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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부인 Oct 12. 2021

 불안의 날들

 불안이 극심해졌던 때는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서였다. 특수목적고등학교 시험을 준비하며 가게 된 학원에서 매일 다 할 수 없는 숙제에 절망했다. 문제집 뒤에 정답을 봐도 풀 수 없었고 프린트로 내준 숙제는 너무 많은 별을 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쳐야 했다. 외워야 할 영단어, 숙어에 지쳤다. 그래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함께 학원을 다니는 친구는 숙제로 고민하고 있는 내게, 그냥 그 시간에 한 문제라도 더 풀기를 권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성격 탓인지 숙제 걱정은 다른 걱정까지 불러왔다. 이렇게 살면 잘 사는 건가, 버스정류장에서 쭈그려 앉아 과일을 파는 할머니가 너무 안쓰럽고, 나의 미래도 그렇게 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불안은 심해져 하루는 엄마에게 병원에 상담을 가보고 싶다고 부탁했다. 학교 앞 작은 정신의학과에 갔는데 아마도 한 시간 넘게 울면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은 계속 듣고만 있었는데, 다른 말씀은 없으셨다. 약 처방과 힘들면 학교에 며칠 결석하고 쉴 것을 권하셨다. 용기 내어 갔는데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집에 와, 며칠 쉬고 다시 학교를 다니며 불안한 날과 괜찮은 날을 번갈아 보냈다.

   시험을 보고 원하던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나의 불안은 더 커졌다. 가서 잘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을 가지고 방학에 열심히 공부했다. 경직된 마음으로 고등학교 입학, 잘해보겠다는 각오도 나보다 훨씬 잘하는 친구들 앞에 무기력해졌고 첫 중간고사에서 그만 백지를 내고 말았다. (고의가 아니라 문제를 도저히 풀 수 없는 불안에 시험을 포기하고 말았다.) 엄마와 선생님들은 너무 놀랐고, 나는 전학을 가든지 유학을 가든지(그때 도피유학이라는 말이 유행이라 뭣도 모르고 우겼다.) 하겠다고 말했다. 마침 시험 후 수학여행기간이라 담임선생님은 여행에 불참해도 좋으니 좀 쉬고 그다음에 결정하라고 말씀하셨다.

  일주일간 외가에 가 있었다. 책은 가져가지 않았고 외할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또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잠을 잤다. 외할머니가 살고 있던 집은 3년 전 아빠가 쓰러져 돌아가신 장소라 그 후로 가지 않았던 곳이다. 오랜만에 간 시골에서 아무 생각 없이 며칠을 보내니 신기하게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평소 과묵한 외할아버지가 한 말씀하신 것도 도움이 되었다. 정신 차리라고 약간 화내듯 말씀하셨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 이듬해 큰 심경의 변화가 있기 전까지 평범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마음이 불안하고 힘들 때는 길가에 핀 작은 꽃에 집중했다. 정말 고마운 꽃들, 그리고 끝없는 지지를 보내준 엄마와 이제는 하늘에 계신 외할머니 덕분에 불안한 사춘기를 지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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