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에 포장을 하는 이유

부조리과 불확실성의 행복론

by 이윤수


사람들은 왜 선물에 포장을 할까?

사람들은 왜 갑자기 화를 낼까?

우리의 만남은 과연 우연이 아니라 숙명일까?

6500만 년 전 공룡 멸종의 한 원인이 된 운석이 간발의 차이로 지구를 비켜갔다면 포유류와 인류가 지금 지구상에서 번성할 수 있을까?

나의 아버지를 어머니에게 소개해 준 그 중신아비가 부산에서 나의 외할머니를 우연히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란 존재는 지금 여기 있을 것인가?

뿌린 대로 거두어지지 않고 왜 내가 더 열심히 했는데 저 운 좋게 태어난 놈이 성공을 할까?(혹은 그 반대)

왜 세상에는 생로병사의 고통과 분쟁이 존재하며 악인과 불평등이 창궐하고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까?

신은 왜 완벽한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을까?

세상에는 이유가 없어 보이는 것에도 대부분 그 이유가 있다. 다만 우리가 그 이유를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그렇지만 반면에 세상이 인과율에 의해서만 움직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 동시에 참이면서 거짓일 수 있는 양자론과 같은 이 모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쩌면 빅뱅 직후 물질과 반물질의 완벽한 균형을 가정한다면 그것은 곧 우주의 소멸을 의미하기에 애초부터 완벽은 불가능한 자기모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인지능력을 가진 후 우주와 자연과 인간사에서 인과법칙을 찾아내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논리적 추론과 예측을 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 왔고 뉴톤과 다윈과 아인슈타인 등 천재들의 힘을 입은 근대 과학은 인간의 거의 모든 의문과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냈으며 그 결과 자연의 파괴적 힘을 회피하고 나아가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종교적 선지자들도 인과율에 기초한 삶의 지혜를 설파하여 인간들의 조화로운 공존과 구원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세상이 모순과 우연과 이해할 수 없는 불확실함으로 가득 차 있어 보이는 것은 우리가 아직 그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 자체가 그 이른바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고통에는 끝이 있지만 두려움에는 한계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불확실성을 불안해하고 안전을 추구하는 것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달시킨 본능이며 미지의 것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여 기회손실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보상에 버금가는 도파민 분비로 만족감을 얻는다는 최근의 뇌심리 실험도 인간과 동물의 호기심과 정보에 대한 욕구가 강열한 본능적 욕구인 것이 증명이 된다. 따라서 불확실성 제거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에게 당연한 본성인데 왜 또 한편으로는 평안함 속에서 무료함을 느끼고 모험을 추구하는 본성을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의 답 또한 생존전략에 있다.

모두가 추구하고 궁금해했듯이 세상 모든 것이 분명하고 이해가 되고 예측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세상 즉 환경 자체가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면이 있기 때문에 진화의 법칙은 필연보다는 불확실성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즉 불확실하고 우연이 지배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현재 환경에 가장 적합한 답을 가지는 것보다는 좀 부적합하더라도 다양한 변이를 가지는 것이 미래의 변화에 대응하기가 더 유리한 것이었다. 따라서 모든 생명체는 항상 이해할 수 있는 최선의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우연에 기초한 다양성을 선택받았으며, 본능을 넘어서는 자유 의지를 가진 유일한 종인 우리 인류도 안정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짜릿한 모험도 즐기는 모순되는 본성을 발전시켰고 그랬기 때문에 오랜 세월 기후변화를 견디고 다양한 환경을 가진 지구 전 지역에서 번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자연과 사회현상을 이해하려는 과학적 노력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안정된 문명형성의 기초가 되었지만 환경과 기후변화 등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므로 세상의 볼확실한 것을 완전히 제거하고 모든 의문의 답을 찾으려는 시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아 헤매는 헛수고이고 과욕이므로 그 불확실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며 그래야 그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우연과 불확실성도 우리의 행복과 생존에 유리하도록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현실에 적용하면, 사람들은 판도라의 상자처럼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모를 때는 일단 그것을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열어봐서 좋은 것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면 더 열어 보고 싶은 충동이 강하며 (이미 알고 있는 것에는 만족감이 감소하기 때문에) 포장이라는 호기심으로 기대감을 높여서 행복지수가 올라갈 수 있다. 이것이 사람들이 선물에 포장을 하여 너무 빨리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게 하는 이유이며 반면 나쁜 결과가 예상되는 것에는 그 불확실성이 오히려 불안을 더 증폭시키기도 하지만 그 나쁜 결과를 직면할 용기 부족이나 일말의 희망으로 일단은 묻어두고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것이 사람들이 자신의 암 검사 결과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이다. 거꾸로 사람들이 불쑥불쑥 화를 내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불안감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긴장감을 끌어올려 공포 유발의 목적을 최고로 달성하기 위해서 상대방이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화를 내는 것이다. 그리고 우연이나 숙명이란 것은 확률이거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자의적인 해석일 뿐이기 때문에 ‘우리의 만남’과 모든 현존은 우연도 숙명도 아닌 그냥 존재함일 뿐이다.

이처럼 세상이 완벽하지 못하고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단지 사람들의 집단사고로 만들어 낸 나의 생각일 뿐이다. 세상은 결코 내가 원하는 데로 움직이지 않으며 만일 누군가의 뜻대로 돌아가거나 최고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있다면 그 세상은 다른 이들의 지옥이거나 곧 멸망 할 것이다. 결국 세상은 나나 인간의 의도나 인지와는 별개로 세상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과 노력으로 좋은 원인을 만들어서 최선의 결과를 추구하되 (내가 보기에) 더 이상 이해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부조리 하며 불확실한 상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에 합당하다.

아직도 억울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가? 그럼 아주 쉽고 간단하게, 자연계에서는 때로는 의도나 원인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결과적 존재가 곧 승리이고 승자가 정의를 규정하므로 정의는 항상 승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참고문헌; 마이클 부룩스 외, 2017, 우연의 설계, 도서출판 반니

Sofia Deleniv, When Ignorance is bliss, April 2019, Dis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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