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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Mar 04. 2024

특별한 식사

17년지기 동성의 친구와 연인이 되었습니다.

2018년, 4월.

집을 떠나 타지 생활을 하다 보면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여하간 이방인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하루 웬종일 지내야한다는 것은, 내가 낯선 환경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상당한 피로감을 주었다. 

그 당시는 곤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곤은 상경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 이렇다할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헬스장과 중고서점 등을 오가며 생활비를 벌었지만 주야가 바뀐 생활 때문에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어울리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당시 나는 출판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마감일이 닥쳐오면 새벽까지 원고를 교정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새벽 늦게까지도 곤과 곧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출간 예정 작품 수가 유난히 많은 달이었다. 곤이 집에 놀러와 자고 가지 않겠냐고 했다. 거절했다. 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품에는 해 뜨기 전에 교정해야할 원고들이 한아름 안겨 있었고, 집에 들어가서도 잠깐 눈을 붙였다가 다시 일에 달라붙어야 했다. 놀러 가도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즐겁게 보낼 짬이 없었다. 나는 해야 할 일이 많아 지금 놀러가는 건 오히려 미안한 일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너 앉혀놓고 네 앞에서 일할 것 같아.”

“뭐 어때. 놀러와.”


아무리 생각해도 그림이 이상했다. 친구 집에 놀러가 놓고 나는 밥 먹고 일을 한다고?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느긋하게 술잔 기울일 여유도 없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괜찮다고, 뭐 어떠냔다. 

몇 번쯤 거절하다가 더 거절하는 것도 힘이 들어 가겠다고 했다. 연락을 드문드문 하면서도 방에 찾아가본 건 처음이었다. 독특한 모양새의 자취방 한쪽에는 방음벽을 두툼하게 쳐놓은 작업실이 있었다. 곤이 작업실을 구경시켜주었지만 문외한인 나는 방음재라는 게 생각보다 폭신폭신하다는 것, 버튼이 많은 기계가 여러 종류 있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 



자그마한 식탁에는 라면과 레토르트 육개장, 동네 초밥집에서 포장해온 모듬 스시 세트가 놓였다. 둘이 마주 앉아 식사를 하기엔 너무 작은 테이블이었지만, 오히려 차림상이 두둑해 보여서 좋았다. 

일이 너무도 힘들었는데, 누가 차린 밥상을 앞에 두니 조급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제야 냄비 안 내용물에 눈이 간다. 너구리 모양 어묵이 너무 귀여웠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정말로 일을 했다. 교정지 백여 장이 넘어가는 동안 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조금 불편한 마음으로 일을 마쳤다.


마감 기간이 닥쳐오면 압박감 때문에 좀처럼 잠에 들지도 못했고, 잠이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라 깨는 일이 다반사였다. 일이 끝나자마자 칫솔이고 뭐고 챙겨온 게 없으니 집에 가겠다고 했더니 남은 걸 내줄 테니 자고 가란다. 그리고 곤이 암막 커튼을 쳐주면서 여기서 자보라고 했다. 잠이 잘 올 거라고.


어떻게 거절해야 할까? 어떻게든 빨리 끝내버려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일에 온 정신을 다 쏟아서인지 거절할 구실을 생각하는 것도 피곤해졌다. 좀 망설이던 나는 결국 대강 화장을 지우고 곤이 내어준 자리에 누웠다. 잠 자는 방에 냉장고가 있어 이따금씩 웅웅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래서 잠에 들 수나 있겠나 싶었는데, 어째선지 그 뒤로는 기억이 없다. 그날은 꿈도 꾸지 않고 잤다.




2020년, 12월.

3년이 지났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연말연시는 혼자 보내게 되었다. 만나는 사람도 없다. 그때 곤의 연락이 왔다. 연락이라 해봐야 정말 아주 끊어지지만 않을 정도로, “잘 지내?”, “그럭저럭 ㅇㅇ”, 드물게 주고받은 것이 전부였는데 마침 곤도 연말연시는 혼자 보낼 것 같단다.

그때는 거절할 구실도 없었다. 만나서 무슨 얘길 하지? 



와인을 한 병 다 쏟아부어 만들었다며 곤이 자신 있게 내어놓은 음식은 아무래도 정체가 불분명했다. 큼지막한 고기가 갈색 소스에 푹 졸여져 있었다. 입에 넣고 보니 낯선 맛이 났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서유럽 어느 작은 마을에서 가정식을 대접받은 기분이었다. 저 먼 어딘가의 소피아 할머니가 얼큰하게 끓인 50년 전통 스튜를 떠먹는 듯한 느낌이다. 사먹는 음식 같은 맛이 아니었다. 다 먹어도 혀가 얼얼하거나, 물이 당기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맛이 어찌나 기쁘고 기꺼웠는지 모른다.


“너무 맛있다.”

“와인 빨이지.”

“소스는 네가 만든 거잖아.”

“맛은 어때?”

“맛있어.”


도무지 제대로 된 조리를 할 수 없는 환경이라 냉동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든가, 배달 음식과 편의점 음식, 외식으로 끼니 대부분을 해결하는 원룸 자취러에게 과분할 만큼 따스한 밥상이었다.

할 이야기가 거의 없어서 식사 후 제야의 종소리 중계방송이 시작되기 전까지 게임 실황 방송 따 따위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타종 행사는 사실 내게 아무런 감흥도 의미도 없었다. 1월 1일은 12월 31일의 다음 날이다. 그 날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곤도 그건 동의한다고 했다. 

새해라고 다를 게 있나, 매번 똑같았어. 

그리고 다시 정적. 

말이 없는 동안에도 따뜻한 밥상의 기억이 오래 남았다.




2022년.

2년이 지났다.

곤과 나는 연인이 되었다. 곤은 여전히 따뜻한 밥상을 차려준다. 왠지 모 애니메이션의 밈이 떠오르는데, 내가 메신저로 울적하다고, 힘들다고 한 날엔 곤이 조금 더 정성을 들여 한 상을 꾸린다. 좋은 거 나가 사먹는 대신, 평소보다 조금 신경 써 좋은 식사를 차리는 것이다.

언젠가 곤에게 말한 적이 있다. 돌이켜 보니 내가 가장 힘들었던 때, 어쩌면 힘들어질 수도 있는 기로에 있을 때 네가 항상 따뜻한 음식을 내어주었다고. 나 조차도 나를 위해 한 끼 대접하지 않는 무기력감, 쓸쓸함 가운데 뱃속을 따끈하게 데우는 음식으로 외로움을 채워주었다고.


“오늘 너무 정신이 없어. 왜 이렇게 일이 몰리는지 모르겠네.”

“아이고, 좀 맛있는 거 먹을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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