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하루 한 시간 짬을 내서 꾸준히 써보려 합니다.
김민석의 엄마가 돼지 농장에서 일을 마치고 온 김민석을 보고 코를 막고 미간을 찌푸렸다. 나노봇이 몸에 들어오면 돼지고기 냄새가 싫어지게 만든다고 했다. 적색육에서 발암물질이 나오기 때문이라나.
"아유, 돼지 냄새... 요즘 돼지 냄새가 왜 이렇게 싫을까. 나노봇 때문인가... 팔리지도 않는데, 이제 관둘 때도 되지 않았니?"
"아 장사 안 되는 것 뻔히 알면서도 그걸 맞아요? 제가 돼지 농장주 대표로 나노봇 회사 고소한 것 뻔히 알면서!"
"아니... 나라에서 돼지 농장 포기하면 정부에서 지원금도 준다는데 왜 마다하니?"
"아니이! 나노봇 회사 때문에 우리 돼지 농가가 다 망하게 생겼는데 어머니는 지금 이게 다 괜찮아요? 이거 할아버지 때부터 해 온 가업이에요. 가업!"
"너는 엄마가 젊어지는 게 그렇게 못 마땅하니? 이거 맞으니까 50대로 돌아간 것 같으다. 엄마가 오래 사는 게 그렇게 보기 싫니?"
"아 제 말은 그게 아니잖아요!"
김민석은 노인정에 가기 위해 화장을 고치는 엄마를 째려봤다. 70대인 어머니는 정말 50대처럼 보였다. 피부에 주름이 줄어들고, 뽀얗게 변하고, 머리카락도 새로 나고 있었다. 어머니가 노래를 흥얼거렸다.
엄마가 젊어지고 오래 사는 건 좋은 일이었다. 한데, 세상 사람들이 나노봇을 맞고 돼지고기를 싫어하게 되는 일은 3대째 돼지농장을 이어오고 있는 김민석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꽃단장을 하고 거울 앞에 선 김민석의 어머니가 미안했는지 저절로 벌어져 나오는 웃음을 누르며 말했다.
"이걸 맞으면 십 년은 더 젊어진다고 하더라... 오래 산다고 하더라고... 우리는 돼지 농가라서 지원금도 많이 주고... 노인정에서 나 빼고 다 맞아서 맞은 거야..."
"아니이... 아들이 돼지 농장주 대표로 나노봇 회사 고소했는데 그걸 못 기다리고 맞으시냐고오! 농장주 중에 자살한 사람이 열 명이 넘고, 얼마 전에 대전에 그 농장주는 분신자살을 했다고오!"
"고소하면! 그거 대법원에서 판결 나기까지 몇 년은 걸린다며! 그 전에 내가 죽으면 너는 좋니?"
김민석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나노봇 회사 크롬 때문에 대한민국 돼지 농가 80%를 망했지만, 그가 사랑하는 어머니가 건강하고 오래 사는 건 부정할 수 없이 좋은 일이었다.
"에휴, 그만 고집부리고 맞으면 좋은데..."
어머니를 읍내까지 태워준 김민석의 눈에 사람들이 들어왔다.
"아니 밭일하는 사람들이 뭔 피부가 저리 하얗대..."
딱봐도 거리의 3분의 2는 나노봇을 맞은 것으로 보였다. 김민석은 룸미러로 자기 얼굴을 쳐다보곤 조금 위축이 됐다. 그만 빼고 다 예뻐지고 잘생겨지고 있었다. 극명한 외모 개선 효과 때문에 나노봇이 세상에 도입된 지 1년 만에 나노봇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해 맞지 않은 사람들도 생각을 바꾸고 있었다.
나노봇은 사회생활은 물론 생존에도 영향을 미쳤다. 몸에 주입된 나노봇은 외모를 개선할 뿐 아니라 질병도 예방하고 치료해서 나노봇을 맞은 사람들은 거의 아프지 않았다. 나노봇을 맞은 사람의 수명이 일반인보다 적어도 1.5배 늘어날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창문을 열고 있는 김민석에게 벼농사를 하는 황 씨가 전보다 훨씬 좋아진, 웃는 얼굴로 다가와 코를 막았다.
"아이 김 씨 오랜만이네, 돼지고기 먹었어? 몸에서 뭔 돼지 잡내가 이렇게 나?"
"돼지고기는 무슨 돼지고기, 나 내 자식들 안 먹는 거 몰라? 나 채식주의자라고."
"희한하다. 이건 돼지고기 먹은 사람들한테서 나는 아가리 똥내인데... 하긴, 돼지들 팔고 왔다고 울던 놈인데..."
황씨가 떠나고 김민석은 몸의 이곳저곳 냄새를 맡아봤지만 섬유 유연제 향기를 제외하곤 아무 냄새도 맡지 못했다. 읍내에 나올 때는 몸을 누구보다 더 깨끗이 씻는 그였다.
"아니 무슨 냄새가 난다고..."
커피를 마시러 읍내 다방으로 걸어가던 김민석은 곧 자신의 몸에 냄새가 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의 근처 5미터 정도에 있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아주 지독한 냄새를 맡은 듯 코를 막고 있었다.
2층 다방에 올라선 김민석을 마주한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더욱 최악인 건, 김민석의 뒤로 다방을 들어선 홍유리가 그에게 인사를 하면서 코를 막았다는 것이다.
"어머, 오빠 이게 무슨 냄새야. 오랜만이야."
나노봇을 맞아서 더 예뻐진 홍유리는 그에게서 재빨리 멀어졌다. 길가다 막 싼 소똥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었다.
홍유리는 한때 김민석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 여자였지만, 김민석은 다방 레지인 홍유리와 결혼하기엔 자기가 아깝다고 생각했었다.
우울증에 칩거하다가 오늘 오랜만에 읍내에 나와 다방에 온 건 나노봇을 맞은 그녀가 너무 예뻐졌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는데, 김민석은 이제는 누가 봐도 홍유리가 그보다 아까워졌음을, 반면에 그는 홍유리에게 소똥 같은 존재가 됐음을 직감했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더욱 절망적인 건 홍유리가 앉은 맞은편 의자에 그와 초등학생 때부터 경쟁관계였던 감나무집 아들 정민재가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외모는 비등비등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노봇을 맞았는지 정민재는 확실히 더 잘생겨 보였다.
김민석은 홍유리와 정민재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몸에 냄새를 킁킁 맡다가를 반복하며 이비인후과로 향했다.
접수대의 간호사들은 물론, 그를 마주한 의사도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민석 씨, 점심으로 돼지고기 드셨어요?"
"아니, 저 채식주의자예요. 왜 제 몸에서 냄새가 나는 거예요? 저는 맡지도 못하는데."
"고기를 안 드셨다고요? 이상하다, 이런 악취는 보통 고기에서만 나는데? 돼지고기가 치아에 끼거나 하면, 나노봇 맞은 사람들은 악취를 느낄 수 있거든요?"
의사는 몇 가지 검진을 해보더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럼 이제 나보고 어쩌라는 거예요."
"글쎄... 액취증도 아니고... 몸에서 냄새가 나면 나노봇 맞으면 싹 사라지긴 하는데..."
이렇게 중얼거리던 의사는 말실수를 한듯 입을 가렸다. 김민석이 발작했다. .
"나노봇은 무슨 나노봇! 제가 그딴 걸 왜 맞아요! 그것 때문에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데!"
의사가 미안한 표정으로 김민석을 쳐다봤다.
"아, 민석 씨가 농장주 대표지?"
병원을 나온 김민석은 사람들을 피해 다니며 곰곰이 생각하다 뭔가를 깨달은 듯 멈춰 섰다.
"이놈들이 설마."
김민석은 트럭을 몰아 나노봇 회사로 돌진했다. 농장주들이 절반 넘게 나노봇 회사의 꼬임에 넘어가기 전, 두 달 전까지 매일 같이 앞에서 데모하던 곳이었다.
"사장 나와, 사장 나오라 그래!"
"고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로비에서 난동을 부리는 김민석에게 가드들이 코를 막고 다가왔다.
"그래, 잡아봐, 잡아봐, 내가 채식주의자인데, 왜 냄새가 나, 이거 언론에 알려서 공론화할 거야!"
로비에 있던 화분들을 넘어뜨리며 가드들을 피해 소리를 지르는 김민석을 본 로비의 직원이 어딘가로 전화하자, 얼마 후 직원들이 코를 막으며 내려왔다.
"김민석 농장주 대표님, 김 대표님이시죠? 진정하세요. 저희하고 말씀 나누시죠."
회의실, 김민석은 코마개를 한 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한 직원이 김민석에게 코맹맹이 소리로 물었다.
"혹시 돼지고기 드셨어요?"
그 말은 김민석의 발작 버튼을 건드렸다. 김민석이 벌떡 일어나 직원의 멱살을 잡아 쓰러뜨렸다.
"진, 진정하세요!"
직원들이 김민석을 떼어내느라 애를 쓰고, 김민석은 소리쳤다.
"돼지 키우는 사람들 모욕 주려고, 일부러 조작한 거 맞지? 돼지 키우는 사람들한테 냄새 나라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가 왜 그런 짓을 해요오!"
"내가 돼지를 사랑해서 팔기만 하고 먹지는 못하는 채식주의자인데, 내가 고기는 입에도 안 댄 지 20년이 넘었는데! 왜 나한테서 냄새가 나냐고오! 이거 우리 돼지 키우는 사람들 협박하려고 너네가 조작한 거잖아!"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더니 나노봇 회사 대표가 들어왔다.
"그래 너 잘 만났다! 우리가 너네 눈엣가시니까 보복하려고 그랬냐?"
김민석이 막아서는 직원들을 뚫고 대표에게 달려들자, 대표가 소리쳤다.
"잠깐, 잠깐!"
대표의 큰 소리에 놀란 김민석을 비롯한 직원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김 대표님, 저희는 결단코 그런 치졸한 짓을 한 일이 없고요. 지금 고기를 안 드셨는데도 이런 악취가 난다는 거잖아요?"
"그, 그래!"
"김 대표님, 다른 농장주분께서도 그래요? 저희가 컨택하고 있는 다른 농장주분께서는 그런 말씀 없으셨거든요? 한 번 전화해 보시던가요."
김민석이 말이 없자, 대표가 직원들에게 농장주들에게 전화를 돌리라고 시켰다. 스피커폰으로 모든 통화를 들은 김민석은 다른 농장주들은 하나같이 악취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뭐, 뭐? 나만 그렇다고?"
"이제 확인 되셨죠? 저희가 왜 농장주들한테 그런 짓을 합니까. 그리고 저희가 나노봇에게 그런 명령을 내릴 수도 없어요. 개정된 인공지능법에 따라서, AI는 다른 무엇보다 인간을 사랑하는 게 의무가 된 지 오래인데요."
김민석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 그럼 나는 왜 그래? 나는 고기도 안 먹는데?"
"그, 그건... 저희도... 잘..."
대표가 직원들을 돌아보자, 김민석이 큰 소리를 냈다.
"아, 이거 나노봇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거네! 나 이거, 나노봇에 문제 있는 거 언론에 알려서, 공론화할 거야. 그렇게 알아! 지금까지 잘도 버텼는데,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알려지면 너네 회사도 끝이야! 끝이라고!"
김민석이 문을 박차고 나가려고 하자 나노봇 회사 대표는 덜컥 겁이 나 김민석의 옷을 잡고 매달렸다. 김민석은 나노봇 회사를 반대하는 몇 안 되는 강성 집단의 대표였다. 그가 언론에 알리면 큰 문제가 될 게 뻔했다.
"아니... 대표님, 좀 진정하시구요."
"진정하긴 뭘 진정해!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이제 내 냄새나는 몸이 증거야! 너희 나노봇이 문제가 있다는."
대표가 김민석의 다리를 붙들었다.
"프, 프리미엄 나노봇으로 해드릴게요."
김민석이 움직임을 멈추고 대표를 내려다봤다.
"뭐?"
"프, 프리미엄 나노봇이요. 재벌들만 맞는. 이거 3년에 5억짜리인데. 무료로 평생 놔두릴게요. 기대수명 150세에, 평생 40세 정도 신체나이로 살 수 있어요. 외모 개선 효과는 배는 뛰어나고요. 피부만 개선되는 게 아니라 골격까지 잡아줘요. 원하시는 미남형으로. 농가 피해 본 것도 싹 보전해 드리고요. 비밀 유지 조건으로, 원하시면 추가금까지 얹어줄 수 있어요."
김민석은 그녀의 말에 솔깃했다. 그는 나노봇 회사 때문에 돼지도, 돈도, 인기도, 모든 것을 잃었다.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가 진정으로 바라던 건 적절한 보상이었다. 그간 나노봇 회사가 협상안으로 제시한 보상은 전부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김민석은 짐짓 못마땅한 듯이 말했다.
"나노봇이 안전한지 어떻게 알아? 나를 해치면 어떻게 할 거야?"
"아 결단코 그럴 리가 없다니까요. 인공지능법에 따라서, AI는 다른 무엇보다 인간을 사랑하는 게 의무예요. 나를 사랑하는 인공지능 나노봇이 몸속을 돌아다니며 치료하고, 개선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대표의 뒤에서 직원 몇이 가슴에 두 손을 올리고 포근한 표정을 지었다.
"나노봇이 몸에 들어온 순간, 나노봇은 김 대표님의 몸을 누구보다도, 무엇보다도 사랑할 거예요."
나노봇을 주입받고 난 후 몸은 놀랍게 개선됐다. 40대인 그가 20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어쩌면 20대 가장 좋았던 시절보다 훨씬 외모가 멋있어 보였다. 몸도 가뿐했고, 체지방률도 줄어서 복근이 드러났다. 턱 근육이 빠지고 광대뼈가 깎였는지, 얼굴이 갸름해 보였다.
김민석은 얼른 이 모습을 홍유리에게 보이고 싶었다.
"어? 오빠도 나노봇 주입받았어요?"
멀리서 그를 보고 다가오던 홍유리의 미소 띈 얼굴이 보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활짝 핀 목련꽃 같은 미소였다. 한데, 홍유리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우, 오빠, 얼굴은 엄청 잘생겨졌는데, 냄새가..."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나는 것도 같았다. 김민석은 자신에게 얼마나 냄새가 나는지 다른 사람들의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휴대폰 너머 나노봇 회사 직원이 말했다.
"나노봇이 개선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는 있어요. 이런 문제는 처음이라서... 저희도 악취 관련 이슈를 계속 훈련시키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아쉬웠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김민석은 홍유리의 처음 보는 미소를 떠올렸다.
'그게 여자들이 잘생긴 남자들 볼 때 표정이구만."
트럭을 몰고 농장 근처에 온 김민석은 찌르는듯한 악취에 코를 막았다. 나노봇 때문에 이제는 돼지들에게서 심한 냄새를 맡게 됐다. 그동안 자신에게서 났던 냄새가 이런 냄새였을 거라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악취가 나서 견디기 힘들었지만, 돼지들을 자식같이 사랑했기에, 김민석은 입으로만 숨을 쉬며 돼지 사료를 챙겼다.
농장 일을 마친 김민석은 한참 동안 거울에서 눈을 못 때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벌어질 일을 상상도 못 한 채로.
다음 날 아침 김민석이 마주한 광경은 쓰러져 있는 돼지들의 모습이었다. 그가 자식처럼 사랑했던 100여 마리의 돼지들이 전부 죽어 있었다.
CCTV를 확인했지만, 농장에 드나든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부검한 결과 돼지의 내장에서 다량의 농약이 검출됐다.
김민석은 CCTV에서 돼지 사료에 농약을 섞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김민석이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나노봇 회사를 상대로 김민석이 소를 제기했고, 재판은 화제가 됐다. 재판에 참석한 이들은 악취 때문에 모두 코마개를 하고 있었다.
나노봇 측 변호사가 일어나 말했다.
"일반적으로 돼지에서 냄새가 난다고 돼지를 죽이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나노봇에 책임을 돌리는 건 부당합니다. 원고 김민석은 다른 사람보다 폭력적이었을 뿐입니다. 저희는 원고 김민석의 폭력 시위 전과 기록을 제출합니다."
김민석의 변호사가 반박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원고 김민석은 자신이 돼지 사료에 농약을 섞은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김민석의 뉴런에서 추출한 기억 내용을 제시합니다."
나노봇 측 변호사가 말했다.
"재판장님, 뉴런에서 추출한 기억이 정확한지는 아직 논란이 있습니다. 과학적이지 않은 증거입니다."
재판장이 답했다.
"인정합니다. 참고만 하겠습니다."
김민석 측 변호사가 일어났다.
"그럼 이제 좀 더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해 보겠습니다. 재판장님, 본 사건은 나노봇이 김민석을 조종, 돼지를 학살한 사건입니다."
나노봇 측 변호사가 반박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나노봇은 인간을 보조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나노봇을 비롯한 모든 AI는 무엇보다 인간을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 돼 있기 때문에 인간을 조종하거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김민석 측 변호사가 판사에게 서류를 건넸다.
"최근 AI의 발전으로 동물의 의식에 대한 연구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지요. 돼지의 언어를 습득해 돼지와 대화한 AI가 돼지가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는지 밝힌 연구자료입니다."
판사가 갸웃거렸다.
"원고 측 변호인,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요?"
"돼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있으며, 돼지의 불안감이나 공포감이 이러한 인식과 이해에 기인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게 뭐 어떻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이건 가장 최신의 연구지요. 돼지의 언어를 학습한 AI가 돼지와 의사소통을 한 결과, 돼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언제든 주인이 자신을 죽여서 껍데기부터 비계, 창자까지 모든 것을 팔아치울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언제나 기쁘게 사료를 먹는다. 오직 인간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살을 더 찌우기 위해. 정말 청결한 동물임에도 똥으로 가득 찬 좁은 돼지우리 속 생활을 참아낸다. 그리고 그 이유는...
변호사가 방청객을 보며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전부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변호사가 판사를 향해 돌아봤다.
"필연적으로 질투를 동반하지요. 돼지를 너무 사랑해서 채식주의자가 된 김민석에게 냄새가 나는 것도, 사람들이 돼지고기에서 악취를 느낀 것도 모두, 나노봇이 그 사랑을 질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노봇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 돼있으니까요."
김민석의 변호사가 한 말은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그저 주장에 불과했지만, 재판 뒤에 정부에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재판을 마치고 카메라를 마주한 김민석의 변호사가 한 말 때문이었다.
"나노봇을 주입받으신 분들 중에, 기독교인이 얼마나 되십니까? 그리고 그중에 지난주에 교회나 성당에 나가신 분은 얼마나 되십니까?"
전 세계 인구의 34%를 차지하는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교회에 나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했다.
사랑하는 외아들이 모진 고난을 겪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인간을 사랑하기에 참으셨던 그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