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때, 사람을 소재로 그리기보다는 동물을 등장 시키기 좋아하는 딸이,
도서관 한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을 한참 서서 본다. 다양한 동물들의 눈을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표현하는지 궁금해 했던 것 같다.
도서관은 정말이지 아이들 키우면서 없으면 절대 안되었을 곳이었다. 코로나 떄문에 1년 넘게 가지 못한 것이 얼마나 아쉬운지.. 그것도 그거지만, 이제 아이들이 커지면서 점점 발길이 뜸해짐을 느낀다. 이사할때마다 참 감사했던 그 동네 도서관. 카드만 만들면 책을 무제한으로 빌려 볼수 있다는 것은, 생활비 빠듯한 유학생 시절에 아이들에게 베풀어 줄수 있는 것중 가장 귀한 혜택이었다. 다른 아이들 처럼 이것저것 시키지는 못해도, 다 읽어 반납할 책을 Bookbag 에 찢어지도록 담아 들고 들어가면서 뿌듯하고, 또 그 만큼 책을 빌려서 나올때는 참 감사했다. 그 순간 아이들과 내가 가지고 나오는 것은 책뿐만이 아니었다. 책만으로도 충만하고 행복한 그 느낌 !! 그게 있었다. 우리에게는 너무 감사한 놀이터였다.
보스턴으로 이사해 정착할때즈음, 아이들 데리고 아파트 한바퀴 도는 것은 내가 하는 일상중 하나였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이 생각이 많고 몸이 바빴던 서준아빠를 대신해서, 아이들 콧바람 쏘이고 몇바퀴 돌고 들어가는 것 뿐이었지만, 뺑뺑 몇바퀴 돌고 들어가면 애들 샤워 시키고 차분히 함께 앉아 있을수 있는 시간이 좀 생기곤 했다. 그때는 몰랐다. 누군가 매만져 놓은 꽃들과 나무들이 계절마다 참 아름다웠고, 아침마다 거리를 깨끗이 청소하는 누군가 덕분에 눈살한번 찌푸리지 않고 그 수많은 날들을 산책할수 있었으며, 때로는 아이들이 쌩쌩이를 타고 속도 조절이 안되어 보이면 몇발짝 저 멀리서 웃으면서 기다려주던 누군가 덕분에 아무런 사고 없이 지나다닐수 있었던 그 길..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이 장소를 잠시 빌리고 앉아 시원하게 바다 구경을 하는것도 그러고 보면 참 감사한 일이고,
Science Museum 에 가서 오후 내내 시간을 보내던 것도 참 감사한 일이었다.
누군가 잘 가꾸어 놓은 딸기밭은,
한국에서 오신 할머니와의 잊을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주었으며.
금요일 저녁, 선선한 바람을 맞고 앉았던 동네 Park 는
우리 모두의 입에서.. '오랜만에 나오니 너무 좋다' 라는 말을 연신 쏟아내게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을 배경으로
Tennis 를 칠수 있는 곳이 있을까.
그 동안 누렸던 모든것들이 참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의 도움과 결정으로 우리는 무언가의 혜택을 받고 누리며 살아 왔음에 감사한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감사한 것이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일주일에 두번 정도 개최되는 Playdate 이 아니었으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돌아가는 차례나 회비 따위는 없다. 그저 엄마들끼리 충동적으로 만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서준이가 서윤이의 머리를 엉망진창으로 잘라놓았을때 참기 어려웠던 나에게..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라며 서준이를 끌어 안아주던 이모들이 없었다면 난 정말 맘이 어려웠을 것이다.
Job 이 계속 안되어 힘들 때에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없었다면 우리 부부는 정말 힘이 들었을 것이다. 떡볶이 한냄비 끓여 놓고, 공부하는 남편들 뒷바라지 하면서 힘든 푸념을 하지 않았다면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일주일이 꺾이는 수요일에 늘 있었던 엄마 성경공부모임이 없었다면, 나는 너무나도 긴 일주일을 보냈을 것이다. 수요일을 기다리며 이틀을 보내고, 수요일이 지나 이틀을 보내면 주말이었다. 늘 집을 열어주시고, 점심을 제공해 주시던 잊을 수 없는 집사님께도 참 감사하다.
누군가의 함께하고자 하는 결단, 그리고 도움과 위로 없이는 나의 삶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그런 이가 되고 싶은 마음이 진하다. 아이들에게도 그런 진한 마음이 전해지길 바랄때마다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서준이가 유모차를 탈때이니 십여년 전쯤, 아침 일찍
한국에 부칠 것이 있어서 우체국에 차를 대고서 유모차를 밀고 걸어들어가려는 찰나,
몇걸음 앞서서 걸어가던 아주머니가 열 서넛살 정도 되보이는 아들의 머리를 살짝 밀쳤다.
아침이라 머리가 까치집이었던 그 아이는 엄마 한번 돌아보지 않고,
그 아이 보다 더 앞에서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할머니의 문을 잡아주러 뛰어갔다. 할머니는 고맙다고 환하게 웃고, 잠이 덜 깬 얼굴을 한 그 남자아이가 말한다. You're welcome 이라고..
이제 막 갓난 아이 벗어난 아이를 키우던 나는 그 때 결심했다. 저 아이 처럼 키우리라..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느낄때, 주저없이 행동을 하도록 키우리라.
도움을 받는 사람이 어려워 하거나 챙피해 하지 않는 그런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도록 키우리라..
얼굴도 기억 나지 않는 그 두 사람이 보여준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란 아프리카 속담은 언제나 나를 뭉클하게 한다. 우리 가족이 살았던 모든 곳에서,
도서관이 없었더라면..
Barne and Nobles 가 없었더라면..
교회가 없었더라면..
정말 싼 값에 배울수 있는 Tennis Program 이 없었더라면..
아이들은 Free 로 탈수 있는 Boston 지하철이 아니었더라면..
부족하지만 서로 보듬고 살았던 사랑하는 친구들이 아니었더라면..
아기들 천지라 성경공부 끝나고 엄청 청소 하셨을 그 집사님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은 서로들 기억 못할지라도 그시절 주고 받았던 따뜻한 말들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별거 아니더라도 함께 있어주고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준다면,
충분히 아름다운 사회가 될수 있다는 기적을 모르고 평생 살았을 것이다.
어느새 눈 앞에 또 와 있는 <결핍>은 또 다른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것일 것이다.
지나고 보면 또 알게 될 아름다운 기적 말이다.
이름도 모르는 들꽃무더기가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데, 너무 이뻐서 찍어 왔던 것처럼
결국에는 무언가 부족했던 그 시절에 되려 감사하게 되리라.
<한 사람이 만들어 지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