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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Aug 04. 2022

살이 닿는 기쁨

보호자가 된다는 것

"되게 듬직해요"

고작 무게 1.2kg밖에 나가지 않았던 조조를 보며 친한 선배에게 내가 했던 말이다.

도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반문하는 선배에게 난 그저 배시시 웃었다.

기대기는커녕 한 손에 잡힐 만큼 작디작은 고양이한테 듬-직 이라니?

그냥 퇴근해서 집에 갔을 때 나를 반기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도 모르게 듬직하다 느꼈던 것 같다.

 

처음 조조가 슬쩍 몸을 나에게 기댔던 날을 잊지 못한다.

우리 집에 온 지 겨우 한 달쯤 됐을까?

마침 선물 받은 샴푸로 목욕을 한 날이었다.

강아지도 그렇지만 고양이를 씻기는 일은 매우 고난도의 기술과 집중력 그리고 인내심이 필요한데,

그때 너무 어려서 그런지 조조는 병아리처럼 삐약 대기만 하다 금세 반항하기를 포기했다.

(지금은 어림도 없다. 발톱을 모두 세우고, 내 어깨를 타고 내려오지 않는다..)

깨끗하게 씻었다는 생각보단 몸이 더럽혀졌다 생각했는지 그 작은 몸뚱이를 몇 분간 그루밍해댔다.

혀가 닿든 닿지 않든 연신 그렇게 물기를 닦아내더니,

얼마 있다

노곤해졌는지 내 옆에 앉아 작은 몸을 내 다리에 기댔다.

그리고 어느새 잠이 들었다.


난 그제야 비로소 이 작은 생물체를 책임져야 하는 보호자가 됐다는 걸 실감했다.

무언가를 보호한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이고,

보호해야 할 대상은 약하다는 것일 거다.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강해진 기분이 들었다.

이 작은 몸을 가진 생명체를 보호해야 하는 사람.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친구 혹은 어딘가에 소속돼 있는 회사원 등이었던

나에게

또 다른 역할이 주어진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난 고양이가 조금이라도 내 몸에 기댈 때마다

기분이 괜스레 우쭐해지곤 한다.

나를 온전히 믿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잠자리에 들기 전 대부분 조조는 나와 거리두기를 한다.

캣타워나 바닥, 현관 근처 등에서 멀찍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러다 한 번씩 자신의 존재를 알아달라는 듯 훌쩍 뛰어올라

 내 배 위에 자리를 잡지만 그건 여유 있는 주말에만 가능하다.

 

조조는 자기 전에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듯 내 머리맡에 앉아 그르릉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가,

내키면 내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몇 분간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귀여운 뒤통수를 보여주며 자신이 얼마나 나를 신뢰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여느 고양이처럼 조조도 겨울에 유독 치대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런 의미로 겨울이 조금 기다려지기도 한다.


가끔 뜻하지 않은 조조의 스킨십을 받을 때면 난 고마워 어쩔 줄 모른다.

그 까끌까끌한 혀로 얼굴을 핥고 손을 꼼꼼하게도 닦아준다.

아직은 조조가 애기였던 시절 분명 넉넉했던

침대맡 공간이 이제는 좁아졌음에도 괘념치 않고 거기에 냅다 누워버리곤 한다.

흘러내리는 머리통을 쓰다듬다 모른 척 손으로 받쳐주면 기다렸다는 듯이 툭하고 머리를 맡긴다.

아무 의심 없이 온전히 나에게 모든 걸 의지하는 존재.

불순물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은 그 믿음을 사는 동안 절대 저버리고 싶지 않다.

1kg이 채 되지 않던 고양이가 5kg 가까이가 돼 가는 지금.

나는 그 무게만큼 나에게 더욱 진한 신뢰를 보내는 존재에게

사랑과 믿음으로 답하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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