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버킷리스트 세 가지
봄은 희망이다. 봄의 색채인 분홍, 노랑, 연두가 우울한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다시 밝아질 수 밖에 없도록 도와준다. 그렇게 푸르른 잔디가 솟아나고 꽃망울이 수줍은 미소를 띠면, 우리는 긴 겨울의 터널을 나오며
무거운 옷을 벗고 슬며시 웃게 되기 마련이다. 라고 쓰는 건 너무나도 진부하다.
교과서에 실린 산문의 첫 문단 같다.
이따위 글의 시작이라니! 무엇보다 가식적인 것 같아서 다시 솔직하게 써야겠다.
지난 몇 년 간 나는 계절 감각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고 지냈다. 추우면 추운가보다. 더우면 더운가보다. 봄가을은 그저 날씨가 좀 좋은가보다 하며 계절을 그저 공기와 같이 존재하는 것으로만 치부하며 지냈다. 누군가가 집에서 애만 기르고 편히 지내면서 신세한탄을 한다(주로 확신의 T인 친정엄마)고 꾸짖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집에서 애만 기르는 사람이건, 밖에서 나가서 일까지 하는 사람이건, 내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태어나서 세 돌이 될 때까지, 아직 용변가리기를 가르치는 중인 시절까지가 한 사람이 엄마가 된다는 이유로, 얼마나 몸과 마음을 '폭발적으로' 소진해야하는지 '겪어서' 알기 때문에. (내가 자주 듣는 이야기 = 애가 아직 어려서 힘드시겠어요. 조금 지나면 나아져요.)
봄의 버킷리스트 세 가지를 쓰기 위해 머리를 굴려도, 정작 하고 싶은 일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평소에 하고 싶거나 먹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들이 부럽다. 내일 아침에 뭘 먹을까 기대를 하면서 잠든다는 사람, 이번에는 무슨 가방을 사고 봄옷을 살까 행복한 고민을 하는 부류, 날 좋을 때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우며 들뜨는 어른들 말이다.
결혼과 육아로 현실에 발이 묶인 채, 좀처럼 기분이 둥둥 뜨지 못하는 나. 전에는 달랐나 싶었는데, 미혼 시절에도 현실 감각이 날카로운 사람이어서 갑자기 일상을 벗어나는 계획이나 큰 돈이 드는 여행을 잘 꿈꾸지 못했다. (바보야! 그 때가 제일 시간 많고 돈 많을 땐데...라고 돌아가서 말해주는 날이 올까? 과학기술 힘내!!)
사람이란 게 잘 변하지 않듯이, 나 또한 그렇다. 그렇다면, 최소한 내가 봄에 왜! 버킷리스트가 세 개씩이나
있어야만 하는지, 타당한 이유를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
버킷리스트 1. 무조건 산책을 먼저하기
나는 주로 학원이나 학교에서 일했다. 그곳을 내가 벗어나니, 남편이 여전히 학교에서 일한다. 그리고 어느새 아이도 커서 어린이집에 다닌다. 이렇다는 말인즉슨, 우리는 모두 3월에, 새로움과 그에서 파생되는 피곤함을 이겨내야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첫 해에 담임을 맡은 후로, 비담임으로 있다가 올 해는 다시 담임을 맡은 남편.
오늘은 미리 준비하러 출근을 했다. 이미 며칠 전부터 그는 나에게 말했다. "나...개학 @일 전이야. 그러니까 좀 이해해줘. 자기는 모를거야." 우와, 이 얘기를 적어도 20년은 더 들어야 한다니! 정말인가요?
빨리 내가 다시 임용공부를 해서 저 소리가 쏙 들어가게 해야 할까? 라고 (속으로만) 생각하게 되는 남편의
개학전 증후군이 시작되었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3월이 되면 한 달 내내 배앓이를 하던 내가 모를리가 없지! 하지만, 나에게는 말은 안 들으면서도 새로운 것을 더 두려워하는 작은 생명체가 있으니, 다 큰 어른은 그저 토닥거리는 정도로 위로하고 끝내기로 한다.
저 두 남자는 3월 내내 출근 싫어 뿌잉 하거나 얼집가기 시러여...에엥 할 게 분명하다. 그럴 때마다 나도 같이 주저앉아서 울 수 없으니 둘을 보내고 나서는 산책을 나가야겠다.(정신력은 체력에서 나옵니다.) 남편이 출근하고 두 시간 정도 지나면 아이를 보낸다. 어지러진 집안을 뒤로하고 아이가 가면 나에게는 약 6시간이 시간이 생긴다. (올해는 형님반이 되어서 7시간이 생겼습니다. 만세!) 엄청 큰 집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우선순위를 집정리에 둔다. 사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어느 누구도 뭐라하지 않건만, 나는 청소와 빨래, 정리를 놔두고 좀처럼 다른 일을 먼저 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동안은 산책을 나가다가도 되돌아와서 집안일을 싹 하고 진이 빠져 산책을 나가지 못했다.
이런 나를 생각하면, 그저 운동복 차림으로 등원을 시키고 집안일은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외면하는 게 최선이다. 한 번 발동이 걸리면 그걸 끝낼 때까지 나의 자유를 뒤로 미루는 관성은 쉬이 고쳐지지가 않는다. 고칠 수 없다면, 그런 나를 물리적으로 공간 이동 시키는 방법이 가장 탁월하다. 이미 내게는 올해부터 추가로 1시간이 더 생기지 않았나!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더군다나, 봄이라니! 싱그러운 햇살과 풀냄새가 시그니처인 봄이라니!!
그렇다면 타들어가는 6월이 오기 전까지, 내일부터는 무조건 아침 산책이다. (공개적으로 썼으니, 지키도록 노력하자.)
버킷리스트 2. 매달 영화 한 편 보기 (3,4,5월의 영화)
3월은 모두의 적응기간이니, 남편과 아이의 스트레스와 부대낌을 받아줘야한다. 사실 빽 하고 소리지르거나, 나는 안 힘드냐? 하고 무안을 줄 때가 100번 중에 99번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버킷리스트씩이나 쓰는 교양있는 사람이니,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내기로 한다.
혼자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서 아이를 등원 시키고 몇 번은 봤다. 중간에 다시 선생님의 호출로 30분 거리를 뛰어와서 아이를 집에 데려간 날도 있었지만...(그 이후로는 불안해서 영화를 보러 가지 못했다.) 아이는 1년 사이에 더 자랐고, 앞으로 한두 주 정도의 적응 기간에는 몸을 사리느라 집에 있어야겠지만, 나의 감수성 통장은 빈털털이가 됐으니 영화를 꼭 봐야겠다.
왕사남도 아직 보지 못했고, 봄에만 개봉하는 몽글몽글한 영화도 보고싶다. 3월에 감정적으로 힘든 사람들(황씨 두 남자)을 격려하고, 4월부터 시작되는 남편의 천체관측(밤)과 지질강의(주말) 일정으로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게 될 나를 생각하면 평일 조조영화가 딱이다.
나홀로 된 기분을 만끽하며, 30분을 걸어가서 평일의 영화관을 누리는 것은 집에서 유툽이나 영화를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듬성듬성 차 있는 영화관에 앉아서, 이든 엄마와 황 선생님 아내라는 이름표를 떼어내고 몰입하는 시간은 역류성 식도염으로 금지되었던 음식을 다시 먹는 기쁨만큼이나 크다. 아니, 그 이상이다.
그리고 해야 할 일들을 잠시 잊어도 된다는 것만으로 고마운 시간이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개봉 예정 영화 목록'부터 찾아봐야겠다. N회차 관람까지는 어렵더라도, 만원의 행복인 조조영화 정도의 호사를 누릴 자격이 나에게는 있다.
버킷리스트 3. 스타벅스에서 시간 재지 말고 앉아 있기
할 일을 잘 미루지 못하는 성격은 카페에서도 드러난다. 엉덩이가 가벼워서 (그런데 몸무게는 왜 그대로니? 질문금지) 카페에 앉아서도 좀처럼 오래도록 있지 못한다. 들어서면서부터 시간을 확인하고 돌아갈 시간을 체크한다. 그리고 어떤 루트로 걸어가서 밥을 먹고 들어갈지 장을 봐서 들어갈지 머릿 속에 계산을 끝낸다. 예정된 시간보다 더 빨리 일어서는 날은 있어도, 더 늦게 일어서는 법은 없다. 할 일을 두고 왔다는 것에 마음이 분주하다. 시어머니가 오시는 것도 아니고, 방문 수업 선생님이 올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늘, 한 시간 남짓 머무르다가 스벅에서 엉덩이를 뗀다.
내가 스벅에 가는 이유는 두 가지다. 어린이집에서 떨어져서 걸어가야 한다. (근처 메가커피는 엄마들의 수다 방앗간이다.) 남편이 쿠폰을 줘서 잔액이 남아있다. 누군가 먼저 건네는 커피 한 잔 해요~라는 말이 반가운 사람이 있는 반면, 먼저 약속을 잡지 않은 상태에서 '거절'의 카드를 꺼내기 민망해 얼버무리며 자리를 피하는 이도 있다. 나는 후자다.
거절하기는 찝찝한데 내 시간을 빼앗기는 것도 싫으니, 나는 조금 더 걸어서 스벅에 간다. 커피를 즐기는 편은 아니라서 주문하는 메뉴는 매번 라떼에 샌드위치 정도다. 자주 가지 않기 때문에, 오늘 하루가 충분히 탈탈 털릴 것으로 예상되는 날에 계획적으로 방문한다.
월요일과 목요일에 언어치료를 다녀오면 이미 점심이라 아이를 보내놓고 다시 스벅에 걸어갈 힘은 없다. 온 길을 되돌아서 가야하기 때문에, 아마 스벅에 가는 날은 화,수,금 중에 하나 일 것이다. 들어가서 두유디카페인 라떼를 주문하고, BLT 샌드위치를 먹겠지. 남이 만들어준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천천히 따뜻한 라떼를 홀짝 거리면, 식비를 아낀다고 골머리를 싸는 나도 사실 이런 걸 좋아했었지하며 조금 서글퍼지는 날도 가끔 있다.
묵직하고 깊은 감정은 아니지만, 마음대로 훅 써버릴 수 없는 돈들에 센치해지는 날도 존재하는거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속을 도닥이며, 남편이 스벅 안 가서 얼마나 다행이야! 나한테 다 주고! 개꿀! 크크 하면서 철없이 웃어넘긴다.
스벅 어플을 열어보니 11,000원의 잔액이 남아있다. 아마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를 아점으로 먹을 정도 금액일 것이다. 아껴둔만큼, 봄이 절정으로 열리는 시간에 꽃을 보면서 뚜벅뚜벅 걸어가야지. 그리고 최대한 오래 즐기다가 와야지.
나는 나를 잘 돌보며 살고 싶다. 가족에게 내가 희생해서 이렇게 번듯하게, 윤택하게 살게 되었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물론 이미 수천번했다. 남편에게. 대출 갚을 때마다 흐흣) 그럴 가능성(번듯+ 윤택)도 딱히 많아보이진 않지만, 어쨌든 나를 갈아넣은 시간에 대해서 보상받고픈 마음을 되도록 최소한의 비율로 가져가며 살고 싶다. 아니, 늙고 싶다. 그래서 별 것 아닌 버킷리스트같아 보여도 나를 돌본다는 관점에서는 흑백요리사의 진수성찬만큼이나 값지다.
버킷리스트에는 운동도 공부도 없다. 나의 버킷은 작고 작은 양동이라서 오늘 하루 행복하고, 내일이나 모레정도까지 힘낼 수 있을 정도면 된다. 작은 양동이는 안을 절반 정도 남겨두어, 찰랑거려 넘쳐 흐를까봐 종종대거나 들고가느라 무거워서 화내는 일도 없어야 한다. 봄만으로도 좋을텐데 버킷리스트마저 꼭 의미있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들이 나의 버킷리스트다.
하지만, 해 본다면 더 가뿐한 기분으로 봄을 누리며 지낼 수 있을 일들이다.
봄만큼은 내 마음대로 살고 싶다. 여름에 땀내느라 고생하고 가을엔 결과 없음에 슬퍼하다가 겨울은 추워서 오그라들게 뻔할 뻔자니, 봄만큼은 마음가는 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믿는다).
가장 가벼운 계절을 허비해도 후회하지 않을 용기가. 허비해도 된다는 그 결심이. 이 시간 정말로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