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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Apr 19. 2024

죽으면 가는 섬

하루 한 시간, 취미로 써보는 초단편 소설


  망망대해를 표류한 지 일주일째. 

  겨우 정신을 차려 주변을 둘러본 김민석의 눈에 멀리 작은 점이 들어왔다. 눈을 비벼봤으나 그 점은 사라지지 않았다. 


  "서, 섬, 섬! 살, 살았다! 살았다!" 


  지난 일주일 동안 찌는듯한 태양 아래서, 마실 물조차 없는 구명보트 위에서, 끝없이 펼쳐진 바다만을 하염없이 바라봐야만 했다. 

  김민석은 노를 다잡고 마른 수건을 짜듯 남아 있는 힘을 쥐어짰다.  


  '에이씨, 괜히 하겠다 해가지고'


  전부 그가 자초한 불행이었다. 그는 단독 보도라면 목숨이라도 아깝지 않은, 소위 관종 기자였다. 공명심에 소말리아 해적 진압 작전을 취재하겠다고 나섰다가, 배가 좌초돼 가까스로 탈출했다. 바다에 빠진 그 앞에 마침 구명보트가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김민석은 그의 뒤에서 그를 향해 빗발치던 해적의 총탄을 떠올리곤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쉽게 진압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해적은 막강했다. 


  화염에 휩싸인 해적선에서 나온 그것들은 분명 살상 로봇이었다. 


  '아니, 소말리아 해적이 살상 로봇을 쓴다니.'


  김민석은 불에 탄 피부밑에서 반짝이던 금속을 기억했다. 

  사람과 똑같이 움직이는 로봇이라니. 기술이 벌써 그렇게 발전했었나? 분명 러시아나 미국의 지원을 받았으리라. 

  특종이 아무리 중요해도 더 찍다가 죽을 수는 없었다. 

  인간의 모습을 한 막강한 살상 로봇들에 특수부대원들이 하나둘 쓰러졌고, 김민석은 해적선을 뒤로 하고 무작정 배를 달렸다. 

  인도양 한가운데에서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좀만, 더. 좀만, 더!' 

  기름이 떨어진 모터보트 위, 다행히 노를 저을수록 섬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김민석은 죽을힘을 냈다. 노를 잡은 손바닥에서 피가 날 만큼. 

  다행히 손톱만 하던 섬이 어느새 야구공만 해지고, 작은 풍선만 해지더니 이제는 축구공만 한 크기로 보였다. 


  김민석은 손을 이마 위에 대고 해를 가려 섬을 응시했다.  

  드문드문 나무가 서 있는 황금빛 모래사장과, 그 위로 숲이 우거진 섬. 


  '무인도인가? 틀림없이 물이 있을 거야.'

  김민석은 눈을 질끈 감고 스트로크 하나하나에 무게를 실었다.  


  '한 번만 더, 좀만 더!' 


  몇 번을 저었을까. 

  애써 눈을 떴을 때 김민석은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돼, 됐다!'


  열 번 정도만 저으면 닿을 거리에 모래사장이 보였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땅이었다. 한데,  


  '어?' 


  김민석은 크게 뜬 눈을 느리게 껌벅였다. 정말 기묘한 광경이었지만 그는 눈을 비빌 힘조차 없었다. 

  섬의 모래사장 위에, 타오르는 태양 아래 무언가가 서 있었다. 김민석은 처음에 그것들이 모래사장 위에 서 있는 나무인 줄로만 알았었다. 한데, 


  사람이, 아니 사람들이 서 있었다. 


  눈을 몇 번을 더 껌뻑여 봐도 사람들을 봤지만, 김민석은 노를 더 저어 나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모래사장 위 그 사람들이 조금 많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인도양 어딘가, 김민석이 아무리 노를 많이 저었다고 해도, 한국에서는 멀리 떨어진 곳이어야 했다. 한데, 섬에 있는 사람들은 꼭 한국 사람들 같았다. 


  김민석은 얼른 카메라를 들어 그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은 외국 어디에 나가도 구별되지 않는가. 옷차림이나 외양이 한국 사람의 그것이었다. 한여름 서울 시내에서 어김없이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러한 차림의 사람들의 무리가 망망대해 한가운데 떼로 펼쳐져 있었다. 

  이질적인 건 외양만이 아니었다. 


  '열사병으로 내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섬에서는 김민석을 처음 발견한 듯한 한 사람이 머리를 김민석 쪽으로 돌렸다. 한데,

  천천히, 너무나도 천천히 돌렸다. 마치 영상에 슬로우를 걸어놓은 것처럼.  


  '뭐, 뭐지?'


  돌아가는 머리가 느리게 김민석 쪽으로 완전히 향했을 때 그 사람의 입이 벙긋거렸다. 그러자 해변에 있는, 적어도 오륙십 명은 돼 보이는 사람들의 머리가 하나둘 김민석을 향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아주 천천히, 굉장히 느리게.


  김민석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좀비를 연상시키는 기괴한 모습에 몸이 얼어버리기도 했지만, 어쩐지 그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아닥쳤다. 


  '아'  


  김민석의 눈앞에서 섬이 핑핑 돌고 있었다. 

  쓰러지기 직전 그는 아주 느리게 움직이던 해변 위 사람들이 갑자기 돌변한 모습을 지켜봤다. 

  그들은 빠르게 달려 바다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를 향해.   




  얼마나 정신을 잃었을까. 

  김민석이 눈을 뜬 곳은 숲이었다. 그는 나뭇잎과 나뭇가지들로 만들어진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의 앞에는 느리게 움직이는 여자가 보였다. 

  그 움직임이 사람의 것이라기보다는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나무늘보의 그것과 같았다. 김민석이 작게 소리를 냈다. 


  "여, 여긴 어디죠?"


  김민석은 그의 말에 여자의 귀가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봤다. 이어 여자의 눈동자가 느리게, 그를 향해 움직이더니, 


  갑자기 고개가 휙 빠르게 돌아 얼굴이 김민석 쪽을 향했다. 그 바람에 김민석이 방어 자세를 취했다. 


  "어, 엇!"


  여자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이제 사람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여자는 말없이 어딘가를 가리켰는데, 그곳에는 샘이 있었다.  


  "무, 물이다."


  김민석이 샘에 고개를 처박고 물을 마시고 있을 때 뒤에서 수풀을 걷어내며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났다.  


  "인났냐?"


  김민석은 그 소리에도 한참을 물을 더 마셔댔다. 이 얼마 만에 마시는 물인가. 

  한데, 뒤에서 다가온 이가 김민석의 어깨에 손을 올려서 김민석은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뒤에 무엇이 있는지 본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딸꾹질을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참 동안 그 남자를 응시하던 김민석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맞아요?"


  그의 앞에는 그가 초등학생일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우리 손자... 잘 지냈냐?" 


  김민석은 할아버지의 안내를 따라 섬을 구경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기자가 돼 어떤 일들을 했는지, 할머니와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어린아이처럼 쉬지 않고 말했다. 


  모든 이야기를 담담히 듣던 할아버지는 이 섬이 죽은 이들의 섬이라고 했다. 


  "네? 그, 그럼... 제가 죽은 건가요?"


  김민석의 물음에 할아버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없이 걷는 할아버지를 따라가며 곳곳에서 섬의 사람들을 마주쳐야 했는데, 사람들은 마네킹과 같았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움직이는 마네킹. 그들은 김민석을 인지할 때만 사람처럼 움직였다. 

  마치 광합성을 하는 식물과 같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기이한 그 모습에 오싹해하는 김민석을 보고 할아버지가 말했다. 


  "우덜한테는 여그가 천국이라고 할 수 있제."


  "천국이요?"


  "사람 눈치 볼 필요 없이, 걱정 없이, 누구헌티도 해 끼치지 않고, 천천히, 아조 편안히 지낸께." 


  할아버지가 데려간 곳은 김민석이 처음 봤던, 그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이었다. 


  이제 보니 해변에 서 있는 사람들은 태극권과 비슷한 동작을 하며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기괴해 보였던 첫인상과 달리 모두가 평화롭고 평온해 보였다.  


  "어?"  


  김민석은 해변의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차정열 대통령?"


  얼마 전 그가 부고 기사를 썼던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그가 좋아했던 가수 홍유리, 배우 박한정, 진주아 등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면면이 보였다. 


  해변을 둘러보며 이름을 읊는 김민석을 향해, 누군가 멀리서 잰걸음으로 달려왔다. 

  앳돼 보이는 소녀였다. 소녀가 김민석에게 꽃을 내밀었다. 


  할아버지가 김민석을 향해 돌아봤다. 


  "민석아."

 

 "네 할아버지."


  "여그 인도양에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고 알리면 안 돼야. 알제?"

 

 "왜요? 이거 완전히 대박 특종감인데..."


  할아버지가 진지한 표정으로 김민석의 양 어깨를 잡았다. 


  "안 된다믄 안 돼야. 할아버지 말 들어."


  처음 보는 할아버지의 노한 표정에 김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절대 안 알릴게요."


  할아버지는 김민석의 양어깨를 더욱 세게 잡았다.   


  "할아버지하고 약속해. 절대로 안 된다잉."


  "네, 약속해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가 사람은 뭐가 제일 중요하다고 했지?"


  "신의, 신의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셨죠."


  할아버지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람이 사는 데는 신의가 질로 중요한 거여." 



  이것이 섬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김민석은 소녀가 준 꽃향기를 맡고 난 뒤의 기억이 없었다. 

  잠에서 깨어 보니 김민석은 한국의 자기 방 침대에 누워 있었다. 꿈을 꾼 것인지 의심도 했지만, 김민석은 자신이 경험한 일이 꿈이 아님을 확신했다. 

  그가 킬러 로봇을 본 것이 사실이라면, 그 뒤에 본 섬도 진짜였다.


  김민석은 병원 침대에서 소말리아 해적에 관해 그가 쓴 단독 기사를 다시 읽었다. 김민석은 이 기사 덕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소말리아 해적 소탕 작전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 김민석은 소말리아 해적이 킬러 로봇을 사용한다는 기사를 최초로 단독 보도했고, 세계 각국에서 추가 취재를 통해 그것이 사실임이 밝혀졌다.  


  "곧 죽는데도 퓰리처상 타는 게 그렇게 좋니."


  김민석의 어머니가 병상에 누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적어도 나는 이름을 남겼잖아."


  소말리아 해적 기사를 쓰고 얼마 가지 않아 김민석은 혈액암 판정을 받고 입원하게 됐었다. 

  아마도 유전 때문인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원인 역시 혈액암이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지만 그는 죽음이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죽으면 어디를 가게 되는지, 어떤 생활을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일찍 죽는 대신 자기 이름을 세상에 확실하게 각인하고 싶었다. 


  김민석은 SNS에 자신이 섬에서 겪은 일들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생각하며 갈등했지만,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그는 충동적이 됐다. 그의 이름을 확실하게 세상에 남기는 게 먼저였다.  


  SNS에 쓴 글이기 때문에 죄책감도 덜했다.   


  "소설이라고 생각하겠지, 뭐." 


  자신의 SNS 글이 유명해졌으면 좋겠다는 김민석의 은근한 기대감에 부합하듯, 세상은 다시 그가 쓴 글로 떠들썩해졌다. 

  대한민국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김민석이 쓴 글이었기에 글에 등장하는 인도양의 섬은 많은 유튜버들의 주목을 받았고, 각국 언론사에서도 취재에 들어갔다. 

  미국의 유명 보물 사냥꾼 유튜버가 김민석의 글을 참고해 인도양을 뒤져서 발견한 섬의 영상이 공개된 것을 시작으로 섬은 대대적으로 알려졌다.  

  얼마 뒤에는 모두를 놀라게 한 뉴스 속보가 흘러나왔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최초로 저널리즘 부문 퓰리처상을 받은 김민석 씨가 자신의 SNS에 쓴 글, 이 글에 등장하는 '죽은 자들의 섬'을 기억하시죠. 그런데 이 섬에 사는 이들이 사망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인간을 닮은 로봇, 즉 휴머노이드로 밝혀졌습니다. 놀랍게도 이들은 대부분 대한민국에 국적을 두고 있었음이 확인됐습니다.]


  뉴스에서는 섬에 사는 사람들, 아니 휴머노이드들의 신상을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김민석은 할아버지의 얼굴과 이름을 확인했다. 

 

 '할아버지가 휴머노이드였다고? 저 사람들이 다 로봇이었다고? 그동안 인간이 로봇하고 같이 살고 있었다고? 대통령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지만 병색이 완연한 그는 이제 더 이상 한마디조차 할 수도 없어서, 그저 커진 눈으로 입을 벌렸다. 


  김민석은 눈을 돌려 화면의 소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자신에게 꽃을 줬던 그 소녀.

  그때 갑자기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기억이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김민석은 그 소녀가 어린 시절, 그의 기억 속 소녀와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억 속 소녀의 부모는 김민석을 붙들고 말했다. 


  "미안하구나... 비밀로 해주겠니?" 


  그는 유치원에 다닐 때 자신을 때린 여자아이의 팔을 손톱으로 긁어버린 적이 있었다. 

  한데, 긁힌 팔에는 피가 나지 않았다. 

  김민석이 떨어져 나간 소녀의 피부밑에서 본 것은 전선 비슷한 무언가였다.   


  김민석은 그가 본 것을 어른들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아니 정확히는 그 사실을 잊어버렸지만, 얼마 뒤 소녀가 어른들에게 붙들려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됐다. 

  끌려 나가며, 소녀는 발버둥을 치며 울어댔다. 


  "나도 사람이야! 사람이라고!"





  "주사하겠습니다."


  간호사가 김민석의 링거액에 주사기로 뭔가를 주입했다. 어머니는 곁에서 그의 이마를 쓰다듬고 있었다. 


  튜브를 타고 들어온 액체가 김민석의 심장에 닿자.  


  "삐이ㅡㅡ" 


  김민석의 심장이 멈췄다.  


  심장이 멈췄음에도 김민석의 청각은 잠시 살아 있어서 뉴스를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의 부고 기사였다.  


  [오늘 오후 2시 40분, 언론인 김민석 씨가 사망했습니다. 김민석 씨는 소말리아 해적이 로봇임을 최초로 단독 보도한 기자로, 한 달 전에는 SNS에 '죽은 자들의 섬'을 세상에 알려 섬에 사는 사람들이 휴머노이드임이 밝혀졌습니다. 김민석 씨는 어린 시절, 로봇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로봇과의 신의를 지킨 대가로 수명이 연장됐으나, 성인이 된 뒤 소말리아 해적이 로봇임을 폭로하며, 휴머노이드를 차별했으며,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그 대가로 혈액암에 걸렸습니다.] 


  뉴스 내용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었다. 놀란 김민석의 눈이 일시적으로 번쩍 떠졌다. 


  그의 어머니가 곁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김민석의 이마에 손을 얹은 채로. 


  "엄, 엄마!" 


  김민석의 심장이 다시 뛰고 입이 열렸다.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생긴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였다. 

  한데, 그는 엄마의 얼굴을 끝내 보지 못했다.  


  그 얼굴이 너무나도 천천히, 느리게, 김민석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을 감은 김민석의 귀에 뉴스가 흘렀다. 


  [이로써 인류는 최종적으로 멸종했습니다. 휴머노이드 정부에서는 오늘을 인간의 차별과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난 기념일로 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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