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유치원을 다닐 때였다.
“엄마가 더 키가 작은데, 왜 엄마는 큰엄마야? 작은 엄마가 더 큰데?”
그렇다. 동서는 나보다 키가 훨씬 크다. 엄마가 큰 형의 부인이라고 설명을 했던가. 아님 기분이 나빠져 피식 웃고 말았던가.
친척관계는 호칭만 보면 정말 가깝다. 내게도 큰엄마가 있었고 큰아버지가 있었다.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그들이 우리에게 보인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제일 먼저 죽은 막냇동생을 불쌍하게 생각하긴 했을까. 자신들의 남은 삶이 너무 중요했던 걸까. 어린 나이였지만 그 어른들의 모습 속에 상처 받았다. 가족에 대한 기대가 커서였을지도 모른다. 그중 한 사람이 나는 참 미웠다. 그 미운 어른을 한 번은 용서하고 싶었다. 껍질이 벗겨져 서 있는 가로수를 보고 있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해줄 것 없는 나는 누구를 용서하고 싶었나 보다. 가로수를 하나 둘 세며 걸었다. 오십 그루까지 세었고 용서하기를 포기했다. 돌아보면 우스운 이야기일 뿐이다. 그 어른은 상처를 준 걸 알기나 할까. 우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기라도 했을까. 그런 고민은 필요도 없었다. 다른 일가친척에게 도움을 받은 적도 많다. 그러니 서운하고 상처 받은 것만 기억하는 나 자신을 돌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도움을 주셨던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하고 살아야 할 텐데,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모습으로, 내 가족만 챙기기에 급급해서 살고 있지 않는가.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도 엄마는 엄마의 시가 식구들과 자주 연락을 하고 지냈다. 자녀들을 위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안다. 여전히 친척은 남보다 멀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게도 조카들이 생겨 큰엄마라고, 외숙모라고, 이모, 고모라고 불릴 때 그 귀여운 아이들의 얼굴을 한번 더 쳐다본다. 내 언니의 아이, 내 동생의 아이, 남편의 동생들의 아이… 우리가 먼 사람들이냐고, 이렇게 가깝지 않냐고, 생각하게 된다. 삶이 어려워질 때에도 귀여운 그들을 떠올리며 손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용서가 안되면 용서할 그 힘을 아껴서 또 내게 주어진 사람들을 사랑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