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신고합니다.
2019년 2월 영화 제작사 <트웰브져니>를 창업했다. 벌써 5년이 훌쩍 지났다.
2023년 발표한 중소기업벤처기업부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창업기업의 5년 후 폐업률은 66.2%에 이르고, 특히 예술/스포츠/여가서비스업 폐업률은 77.7%에 달한다고 한다. 대략 열 개 중에 일곱 개는 생존하지 못한다는 얘긴데, 그 와중 살아남은 세 개 중 하나가 되었다.
머니투데이 "창업기업, 5년 내 66%가 폐업... 폐업 OECD 3위" 23.10.06
트웰브져니도 나름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9년 창업 후 코로나가 터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와 <롱디> 투자가 성사되어 (그나마 코로나 초창기라 가능했던 듯...) 이 영화 두 편을 2021년과 2023년에 개봉시켰고 그 덕에 이제껏 생존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코로나와 OTT의 등장으로 인한 한바탕 혼돈이 모두 가라앉고 난 지금, 영화/드라마 시장의 지형 또한 급격하게 바뀌었다. 요즘 배우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일감이 없다고 많이들 얘기하던데 제작사 역시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투자받는 것이야 원래도 어려웠지만, 나는 체감상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진 느낌이다. 어떤 논리로 투자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감도 안 잡혔다. 어쨌든 그간 영화로도, 드라마로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는 해보았는데 역시 결과는 실패였다. 나는 한 동안 미궁 속에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투자 거절이야 늘 겪는 일이었지만, 상황 자체가 여의치 않게 돌아간다는 느낌이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일단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줄일 수 있는 비용은 몽땅 줄여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줄이는 게 아니라 몽땅 없앴음. 비용 0원 만들기
사무실 임대 비용 및 유지 비용 (내 '자기만의 방'... ㅠㅠ)
세무 비용
인건비 (1인 사업자라, 곧 나의 인건비. 참고로 최저 임금도 안 되는 금액이었음.)
진행비
개발비 (트웰브져니의 미래는? ㅎㅎ)
이렇게 나는 결국,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던 5년 전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제, 기지개를 켜고 다시 움직여보려고 한다.
며칠 전, 집에 비데가 고장 났다. 갑자기 작동된 비데 탓에 화장대까지 비데 물이 사방으로 튀었는데 그 김에 어쩔 수 없이 몇 년간 정리하지 않았던 화장대 청소를 했다. (제일 못하는 일 중에 하나가 청소임 ㅋ) 그렇게 물에 젖은 것들을 버리고, 또 버리고 하다 보니 내가 진짜 필요했던 것들이 뭔지 보이더라. 뭘 그렇게 필요 없는 것들을 싸고 지고 살았었는지.
군더더기를 빼고 본질에 집중하며 살기로 했다.
사업도 미니멀리즘으로. 그렇게 조그맣게 시작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