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자부인 Nov 21. 2023

당신의 정원을 보여주세요

 울라브 하우게의 시

천리포수목원

외향적인 성격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친구를 만나서 반갑게 대했더니 ”친하지도 않은데 애써서 그렇게 말할 필요 없어. “라는 말을 들었다. 기분이 나쁘기보다 수긍이 갔다. 어색한 분위기를 빨리 없애려고 일부러 크게 웃는다든지, 의미 없는 말을 과하게 한다든지 노력했던 나 자신이 멋쩍어지긴 했다. 그런데 처음에 만나 낯설고 친하지 않은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때부터 사람을 대할 때 조심스럽게, 천천히 다가가려 했다. (사람 성향이 갑자기 바뀌지 않아 누가 보면 여전히 푼수처럼 성급하게 다가가는 모습일 테지만)

 시필사모임에서 울라브 하우게의 시를 읽고 적으며 누군가를 대할 때의 나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당신의 정원을 보여주세요

                                     울라브 하우게


 우리의 만남을 위해 오실 때

 경비견을 데려오지 마세요

 굳은 주먹도 가져오지 마세요

 그리고 나의 호밀들을 밟지 말아 주세요

 다만 대낮에

 당신의 정원을 보여주세요


  외향적인 사람에게 누구를 만날 때 ‘경비견을 데려가거나 굳은 주먹을 가져가지 말아 달라’는 부탁은 쉬운 일이 될 수 있다. 마음을 활짝 열고, 빨리 친해지자고 성큼 다가가려 할 것이다. 그러다 ‘나의 호밀들을 밟지 말아 주세요 ‘란 말을 듣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 걸음을 잠시 멈추고 발아래를 살핀다. 이런 정중한 부탁이 새삼 고맙다. 그리고 ’다만 대낮에 당신의 정원을 보여주세요 ‘라는 말을 마음 깊이 새기고 더 천천히 다가가게 될 것이다. 나의 속내를 드러내는 일이 어렵지 않은 사람은 마음을 과하게 펼쳐 보이고 뒷감당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다. 그러니까 시인은 부탁한다. 밤의 분위기에 취해 아침이 되면 이불 킥할 이야기 말고, 대낮에 보여달라고. 날 것 그대로의 너의 마음이 아니라 너의 손이 한 번이라도 닿은, 가꾸어진 정원을 보여달라고. 가식적이 되어 달라는 말이 아니다. 대낮에 보여주는 너의 정원만으로도 너의 진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고, 너와 친해질 수 있다. 집안 구석구석, 미처 청소하지 못한 옷장까지 모두 다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로 들린다.

 나의 정원에는 소소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누군가 찾아온다면 꼭 들려주고 싶다. 다른 이의 정원도 궁금하다.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로 가득한지. 그들의 호밀밭을 밟지 않고 조심스레 들어가 구경하고 싶다. 분명 재밌고 가슴 벅찬 이야기들이 가득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 필명을 바꾼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