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를 대하는 자세

<초보노인입니다-김순옥 저> 를 읽으며

by 여름

노(老)를 처음 만난 것은 아이를 임신했을 때였다. 만 35세 이상의 여성이 임신을 하면 의학적으로 노산이라고 한다. 그리고 좀 더 나이가 많으면 '고위험 임신부'가 된다. 나는 당뇨나 고혈압은 없었지만 나이가 충분히 많았다. 그리고 그 나이로 인해서 고위험 임신부 타이틀을 얻었다. 임신을 처음 해보는 입장에서 내가 젊은 사람과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나는 '고위험 노산 임신부'구나 하고 받아들였을 뿐.


예쁘고 고운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 나이보다 두 서너살 어리게 봐 주는 덕에 나의 나이를 몸으로 실감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그렇게 나이들게 보지는 않겠지 싶었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태어나니 아이를 동반한 나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어이구, 늦게 아이를 낳았네."라고 말했다. 뭉게구름같이 말랑한 희망사항은 그 한 문장으로 현실을 마주했다.


당연히 얼굴이 칙칙하고 기운이 없어 파삭거리는 건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사진첩을 뒤질 때마다 우습게도 이 때는 그래도 어렸네 싶은 사진이 있다. 아이를 낳은 100일 무렵 서른 아홉의 나. 지금 마흔 두 살의 나보다 피부가 곱고 활기 있어 보인다. 서른 아홉이나, 마흔 둘이나 거기서 거기지.라는 생각은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나는 한 해가 지날수록 늙고 힘이 없어지고 있다. 예뻐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기운이 없어서 살기 위해 스쿼트를 하고 머릿결에 힘이 없어서 분기별로 파마를 한다.


나의 노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아직도 창창히 젊어서 곱다는 이야기를 옆집 여든이 넘은 할머니께 듣지만, 어린이집 하원 무리 속에 던져진 나는 그저 늙고 어둡다.

다크써클이 짙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편인 내가 더 늙어보이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모래 시계가 깨져서 흩어지는 모래처럼, 활기를 매분 매초 잃어버리는 하루 하루를 목도하는 것은, 나를 자꾸 작아지게 한다.


그런 마음이 낭낭하게 차 있는 요즘, 어제 빌려서 읽게 된 책은 <초보 노인입니다 -김순옥 저>였다. 은퇴를 하고 남편과 실버 아파트에 입주하게 된 작가는 그 곳의 실질적인 생활과 자신의 편견을 가감없이 적어 내놓는다. 아직 60대가 되려면 약 20년정도 남아있는 나에게 작가가 써 내려간 세계는 또 다른 행성이었다. 그런데, 60대인 작가에게도 80대-90대의 인생이라는 또 다른 별세계가 존재하는 것!

사람은 자기 살아온 나이만큼 이해하고 보인다는 친정 엄마의 말이 그냥 툭 던진 말이 아니었음을 실감하게 되는 독서였다.


예전의 60대와는 다른 지금의 60대. 우리가 나이 들어서 60을 맞이하면 또 다른 양상으로 달라질 것이다. 어떤 날에는 남편이 퇴직 후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막막하기도 하다. 내가 몇 년 후에 일을 시작한다고 해도, 아이는 그저 대학생일 뿐인데, 우리의 노후가 아이의 젊음을 삼킬까봐 두려운 날들도 있다.


20대에는 자리 잡지 못하고 떠 다니는 내 자신이 너무 불안했는데, 30대가 되니 각자가 사는 모습이 일궈지는 과정과 속도가 다르구나. 하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직면한 40대. 이미 차이가 난 친구들의 삶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이내, 나의 레이스는 이제 시작되었다고 다독인다. 그 경주에는 다행히 어린 아들이 함께 하고 있다. 나는 초보 엄마라 인생의 늦은 발걸음은 괜찮다고 합리화시키기도 한다.(일일이 다 신경 쓸 기력이 모자라서 대충 키우는 게 현명한지도.)


노(老)라는 글자를 찾아보면, 늙다/ 익숙하다, 노련하다/숙달하다라는 뜻이 나온다. 생물학적으로 몸이 늙고 약해지는 것만 받아들이면, 익숙하고 노련해지고 숙달된 인간이 되는 것 아닌가! 한자어 뜻 풀이를 살펴보면서 나의 '노화'가 불편을 가져오는 것에 동의하면 나는 꽤 괜찮은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건 아니겠어? 하며 새로운 관점을 곁들여본다.


아직 1단계의 노화를 겪으며 (흰 머리, 소화불량, 만성피로) 그렇게나 울상지을 일은 없다고 본다. 때 되면 염색을 하고, 좀 덜 먹어서 몸을 가벼이 하고, 날이 좋아지니 나가서 걸어 피로를 덜어내면 되는 것이다. 아직 나는 의사가 주는 처방전으로 약을 먹고, 클린식만을 먹으며 삶을 통째로 노잼의 시기로 이끌어갈 때는 아니니 말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젊잖아하는 마음보다는 이제는 나를 전반적으로 잘 보듬으며 살아가는 '귀찮지만 꼭 필요한 시간'을 맞이해야 할 때이다.


예민해서 작은 일에도 심사가 뒤틀리고, 맞는 말이면 모두 옳다는 마음을 가지고서 입밖으로 감정들을 "싸질렀던" 나는, 아주 큰 고민이 생기지 않는 이상, 몸이 버티지 못해서 잠이 들고, 아이가 적응을 못하거나 걱정되는 모습을 보일 때 '미안하지만 그건 너의 몫이야.'라고 한 발짝 물러서서 기다리게 된다.

마음이 타올라서 기분 좋음과 언짢음이 하루종일 디즈니랜드의 고속열차를 타는 것에서 그 마음마저 귀찮고 고단해서 어떻게든 되겠지 당장 죽고 사는 일은 아니잖아로 바뀌기까지. 나는 나이 들었고, 달밤에 울었으며, 새 날의 해를 보며 걸었다.


우리의 늙음이 아들의 젊음과 만나는 날, 나는 세가족이 오롯이 여행을 하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아이가 어른이 되면, 군대에 가기 전에 꼭 한 번 비행기를 타고 이 나라 바다 밖으로 나가보고 싶다고. 모르겠다. 그 때에는 더 많은 돈을 갚느라, 허덕이면서 늙은 몸을 달래서 일을 하고 있을지도. 하지만 꿈을 꾸는 건 괜찮고, 앞으로 펼쳐질 긴 시간을 의지해서 개미처럼 푼돈을 모으는 건 할 수 있는 일이다.

로또는 어려워도, 한 해 한 해의 작은 적금을 쌓아올리는 것은 '올드 앤 영이 만나는 행운'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젊다. 그리고 또 늙어간다. 오십이 되면 피부과에 가서 이 많은 기미를 레이저로 태우고 싶고, 육십이 되면 아들과 남편과 세계 어디가 됐든 여행을 떠나고 싶다.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건강마저도, 지키려 아무리 애를 써도 '운'이 따라줘야한다. 나의 운은 가뭄에 콩 나듯이 오는 희귀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다지 운을 바라면서 살지는 않는다. 하지만 겸허히 나의 노(老)를 노(怒)되지 않게 살아갈 때, 20년 안의 두 가지 소망은 하늘이 좀 도와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본다.


이러나 저러나 늙는다는 건 달갑지 않다. 하지만, 청춘의 불안함 또한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여정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의 노(老) 를 노(NO)하지 않은 채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그러지 않았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한 때에 그 말을 차갑게 비난했던 나도, 이제는 순순히 그 말을 따라갈 차례가 되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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