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이하기 전, 지친 나를 위한 것들
매년 이맘 때쯤되면 드는 생각이 있다. 올해도 글렀나? 1월의 다짐은 무색하게 흩어지고, 2월에 설연휴까지 지나고나면 어느새 3월이 바짝 쫓아와 있기 때문이다. 이건 사실 숫자 탓으로 돌릴 게 아니다. 내가 지나온
두 달동안 거의 변화없이 있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 처음 마음 먹었던 것들을 돌아본다. 나는 6주 운동
챌린지를 끝냈다. 그러면 몸이 많이 건강해지고 살도 빠졌는가? 아니, 적어도 식습관이라도 조금은 고쳤는가? 정답은 NO. 살은 고작 1키로가 빠졌을까 싶고, 운동도 하기 싫어졌고, 과자는 좀 덜 먹었지만 그렇다고 깔끔하게 끊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이제 영어 공부로 넘어가볼까? 영어 공부는 더 심하다.
유닛 1의 5문장을 외우고는 감감 무소식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을 이럴 때 쓰면 참 좋으련만,
이건 비(슬플 비(悲))소식에 가깝다.
하지만 나에게 손을 내미는 희소식이 아침에 있었지. 바로 카톡 메시지였다. '지친 나를 위한 것'들을 적어보라는 이번 주의 주제! 우와, 주제를 받기도 전인데, 나는 지난 주말에 이 주제에 맞는 일을 두 가지나 해버렸자나. 예능신이 있어서 유재석을 돌본다면, 쓰기신이 있어서 나를 가여이 여기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 지난 주말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다시 되돌아가보자. 레츠고!
첫번째로 나는 책을 읽었다. 그 책의 제목은 바로 <마음의 문제-한수희 저> 였다. 이 책은 예전에 글쓰기 모임에서 추천받은 책이었는데 친구가 선물을 해 줬다. 출간되고는 인기가 많아서 도서관에서 빌릴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던 차, 책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음에도 친구가 딱 이 책을 선물로 주었다.
세 달 전에 선물을 받고 나는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 이유는 하나, 재미가 있어서. 둘, 이 사람이 나같아서. 오죽하면 책을 잘 읽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남편이 잠깐 들춰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거 자기가 쓴 거 아니야?" 이 정도면 말 다했다.
작가의 모든 면이 나와 닮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하는 생각 (돈을 아끼고 아이들을 걱정하며, 매일 몸무게를 재며 실망도 했다가 달리기를 하는 생활), 허를 찌르는 유머가 나를 사로잡았다. 너무도 비슷한 결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내 뇌를 거쳐서 이야기를 해 주는 것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다지 오바쌈바는 아니다.
사실 나는 책을 두 세번 다시 읽지 않는 편이다. 왜냐면 재미가 없고 완독한 책을 다시 들춰보는 게 썩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명품관에서 매일 신상을 찾아대는 여자처럼, 나는 주로 새로운 책을 읽곤 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아이와 남편이 나란히 미디어에 빠져서 시간을 보낼 때, 다시 한 번 읽어봐야지 하고 미뤄두었던
책을 꺼내서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앉았다. 다 알던 내용이었는데도 너무나 재밌어서 후루룩 반 권을 읽었다.
맞아맞아. 여기가 재밌었지. 그래그래. 이거 나도 그래. 혼자서 맞장구를 치면서 말이다. 아직 책은 반이 남아있고, 그 재미가 빨리 떠날까봐, 아껴서 읽는 중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마음이 지칠 때,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나만 소개하자면, <쓸만한 인간- 박정민 저>이다. 박정민은 배우이고 지금은 출판사 사장이기도하다. 그리고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자면, 이 책은 절판되었다. 그는 당시에 쓴 글과 자신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 책 출간을 정지시켰다. (와우! 얼마나 벌면 책을 내서...그걸 절판까지 시킬 수 있나요? 부럽습니다. 진심으로요.) 여하튼 나는 이 책을 30대 초반에 사서 읽고, 뭐 이런 다재다능한 사람이 있나 감탄했다가 30대 중반에 다시 이 책을 꺼내들었다. 이유는 힘들어서.
코로나로 엄마의 식당이 어려워지고 나는 종업원으로 일했다. 무보수였다. 그리고 주말에는 버스를 타고 나가 라디오 부스 밖에 앉아서, '작가'인 척을 하며 돈을 벌어왔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었다. 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돈이기도 했다. 나는 새끼작가 막내작가를 거친게 아니라 그냥 작가가 되었다. 시골 지역 방송으로만
나간다고 해도, 날 뭘 믿고 그렇게 써 줬나 지금도 고마울 따름이다. 주중 5일동안 무엇을 쓸까 고민하며 주말 방송의 원고를 만들었다. 손님이 없을 때 가게 한 켠에 앉아서 쓰기도 하고, 손님이 많은 날 퇴근하고 쓰기도 했으며, 어떤 날에는 엄마에게 부탁을 하고 집에서 종일 쓰기도 했다. 그 때 나를 잡아준 것이 <쓸만한 인간>이었다. 나에게는 두 가지로 해석되었다. 쓸만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 쓸모있는 사람. 당시의 나를 돌아보건대, 그 두 가지가 필요했다. 쓰임 받길 원했고 쓸 만한 이야기가 풍부하길 갈망했다. 그런 면에서 그 책은 나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서 나는 왜 <마음의 문제>를 읽고 있는 것일까? 글자 그대로 나에게 마음의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아이를 대하는 방식, 남편을 대하는 태도, 나 스스로에 대한 점수매김... 나 하나 데리고 살기도 어려운 성정의 사람이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낳았으니 부대낌은 최상을 찍는다.
뾰족한 해결책도 없고,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실망만 가득찰 때 다시 책이라도 읽어보는 것이다. 장담하건대(장담...오늘만 잠시 해볼게요.), 책 자체가 나를 구원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책에 씌여진 한수희 작가의 생활과 그녀가 밟아온 길들이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잠재워준다. 그리고 야 뭐 어때 나도 이렇게 살았는데, 그래도 살아져. 라고 말해준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내 손으로 해답을 찾는 셈이다. 지친 나에게 물을 먹이듯이 다시 책의 한 구절, 한 단어를 흡수하며 생기를 되찾는다. 이런 연유로 내가 '어떤 책'을 다시 읽는 날들도 종종 있다.
두번째로 운동 크루 구독을 취소했다. 2024년 10월에 운동을 시작했으니, 그래도 지금까지 꽤 오래 유지를 했다. 이 운동이 아니었다면, 나는 더 몸이 무거워지고 정신이 산란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이 모임장에게 너무도 감사하고, 어거지로 끌려온 나에게도 고맙다. 이번에 6주 운동을 끝내면 다시 3월에는 주 3회 운동이 시작된다. 이 시점에서 나는 지난 6주 동안의 나를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닥 성실하지 못했다. 꾸역꾸역, 의무감으로 간신히 하다보니, 초반의 마음은 다 사라졌고 그래서 도대체 이게 언제 끝난다고? 하면서
종료 날짜만 세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열정 넘치는 사람들이 그에 상응하는 상을 받고, 몸도 변화하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면서 나에 대한 자책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 못 했지? 나는 왜 변화하지 않았지? 나는 왜.. 나는...그러니까 왜 !!!! 이유랄게 있을까 싶다. 그냥 그런 시기도 있는 법이고, 간절히 원하지도 않았으면서 루틴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내 판단 오류일 뿐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운동 구독을 취소했다. 적어도 내 의지로 혼자 아침에 운동을 하고 식습관도 잡아가고 싶어졌다. 그것이 완벽이 아닐지라도.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다시 구독을 하면 된다.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어떤 날에는 질투하면서까지 운동 크루의 본래 취지를 잃은 나를 그곳에 두는 것은 독이다. 늘 할 수 없다고 지레 믿으며 '시작부터 포기하는 나'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만나고 싶어졌다. 스스로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비판과 비난을 도려내고. 격려와 이해를 더하면서.
나는 자주 누군가의 그림자와 발자국를 따르며 살았던 것 같다. 책을 읽고 운동을 하면서도 그것이 스스로의 힘이 아닌, 누군가의 등에 올라타서. 그 사람이 길을 잃지 않고, 내 곁에 있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런데 이제는 그런 마음과 관성들을 한 번은 갈아엎을 때가 온 것 같다. 무작정 따라하는 것 보다는, 책장에 꽂힌 책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고 내가 좋아할만한 운동 영상들을 찾아보면서 재정비 할 시간이 왔다.
내게 운동 구독 취소를 한 것은 큰 포기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일은 무거운 반복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일을 기꺼이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다. 포기와 반복을 잘 해 나아가는 인생이 결국 건강한 삶이라는 것. 사람들은 쉽게 포기하고 의미 없이 반복하는 것에 눈길이 차갑다. 나도 그렇다. 허나, 이제는 안다. 포기도 용기이고, 반복도 지구력이라는 것을 말이다.
2월 끄트머리가 며칠 남지 않은 월요일, 나는 내 선택에 칭찬 도장을 찍는다. 그리고 이 문장들도 댓글로 써둔다.
=>3월에 다시 힘이 돌아오거든 <스토너>를 읽어봐. 바쁜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우습게 여길 이야기지만, 소설 속 그 남자가 진정으로 강하다는 걸 너도 알잖아.
=>그리고 혼자 운동하는 게 힘들면, 다시 운동 구독을 해. 너는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과정을 지나가는 용기있는 사람일 뿐이야.
오늘도 이렇게 나는 아이를 키우는 아줌마의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실제로는 나를 한 뼘 더 키우려고 노력중이다. 이제 미련없이 욕망의 장바구니 밖으로, 두 달동안 담은 다짐들을 버린다. 그리고 포기와 반복은 도로 빈 장바구니 안에 담는다. 이것으로 봄의 장바구니는 이미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