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너머 친정엄마의 목소리가 밝다.
매년 여름, 친구분들과 여행을 가시는데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하신다.
"이번 여행은 최고로 좋았어. 강릉 날씨도 너무 좋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하하하, 작년에도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매번 최고의 여행이라 하시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무튼, 엄마가 즐거우셨다니 좋다. 어릴 적 엄마는 삼 남매를 혼내시는 중에도 집에 전화가 오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상냥하고 고운 목소리로 받으셨다. 그때도 속으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친정엄마의 힘들었고 고된 삶을 한순간에 잊게 만드는 긍정적인 목소리, 오늘도 고마운 마음이다.
딸은 그런 친정엄마를 닮았다. 새로운 음식점을 가면 "여태껏 와 본 곳 중에 제일 맛있었어!"라고 외친다. 과한 감탄에 웃음이 나오지만, 밥을 사주는 부모는 기쁘다. 몇 번 반복되다 보면 딸의 반응에 무뎌지기도 한다. 하루는 김치볶음밥을 해주었는데, "엄마, 엄마. 너무 맛있어! 저녁에도, 내일 아침에도 엄마의 김치볶음밥을 먹고 싶어. "라고 말한다. 그래서 정말 그런가, 내가 그렇게 맛있게 했나 하고 한 입 먹으면, 정말이지 평범한 맛이다.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래도 딸의 칭찬에 기분이 좋다.
정말 좋은 날도 있고, 애써서 그렇게 생각하여 좋은 날도 있다. 정말 즐거웠던 순간도 있고, 애써서 즐거운 점을 찾는 때도 있다. 슬픔과 속상한 마음을 좌악 펼쳐 놓고 그래도 그중에 빛나고 고운 것을 찾다 보면 긍정의 힘이 솟아난다. 가장 쉽게는 변해가는 계절의 아름다움이 그렇고, 오늘 먹은 맛있는 한 끼 식사가 그렇다. 또는 시 필사 모임을 통해 오늘 읽은 시 한 편이 그러했다. 기쁨, 절망, 슬픔이 온다 해도 각각을 존중하라는 시를 읽었다. 슬픔, 절망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슬픔과 절망이라는 감정에서도 좋은 점을 찾아내는 시인의 긍정이 친정엄마와 딸을 떠올리게 했다.
여인숙
잘랄루딘 루미
인간이란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받아들이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거나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가구들을 몽땅 내가더라도
그렇다 해도 각각의 손님을 존중하라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들을 집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하게 여기라
모든 손님은 저 멀리에서 보낸
안내자들이니까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