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사람의 육묘 일기
나의 고양이 이름은 조조.
함께 산지 1년이 지났으니, 태어난 지 한 살 하고도 몇 주가 더 지났을 것이다.
사실 난 고양이보다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사람이었다.
고양이보다는 강아지와 의사소통하는 게 더 쉽고 심플하다 느꼈기 때문이다.
그건 아마도 내가 더 친숙한 동물이라 그렇게 여겼을 것이다.
입버릇처럼 나의 장래희망은 견주라고 말했다.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 곧, 시간과 경제적 여유를 의미한다고 여겼다.
예전엔 무지했기에 그 두 가지 조건이 없더라도 사랑만으로 키울 수 있다 생각했지만,
현실을 알게 되면서는 필수조건이라 여기게 됐다.
그러니 견주가 된다는 건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충분하다는 것의 다른 말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왜 고양이를 키우게 됐냐고?
쉽게 말해 간택당했다. 친한 선배가 임보 하던 새끼 고양이(당시 이름'핑코') 구경 갔다가
핑크색 쫀득한 발바닥 촉감을 지울 수 없었다.
과거 강아지를 키울 때처럼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싶지 않아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때마침 이직을 했고, 이직한 회사는 야근을 하지 않으니 내가 마음만 제대로 먹는다면 잘 키울 수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나는 설레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조는 나의 동거 냥이 됐다.
고양이를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주의를 기울였다.
조금만 숨을 가쁘게 쉬어도 발을 동동 구르며 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구토나 설사를 하면 내가 뭘 잘못했는지, 스트레스 받을 일이 있었나 싶어 병원에 갔다. 심지어 나를 보며 윙크하는 줄 알았는데 아무리 봐도 부자연스러워 또 수의사를 찾았다.
(이는 사람으로 치면 감기 같은 '허피스 바이러스'의 증상 중 하나로 면역력이 약한 아깽이일수록 자주 나오는 증상이다)
나의 무지로 이 가냘픈 생명이 보내는 신호를 놓칠까 봐 두려웠다.
중성화 수술을 하기 전까지 자잘한 성장통은 겪었지만 다행히 지금까지 건강한 청소년냥으로 자랐다.
이제야 비로소 난 조조와의 관계를 신경 쓰게 됐다.
마치 아이가 옹알이를 할 때부터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고집을 피우고 주관이 생기기 시작할 때부터가 육아의 시작이라고 말하듯.
고양이도 점차 자기만의 루틴이 명확히 생기고 캐릭터가 생겼다.
조조는 말이 많은 고양이다.
처음 병원에 데려가서 예방접종을 맞는 날 눈치를 챘다. 이동장 안에서 계속해서 꿍얼꿍얼 말을 해대는 바람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쳐다봐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병원 안에 다른 고양이는 찍소리도 안 내고 있는데 조조는 혼자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찍소리 안 낸 고양이의 발바닥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고.
고양이마다 긴장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거라고 했다.
그래, 조조는 말하면서 푸는 스타일이었다.
조조는 사람을 좋아한다.
특히 여자 사람은 꽤 친숙하게 여긴다. 그래서 손님으로 친구가 오면 언제 봤다고 다리 사이를 오가며 인사를 한다. 경계심은 많이 없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이나 덩치 큰 남자는 경계한다. 옷방에 숨어 꼼짝도 안 한다. 한참 시간이 지나면 얼굴 빼꼼히 내놓는 정도다.
조조는 관종이다.
남자 친구와 둘이 있으면 자기가 후순위로 밀려나간다는 걸 아는지, 서랍장 문을 열어 그 안쪽 공간에 들어가 소리를 지른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에는 노트북을 점령하고, 누워서 스마트폰을 하고 있으면 그 사이를 얼굴로 비집고 들어온다. 그리고 만족스러울 만큼 만져주면 그제야 제 갈 길을 간다.
확실한 건 조조로 인해 내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고양이의 세계를 알게 되고, 운전을 배우고, 여행보다는 집에 있는 시간이 좋아지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조조에게 "엄마가 해줄게~"라는 말은 못한다. 그건 너무 남사스러운 일 같아서.
그래서 나는 그저 조조에게 '언니'라는 호칭을 쓴다.
최근 문득 내가 살 날과 조조가 살 날을 생각해봤다.
고양이가 아주 오래 산다면 욕심내서 20살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30대 후반인 내가 그 정도 나이가 되면...이라는 생각이 들자
조조와 나는 정말 같이 성장하고, 같이 늙겠구나 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생각만해도 마음 아프지만, 나와 같이 늙는 고양이.
나중에 하늘나라에서도 금방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위안이 된다.
결혼도 안하고 아이는 없지만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에 대해.
앞으로도 종종 남길 말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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