스타인 지음, 윤철희 옮김)
영화 산업에 투신한 사람 중에 돈 버는 게 가장 우선인 사람들은 개 중 영화 제작자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오로지 돈을 벌기위해서만 영화 제작을 시작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모두 일단, 영화를 사랑해서 영화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영화 제작자들은 돈을 벌어야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영화가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창작자나 배우들은 간혹 살아남고, 오히려 열광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수익을 내지 못한 영화 제작자들의 상황은 다르다. 물론, 사랑받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기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익을 내지 못한 제작자들은 결국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수익을 내지 못한 제작자가 바로 나다. 나는 두 편의 한국 영화를 개봉시켰지만, 돈은 거의 벌지 못했다. 두 편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 제작사의 수익구조는 특이한 면이 있다. 영화가 극장에서 매출을 발생 시키면, 계약에 따라 부영화발전기금(3%)을 제외한 절반 정도를 극장과 배급사가 나누어 가진다. 그럼, 배급사가가 가져가는 이 절반 정도의 금액에서 영화 제작비와 마케팅비가 리쿱된다. 만일 영화 총제작비의 손익분기점이 넘었다면, 이 때부터 수익을 배분받게 되는데 이 수익은 투자사가 60%, 제작사가 40%의 비율로 나눠가진다. 나는 한국 영화가 발전한 것은 이러한 수익 구조의 영향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국 영화 제작사는 투자에 대한 적은 리스크로(메인 투자배급사가 투자를 결정하면, 그 간 기획개발에 들어간 비용들을 대부분 회수받는다) 수익의 40%라는 보상을 얻게된다. 대신, 제작사의 기획비는 상대적으로 적게 책정된다. 제작사들은 손익분기점을 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비교적 리스크없이 뛰어들 수 있고, 목표에 매진하게 된다.
한국영화 제작자들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로 10년마다 곗돈 탄다는 얘기가 있다. 그렇게 10년을 버티다보면, 1-2개는 중박 정도로 현상 유지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이 나오고 1개는 대박(천만 관객)이 나온다는 계산이다. 트웰브져니의 경우, 이 10년 레이스에서 절반 정도를 지난 5년차이다. 5년간 두 편의 영화를 제작했고, 둘 다 손익분기점에 못미쳐 수익은 한 푼도 내지 못했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제작사 수익구조상 기획비에 할당되는 비용이 적기에 결과적으로 나는 5년간 최처 임금에도 못미치는 돈을 벌었다.
곗돈내는 10년의 기간 중에 아직 절반이 남았지만, 내가 남은 기간 대박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익 잉여금이 없는 상태에서, 기획개발비가 있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천만 영화를 기획하려면 그만한 깜냥이 있는 원작 혹은 작가 혹은 감독이라도 확보해야 하는데 계약할 돈이 없다. 남은 5년 동안 나가는 돈이라도 최소화시켜야 폐업이라도 막을 판이다.
현재, 영화 제작으로 돈을 버는 것의 난이도는 더 높아졌다. 2014년에 발간된 <블럭버스터 법칙>이라는 책에 따르면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일반적인 산업계에서 통용되는, 전체 중 20%의 고객이 수익의 80%를 가져간다는 것보다 더 극단적이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전체 중 0.001%가 수익 15%를, 0.018%가 수익 40%를 가져갔다. 대략 천 개(백 개가 아니라, 천 개)의 영화 중에 단 두 편 정도가 전체 수익의 절반 정도를 가져간다는 얘기다. 2014년도에 씌여진 책이지만, 유튜브 등으로 인한 기술의 진보가 이 경향을 가속화 시킬 것이라는 예언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디지털 기술의 진보가 '민주화' 효과를 높이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정반대의 효과를 나타냈다. 기술의 진보는 기업 편중과 승자 독식을 일으키는 원동력이다. 미디어 콘텐츠를 재생산하고 배급하고 소비하는 것을 쉽고 싸게 만듦으로써, 새로운 기술은 점점 더 전 세계 소비자들이 인기 높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영화, 책, 오페라 공연에 접근하게 해준다. 급속히 진화하는 이런 시장에서, 블록버스터와 슈퍼스타들은 더욱 타당성을 얻고 있다.
그래서 블록버스터 전략은 여전히 잘나가고 있다.
저자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석좌 교수인 '애니타 앨버스'다. 하버드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정년 보장을 받은 여자라 한다. (언니 예언이 너무 정확해서 무서워요 ㅠ)
4월 24일 개봉한 <범죄도시 4>는 개봉 5일째에 400만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 350만을 넘어섰다. 상영 점유율은 27일과 28일에 82%, 81.8%를 기록했다. 한국 영화의 전체 관람객 수는 연간 1억 1천만명대에서 6천만명대로 반타작이 났고 연 극장방문 횟수도 전세계 1위에서 8위로 하락했지만 영화 <파묘>와 <범죄도시 4>의 천만 관객 수 동원에서 볼 수 있듯이 천만 영화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천만 영화 외 손익 분기점을 넘기는 중박 영화가 없어진 것이다.
따라서 천만 영화를 제작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얘기는 바뀐 것이 없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될 가능성은 객관적으로 더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영화 제작을 계속할 것이다.
영화 업계에 있는 사람들 중 돈 버는 게 우선인 사람은 없으니까.
다만, 당분간은 극장에서 상영될 영화를 제작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