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48 #지점이_본점을_인수한_셈
AKB 48그룹의 주 수입구조가 뭘까요?
공연? CD 판매? 굿즈 판매?
아뇨! 악수회입니다.
응? 악수회? 악수회가 뭐지?
사인회가 아니라 악수회예요. 말 그대로 악수를 하는 모임입니다.
내가 응원하는 아이돌과 악수를 할 기회를 주는 거죠. 보통 특별발매 CD에 악수회권이 들어 있습니다. 대략 악수회권 1매당 10초 정도 시간을 줘요. 그러니 20매를 사면 3분 이상, 아이돌과 얼굴을 맞댈 수 있죠.
악수도 그냥 악수가 아닙니다. 두 손을 맞잡고 서로 얘기하는 거예요.
참여하는 팬 대부분은 중장년의 오타쿠입니다. 이들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에요. 중장년이라고 아이돌 팬이 되면 안 된다는 이유는 없으니까요.
어엿한 아재인 저도 아이돌 팬입니다. 응원하는 팀이 분명히 있고요.
기회가 된다면 순수한 팬심으로 공연을 즐기고 싶습니다. 하지만, 잘 가는 편은 아닙니다. 어엿한 아재라면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랜선으로 응원할 줄 아는 자제력도 필요하다 생각하거든요. 제가 응원하는 팀이 팬 사인회 같은 이벤트를 한다고 만사 제쳐두고 달려가지는 않을 것 같아요.
반드시 현장에서 내 손으로 촬영하고 보고 싶단 순수한 열망보다는, 아재는 아재의 미덕을 유지한 채 내 아이돌을 응원해야 한다는 신념? 믿음? 그런 게 있으니까요. 주위에 생각보다 이런 아재들이 꽤 있습니다.
일본의 팬덤은 우리와 아주 다르죠. 특히 아이돌 팬덤은 정말 다릅니다.
우리식의 아이돌 팬덤 문화는 이미 성숙할 정도로 성숙했죠. 응원하는 팀이 또는 멤버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면 그건 그것대로 비난할 줄 압니다. 아티스트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비판 없이 맹목적 지지를 보내는 일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습니다.
일본은 팬덤, 정확히 중장년 남성의 아이돌 팬덤은 맹목적 경향이 지나치죠.
응원하는 아이돌에 대한 열망이 지나치게 발현되기도 합니다.
그중 하나가 단연 악수회죠.
일본의 악수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팬 사인회의 악수를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반갑다는 뜻으로 악수를 교환하고, 사인을 받고 간혹 운이 좋으면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두 손을 꼭 잡고 서로 눈을 쳐다보며 말을 하는 시간입니다.
때때로 성추행에 가까운 말이나 행동을 서슴없이 하기도 하죠. 성추행이 분명해 보이는 포즈를 미성년인 아이돌에게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건 일본 내에서도 상당히 비판받고 있죠.
게다가 악수회 티켓이 비쌉니다. 보통 CD 10매 이상을 구매해야 겨우 십몇초에서 수십 초 남짓한 시간을 얻을 수 있는 거죠. 그러니 중장년 팬들은 자신이 원하는 과도한 요구를 서슴없이 하는 경향도 있고요.
일본에서도 악수회의 폐해가 자주 지적됩니다.
실제 악수회에 참가한 팬이 흉기를 휘두르는 등 테러를 당한 일도 있었죠.
심리적 충격을 이기지 못한 미성년 아이돌이 팀을 탈퇴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고요. 악수회에 참여하는 열성 팬의 숫자도 조금씩 줄고, 악수회 자체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기획자들도 악수회의 한계를 체감하기 시작한 걸까요?
아닙니다. 악수회가 더는 돈을 벌어다 주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을 뿐입니다.
팬을 동반한 모든 콘텐츠의 확장은 새로운 팬의 유입을 전제로 합니다.
제아무리 열렬한 코어 팬이 있어도, 새로운 팬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확장력은 물론 지속성이 떨어집니다. 기존 열성팬이 새로운 팬의 유입을 막는 장벽으로 작동하기도 하죠.
AKB48이 대표적입니다. 십수 년 전 시작한 AKB48 그룹의 코어 팬들은 AKB 탄생 시점부터 3~50대였습니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이들 팬의 주력은 5~60대가 되어버린 거죠. 어느새 AKB48이 중장년 팬 이외에는 어필하지 못하는 문화콘텐츠처럼 된 거죠.
AKB 그룹의 미래가 어둡다는 건. AKB를 만든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죠.
음악산업계 전체의 규모를 생각하면 한국은 아직 일본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나라 전체의 GDP는 한국이 불과 이십여 년 만에 20분의 1에서 3분의 1까지 따라잡았습니다. 인구수로 보정해보면 거의 차이 나지 않는 수준이죠. 실제 구매력 지수인 PPP로는 우리가 2017년에 일본을 뛰어넘었습니다.
음악산업은 아직입니다. 여전히 일본은 미국에 이어 전 세계 2위의 음악 콘텐츠 시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내수용 시장에 불과하단 것이죠.
규모는 거대하지만, 성장동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
거대하긴 하지만 일본이라는 우물에 갇히고 있다는 점.
이 점을 일본의 음악 콘텐츠 기획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죠.
일본 음악시장. 특히 아이돌 음악은 전체 규모로서는 한국보다 훨씬 크지만, 일본을 벗어나는 순간 거짓말처럼 경쟁력이 사라집니다. 일본의 아이돌 콘텐츠는 불과 얼마 전까지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 시장에게 경쟁자가 없었는데 말이죠.
지금은 K-pop에 판판히 밀린다는 것. 개별 기획사의 월드와이드급 자본 동원력도 이제는 한국의 대형 기획사에 뒤처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본이 K-POP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할 순 없는 노릇이죠. 무엇보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니까요.
CJ의 프로듀스 101은 AK 총선 시스템을 가져왔습니다. 대놓고 베꼈다고는 말하기 어려워도, 레퍼런스의 상당 부분을 차용했죠.
무엇보다 프로듀스 시리즈의 무대가 AKB 전국 총선 무대와 비슷합니다. 대놓고 베끼지는 않았어도, 솜씨 좋게 베낀 건 틀림없어요.
이걸 잘 아는 한국 팬들에게는 욕을 먹고, 일본에서는 비웃음을 사죠.
그러다 엠넷은 어느 날 생각합니다.
‘차라리 이럴 거, AKB를 이 경쟁에 참여시켜 버리자’
실제 그 일이 벌어졌습니다.
엠넷은 이로써 모방과 표절 논쟁에서 벗어났고, AKB는 AKB대로 한국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함과 동시, K-POP 아티스트의 글로벌 진출에 한발 묻어갈 수 있었죠. 서로의 이해가 잘 맞은 겁니다.
AKB가 멤버들을 프로듀스 48에 보낸다는 얘길 들었을 때, 생각했습니다.
‘연구생 정도나 몇 명 보내겠지. 뭐’
그런데 웬걸! 총선 전국 순위 20위권에 들어가는 멤버가 다수.
그것도 최상위권인 10안에 들어있는 멤버도 두 명이나 있었죠.
AKB 회사가 전략적으로 보낸 멤버도 있지만, 대부분 자발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게 더 놀라운 일이었죠. 멤버들도 잘 알거든요. AKB에 미래가 밝지 않다는 거.
K-POP은 전 세계 팬이 골고루 즐기고 있죠. J-POP, 특히 J아이돌은 사정이 다릅니다. 일본 내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K-POP은 이미 제작은 과정에 참여하는 인원만으로 이미 글로벌합니다. AKB 그룹으로서는 소속 아이돌이 J-아이돌 꼬리표를 달기보다 K-POP 그룹에 합류하는 게, 세계 진출에 유리하다는 걸 깨달은 거죠.
이게 표절 또는 모방 논란이 있는 엠넷의 프로듀스 시리즈에 소속 멤버를 대거 보낸 이유입니다.
한마디로 엠넷이 프로듀스 101이라는 지점을 만들고 프듀 48로 진화하더니, AKB라는 본점을 흡수해버린 모양이죠.
한마디로 지점이 본점을 인수한 모양입니다.
프로듀스 48로 탄생한 ‘아이즈원’
한일 간 문화역전의 아이콘이 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