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예찬

by 이윤수


생물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속임수를 쓴다. 주위 환경에 따라 몸 색깔이 변화하는 카멜레온이나 문어의 보호색은 말할 것도 없고 꽃의 다채로운 색과 나비나 벌새의 아름다운 깃털과 얼룩말과 치타의 위장 무늬, 자벌레의 나뭇가지를 꼭 빼닮은 몸의 형체 등등 자연 속에서 살아남고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생명체가 속임수를 경쟁적으로 진화시킨 사례는 너무 많아서 오히려 속임수를 쓰지 않은 종은 이미 멸종을 해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수컷 새들의 화려한 깃털과 수사슴의 멋짓 뿔, 여성의 화장과 상시 돌출된 유방 등 번식을 위한 과시와 유혹도 일종의 육체적 속임수이다. 또한 위기에 직면했을 때 곤충이나 일부 동물들의 죽은 척 하기, 일부 새들이 위험에 처한 둥지의 새끼를 구하기 위해서 일부러 다친 척하여 천적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끌기, 침팬지가 매복장소로 사냥감 원숭이를 몰고 가기, 새들이 짝이 아닌 다른 개체와 몰래 바람피우기, 뻐꾸기의 탁란, 다람쥐나 원숭이가 먹이를 몰래 숨겨 놓거나 염탐하여 찾아내고 기만을 하는 등의 속임수 행동도 다양하다.

이처럼 모든 생물은 생존을 위해서 협력과 공생도 하지만 필요하다면 속임수를 쓰며 인간 역시 진화 과정에서 무리 생활과 조직사회화를 거치면서 네트워크를 만들어 상호협력 의존을 하는 능력과 동시에 기만하는 능력을 고도로 발달시켜 왔고 그것이 인간 생존의 필수조건이었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는 협력은 미덕으로 칭송하고 조장하면서 속임수는 공동체 파괴의 원인으로 보고 금기시하고 처벌을 해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은 지금도 기회만 있으면 속임수를 써서 타인의 물질과 짝과 권력을 빼앗는다. 심지어 재미로 상대방을 속이고 속아 넘어가면 즐거워한다. 위장과 기만이 필수인 전쟁은 목숨을 건 속임수 싸움이며 평시에도 개인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권력에 의한 속임수 독점 현상이 일어나서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기능을 과장하고 군주 국가에서는 왕권이 전지전능한 신에게서 유래한 신성불가침이라는 속임수로 저항과 반항의 명분을 없애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정권은 인민을 위한다면서 실제적으로 소수 권력자들만을 위한 독재를 펼치며 좌파들은 생산성 향상을 동반하지 않는 최저임금 인상이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상쇄효과로 노동자의 실제 구매력과 생활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성장이나 증세 없는 복지가 비효율과 경제활동의 동기훼손에 따른 경제침체 그리고 제정파탄으로 이어져 후세의 삶에 대한 착취이며 전체의 몰락으로 간다는 사실을 숨기는 정치적 속임수를 쓰며 자본주의 정권과 기업은 주주와 경영자와 노동자가 공동운명체이면서 동시에 이해가 상충되는 관계라는 사실을 숨기고 성장만 하면 무조건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속임수로 분배정책을 외면하여 과실을 독점하려 하며 학문과 예술과 문화와 제도는 이런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기도 하고 드물게 우상을 부수어버리기도 한다.

또 한 조사에 따르면 스스로 이타적이라고 자부하는 (좌파 성향) 사람이나 스스로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우파 성향) 사람 모두 (남이 보지 않을 때) 실제 행동에 있어서는 85% 이상이 이기적 행동을 했으며 최근 한국의 좌파 정권 사람들이 말로는 사회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실제로는 권력을 이용한 이권과 독점적 내부 정보를 이용한 주식과 부동산 투기 등으로 부를 축적한 사실들로 보아 이기행위와 속임수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왜 좀 더 솔직할 수 없을까? 자본주의자들의 비교적 솔직한 이기행위보다 사회주의자들과 좌파들의 인간의 본성에 거스르는 위선은 이기행위에 속임수까지 결합되어 애초부터 만인이 평등하게 잘 산다는 그 멋진 이념은 비현실적 사기성 구호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1970년대 아르헨티나와 칠레와 최근 베네수엘라 사례에서 명확히 보았듯이 오히려 공동체의 자유로운 번영과 풍요를 파괴하는 데도 불구하고 왜 솔직하지 않을까? 결국엔 이들 역시 권력을 빼앗기 위해서 대중을 속이는 것이거나 조국, 소로스 같은 부유한 강남 좌파들의 말과 삶이 다른 면피용 가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심이니 정의니 하는 수사로 위선적 속임수를 쓰지 말고 차라리 인간의 이기심과 속임수 본성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처럼 법과 관행이라는 제도적인 상호견제를 통해서 서로의 반 사회적인 행동을 막는 것이 더 솔직하고 효과적이다. 결국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든 인간에게 보편화된 속임수는 본심과 수치심을 감추는 옷과 같아서 벗어버리고는 정상적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므로 이제 더 이상 인간 속임수의 주 도구인 거짓말을 금기시할 것이 아니라 떳떳하게 드러내고 그것도 하나의 능력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어차피 인간 사회가 개인 대 개인, 집단과 집단 사이의 경쟁과 협력을 회피할 수 없을진대 육체적 능력과 미모와 지적 능력과 사교 조직능력, 공동체의 전통과 문화 축적 등과 더불어 이 속임수 능력도 하나의 능력으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굳이 거짓말 올림픽이나 거짓말 전쟁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나도 대부분 이기적이고 속임수를 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남들에게도 거짓말한다고 비난하지 말고 인간은 거짓말 능력으로도 서로 경쟁하며 사회는 속이려는 자와 이를 간파하여 속지 않으려는 자 사이의 전쟁터이며 역사상 모든 승자들은 일부분 속임수의 승리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 시련을 겪지만 결국엔 승리한다는 신화와 드라마와는 달리 현실에서 선악은 동기와는 별개로 결과로 판가름 나기에 속임수를 잘 쓰는 사람이 반드시 악이 되는 것은 아니고 그 능력으로 오히려 성공과 승리할 가능성이 높으며 (선행의 탈을 쓴 위선적 또는 진정 이타적인 일부 행동이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의 이기적인 동기에서 나온 활동이 진화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었고 결국은 이 사회를 먹여 살리고 굴러가게 한다는 진실을 밝히고 최소한 '대다수 사람들이 착하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거짓말만은 안 하는 것이 진정 솔직한 미덕이다.

요약하면, 모든 사람은 이기심과 이타성, 협력과 경쟁, 진실과 거짓의 양면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모두가 일상적으로 거짓말도 한다는 전제 하에, 겉으로 보이는 사실들 중 많은 부분은 드러나지 않은 조작과 편견과 속임수가 포함된 것이고 솔직하라는 말은 나만 거짓말을 독점할 테니 나에게 속아달라는 뜻이고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은 나를 속이면 혼내주겠다는 협박이거나 나도 속이지 않겠다는 상호계약이며 누구에게나 모든 상황에서의 정직은 속임수의 쉬운 먹잇감이므로 후세들에게 무조건 속임수를 쓰지 말고 정직하라고 가르치는 것보다는 거짓말을 간파하여 속지 않는 법과 정직에는 정직으로 응수하는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 이 사회에서 사기가 발 붙일 자리를 없애고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참고문헌 ; 매트 리들리, 이타적 유전자, 2001, 사이언스북스

니얼 퍼거슨, 금융의 지배, 2010,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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