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프다고 느낄 때, 상처 입은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넸다.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상처 입은 열세 살 나에게 괜찮다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아빠의 부재로 겪는 어려움에 의미를 찾고 싶었다. 나는 부모를 일찍 여읜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상처의 이면을 생각해보았다. 얼마 전 시 필사 모임에서 시를 읽으며 나의 어렸을 때의 바람이 떠올랐다. 시인처럼 나도 그런 삶을 꿈꾸었다.
내가 만일
에밀리 디킨슨
내가 만일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내가 만일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한 울새 한 마리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아픈 마음을 달래며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를 되뇌었고 누군가를 나는 더 잘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을 거라고 꿈꾸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빠에 관한 상처는 참 다양했다. 한 친구는 아픈 아빠가 밉다고 했다. 아빠가 살아있기만 한다면 좋을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 상처를 쓰다듬어 줄 수 없었다.
나의 사춘기는 끔찍했다. 학교 성적이 인생의 전부처럼 느껴졌던 시간이었고 잘해보자는 다짐과 잘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 사이에 방황했다. 불안이 심해지면 죽을 것 같은 기분에 혼자 있지 못해 외출한 엄마에게 계속 전화를 했다. 고등학교 첫 시험지는 백지를 내고야 말았다. 그렇게 좌절의 시간은 깊었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지나갈 수 있었다. 외할머니는 시골집으로 데려가 나를 쉬도록 도와주셨고 자연 속에서 일주일의 쉼은 나를 제자리로 돌아가게 했다. 공황장애에 가까웠던 그 시간을 이겨냈으니 공황장애를 겪는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어른이 된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더욱 복잡하고 그 고통은 내가 겪은 고통과는 다르기에 어떤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 잘 자라고, 잘 쉬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게 다이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힘들어졌다. 20대의 전부를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보냈다. 대학을 졸업할 때 동아리에서 졸업하는 사람들을 축하해주는 자리를 가졌는데 나는 그만 엉엉 울고 말았다. 학비와 생활비 걱정에 마음 졸였던 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난을 경험했다고 가난한 이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가난은 상대적이고 더 힘든 이에게 내 경험은 사치로 들릴 뿐이다. 이러다 나는 누구의 아픈 마음도 위로해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헛된 삶을 살게 되는 건가.
어느 여름날, 남편은 매우 힘든 시간을 가졌다. 힘든 이유를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매일 함께 공원을 걸었다. 같은 경험을 하지 못했어도, 다 알지 못해도 옆에 있어주는 것으로 힘이 되어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받은 상처의 의미나 이유를 굳이 찾지 않는다. 상처 많은 내가 남들보다 다른 이의 상처를 더 잘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상처 입은 과거의 나에게 미안하지만 그냥 살다 보면 상처가 없을 수 없다고 말해주어야겠다. 그 상처가 무슨 큰 유익이 될 수 있다는 말은 해주지 못하게 되었다. 삶의 순간순간이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힘든 날, 아픈 날 잘 견디느라 수고했다고, 헛되고 허망한 삶이 아니라고 다독여주어야겠다. 누군가의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괜찮은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