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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굽는 건축가 Nov 18. 2021

김치 항아리와 달력

2019년 11월 21

겨울맞이 채비를 해야 합니다. 남쪽 마당 야외 수전 (정원에 물 주는 수도)을 보온재로 감싸주어야 하고, 다용도실에 있는 환기용 바람구멍은 비닐로 닫아 주어야 합니다.

정원에 놓인 수전은 ‘부동 급수전’이라고도 불리는데 겨울에도 얼지 않는 수도를 이야기합니다. 얼지 않는다는 말을 신뢰하기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이웃동네 어르신들이 안 입는 옷가지와 비닐을 이용해 감싸주는 것을 보고, 따라 하고 있습니다.

야외 수전의 용도는 다양합니다. 텃밭에서 거두는 채소와 나무에서 거두는 (모양은 없지만) 과일들을 씻을 때 사용하거나, 흙이 묻은 채소들을 주방으로 들여오기 전에  흙을 털어내고 채소를 다듬는 용도나, 장화에 묻은 흙을 털어낼 때, 고양이에게 물을 주거나, 가뭄 때 텃밭에 물을 뿌릴 때도 사용합니다. 여름에는 아이들 물총에 물을 넣어주는 역할도 합니다.


다용도실에는 외부와 연결되는 환기 구멍이 있습니다. 가스보일러의 공기구멍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구멍으로 겨울철 찬기운이 들어와서 최소한의 구멍만 남기고 비닐로 닫아 주어야 합니다. 두 해전에는 환기구멍을 막지 않아 수도가 동파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시골 살림에서 수도가 얼거나 보일러가 고장이 나면, 일차적으로 집주인이 사태를 파악하고 가능하면 수습을 해야 합니다. 우선해서 해야 할 일은 추운 계절이 돌아오기 전에 예방을 충분히 해 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시골살이를 하면서 동파로 인해 얼어버린 파이프를 세 번 녹인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영하 25도가 된 정말 추운 겨울 아침에 북쪽 외벽에 면한 화장실의 변기 파이프가 두 번 얼었었고, 다용도실 수도 압력계가 얼은 적이 있습니다. 세 번 모두 제 손으로 직접 뜨거운 수증기를 이용해 녹이는데, 얼음이 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인내심도 필요하고,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을 부르기에는 시내에서 우리 집까지 오는 출장비도 만만치 않지만, 직접 손을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동파가 되지 않도록 준비를 많이 해 놓고 있습니다. 덕분에 추운 겨울에 일어나는 문제점을 배워서, 건축 계획을 세우고, 신축 공사를 할 때 북쪽에는 위생기구나 물이 지나가는 파이프가 위치하지 않도록, 지나가더라도 보온이 가능하도록 설계와 시공에서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공사한 집에 동파가 나는 일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시골에 달력이 필요한 이유도 비슷합니다. 달력 중에서도 농사를 중심으로 표현된 달력이 필요합니다. 스마트폰에서는 한눈에 볼 수 없는 12달의 24절기가 잘 나타나 있고, 아랫단에는 매 절기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어, 농사를 주업으로 하지 않아도 24절기가 표현된 달력이 시골살이에 도움이 됩니다. 

저만해도 스마트폰에 일정표가 있고, 보험사, 건축 관련 회사, 세무사에서 보내주는 달력들이 몇 개 있지만, 가장 요긴하게 쓰이는 것은 농협에서 주는 방석만 하게 큼지막한 달력입니다. 농사는 주말과 휴일이 중심이 아닙니다. 해와 달의 운행에 따라서 보름 단위로 절기를 표현해 놓아, 계절의 변화를 편하게 볼 수 있고 그에 따른 준비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내일은 절기상으로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어는 소설(小雪)이고 한 달 후면 동지(冬至)가 됩니다. 이번 주말에는 지방으로 출장을 다녀와야 해서 오늘내일에 걸쳐 겨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요청으로 어제 동쪽 마당에 장독대를 묻는 일을 시작으로 겨울 채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부터는 장독을 땅에다 묻고 김장 김치를 먹어보자고 합니다. 살림이 단출해서 김장이라고 해봐야 몇 포기되지는 않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1년 중에 큰 행사입니다. 해마다 어머니가 두 통을 담아 보내주시고, 부산에 사는 친구 어머니도 한통을 꼭 보내주십니다. 그리고 아내와 제가 두통을 담으면 봄까지 김치 걱정은 없습니다. 땅에 독을 묻고 김치를 보관하자고 하니, 어릴 적에 어머니가 뒷마당 독에서 꺼내어 냉면에 말아주시던 얼음 낀 동치미 맛이 입안에서 돌고, 차가운 김장김치 생각에 침이 고이게 되네요. 

이럴 때 아내에게 점수를 따 놓는 일은 중요합니다. 아내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적극 지원과 참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20년 결혼 생활에서 얻은 비결이기도 하고 아내가 삽질을 하면서, 장독을 묻으며 혹시라도 독기를 품는 것보다는 그래도 제가 하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오두막에 들여놓은 열대성 화분들도 온실로 옮겨야 합니다. 가을 들어 갑자기 내리는 서리를 피해 서쪽 마당에 두었던 화분들을 들여다 놓은지도 한 달 정도 되었습니다. 화분, 고양이 집, 나무의자, 차 마시는 탁자, 고구마 박스 같은 것들이 온실 안에 들어오면 겨울 온실은 계절 살림살이들로 북적입니다. 

온실은 말 그대로 Sun room 이기 때문에 창이 큽니다. 그 창을 통해 낮이 가장 짧아지는 동지에도 햇살이 가득 들어옵니다. 동지 때 외부 온도가 영하 15도에서 20도까지 내려가도 온실의 한 낮 온도는 영상 15도에서 23도 정도를 유지하니 한겨울에 햇살 샤워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소개하라면 온실을 추천합니다. 우리 집 온실은 기초공사를 할 때, 바닥에 40센티 두께의 자갈을 채워서 두껍게 만들고, 그 위에 시멘트를 바르고, 타일로 마무리했습니다. 일명 열을 저장하는 장치인데요. 그 효과가 쏠쏠합니다. 겨울철 햇볕에서 오는 열기를 자갈층에서 머금고 있다가 저녁에 내보내 주는 일종의 '축열 장치'입니다. 한 달 전에 온실로 옮겨진 피망과 고추 화분에는 파란 피망과 고추가 아직까지 달려있고, 다음 열매를 위한 꽃도 피고 있습니다. 추운 곳보다는 따뜻한 곳이 좋고, 냉랭한 사람보다는 따뜻한 사람에게 마음이 갑니다. 저도 따뜻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데, 가끔 망설일 때가 있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항아리에서 꺼낸 시원한 김치에 군고구마를 먹으며, 온실에서 맛있는 커피도 한잔하겠지요. 아마도 온실에 앉아 있으면 햇살에 몸이 녹으면서 졸음이 찾아올 거예요. 그럴 때는 거부하지 않고 졸음을 맞이해야겠어요. 졸다가 침을 좀 흘리거나 목이 아프면 일어나겠지요.


아침에 덩어리(levain loaf) 발효빵을 구웠습니다. 

두덩이 중에 한 덩이는 종이봉투에 담아 친구에게 보냅니다. 비닐봉지 대신에 종이봉투에 담으니 제법 모양이 좀 납니다. 

일전에 발효 빵집에 들렸다가, 봉투를 몇 개 얻어왔습니다. 종이 한 장이지만 쓰임에 맞으니 보기 좋고 빵도 모양이 납니다. 

아내는 내일 작은 항아리에 담긴 매실과 포도 효소를 걸러내고, 김장 항아리에 담긴 소금도 다른 통에 옮기자고 하네요. 이럴 때 ‘가볍게 예’하고 합니다.  


농협에서 얻어온 달력은 계절의 이야기를 담은 주제어로 가득합니다. 예를 들면 밭작물과 경제작물의 차이점 같은 것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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