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쟁이가 되지 말자고 다짐하는 봄

매일 새로운 너

by 빵굽는 건축가

“요 며칠 사이 엄마 아빠 때문에 불편했지?”

“응 아주 많이 불편했어”

“그 정도였구나”

“아빠는 매일 새로운 너를 만나고 있어, 엄마 아빠는 딸을 처음 길러 보잖아”

“난 매일 똑같은데”

“너는 매일 비슷한 엄마 아빠를 만나고 있겠지만, 아빠는 매일 새로운 딸을 만나고 있어서 잘 모를 때가 있어, 많이 불편했다고 하니 미안해”


초등 5학년이 된 딸아이와 함께 이웃마을 도예 형님댁에 다녀왔습니다. 올해 초부터 시작한 도예수업에서 그릇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꼴을 만들어 내는 일이니 건축가인 제 직업과 도예 작업에는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흙을 만지면서 형님댁의 그릇에 대한 철학과 ‘생활하는 장소’를 공간으로 만들고 있는 저에게서 공통분모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생활이 디자인이다’ 같은 지향점입니다.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딸아이의 개학이 몇 차례 미뤄지면서 딸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빠랑 도예수업 같이 갈까?”

딸아이는 저를 바라보며, “그래? 그런데 삼촌이 담배를 피워서 냄새가 나는데”

“아빠는 냄새가 안 나는데 냄새가 나는구나, 그럼 마스크 쓰고 갈래?”

“조금 그렇잖아 그냥 가지 뭐”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도예공방 가는 길은 우리 동네 입구를 나서자마자, 오래된 작은 다리를 건너고, 십수 년 전까지 주막이 있던 주막 삼거리 집을 끼고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나면, 시골풍의 초록지붕 교회를 만나게 됩니다. 조금 더 지나면 딸아이가 다니는 분교 운동장과 단정한 교실 건물이 보이고, 학교 앞에 반짝거리며 흐르는 시내와 나란히 만들어진 길을 따라가면 동막골이라는 마을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길 좌측으로 우리 동네 산이네가 잠시 살던 빨간 벽돌로 지어진 마을회관이 있고, 건축가라면 알만한 행랑과 대문, 사랑채와 안채를 갖춘 낡은 옛집들도 눈요기거리로 볼 수 있습니다.


길을 따라 얼마간 더 오르면 노인회관에 도착합니다. 저는 늘 이곳에 주차를 하고 100 보정도 걸어서 공방에 다가갑니다. 잠깐이지만 걸어가는 이 길에 닭들도 볼 수 있고, 철마다 변하는 눈높이 풍경도 좋습니다.

도예공방 소개를 해볼까요? 북향으로 집을 앉힌 형님댁은 맑은 여름날에도 차분하게 푸른 기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산이 높은 남쪽을 바라보고 왼편에 하얀 벽 작업장과 오른편에 살림집을 두고 북향으로 마당을 두고 있으니, 누가 보면 이렇게 추운 곳에서 겨울에는 어떻게 사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형님댁이 북향으로 꼴을 잡은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남쪽에 면한 산이 높아, 햇빛이 짧게 들기는 해도 전업작가인 두 분의 도예 작업과 생활을 위한 짜임새 있는 기다란 구성은 건축가인 제가 매력을 느낄 정도로 ‘도예가의 기운’이 흐르고 있습니다. 잠자는 시간과 식사하는 시간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공방에 계신 두 분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우선한 집이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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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 가는 길에 만나는 풍경들은

계절이 어떻게 흐르는지, 이 길은 어떻게 이어지는지,

사람들의 표정에 실린 설렘들은 어떤지 눈치껏 알 수 있는 색감 같은 것이 있습니다.



공방, 전시장, 집을 주욱 연결하면 ‘ㄷ’ 자 배치가 됩니다. 제 나름대로 특징을 파악하고 북향집이 가진 매력은 어떤 것이 있는지 조금 더 정리가 될 때쯤에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형님댁의 북향 배치에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어느 날 이렇게 물어보기 위한 저만의 기다림이라고 할까요? ‘생각을 숙성시키기’ 위한 시간인 셈이죠. 건축가인 제가 성급한 판단으로 생활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한 번은 도예 수업 중에 형수님께 “공방에 빛이 들지 않는데 햇볕이 흙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요?”, 형수님은 “볕도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것이 바람이 많이 불면 흙을 빚는데 어려움이 있어요, 빨리 말라버리게 되거든요.”


역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빨래를 예로 들어도 좋을 듯한데 햇볕과 바람이 잘 들면 빨래가 뽀송하게 마르는 이치와 맥락이 같았던 것이죠. 역시 성급히 물어보지 않고 몇 달이 지난 후에야 질문을 했는데, 답을 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바람의 영향 외에도 흙을 다루는 공방의 특징을 여러 가지 일러주셨습니다.

작은 접시 하나를 가지고 조물딱 거리는 저를 보며 형수님은 “그리 오래 들고 있으면 손에 있는 열 때문에 흙이 금방 말라요. 조금 더 속도를 내세요”라며 흙의 성질을 알려주십니다.


어제 도예수업은 형수님이 없는 가운데 딸아이와 둘이서만 흙을 빚었습니다. 저도 수업을 받으며 하나씩 배워가는 처지라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할 만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딸아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도록 놓아두고 한 발짝 떨어진 옆자리에서 지난주에 이어 손가락 한마디 높이에, 한 뼘 안에 들어오는 사각 접시를 만들었습니다.


아빠가 접시 3개를 만드는 동안 딸아이는 접시, 화병, 컵 2개를 만들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아이의 작품에 느낌이 있어요. 저와는 다른 시선과 형태라고 하면 좋겠네요.

“아빠 흙은 마음대로 써도 돼?”

“응 삼촌이랑 이모가 그래도 된다고 하셨어”


한 시간 정도 지나서 형님이 군만두와 배를 깎아서 가져오시곤 딸아이의 작품들을 살펴보시더니 “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형태를 만들어내는구나, 도예가의 길을 가도 되겠어”

저도 기분이 좋지만 딸아이도 좋은지 으쓱하는 어깻짓을 보입니다.

그릇을 굽는 일은 형님 일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며, 딸아이가 만든 질그릇을 주의 깊게 보아주고, 특징들을 담아주니 아무리 백 점짜리 아빠라고 해도 담배냄새가 배인 느긋한 형님을 넘어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빠 삼촌한테 담배냄새는 나지만, 만두는 정말 맛있더라, 다음에도 같이 올래”


조만간 시작될 딸아이의 사춘기를 직감하고 있습니다.

공방에서 흙을 빚으며 아이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정말? 그래, 다음 주에도 같이 오자”


요 며칠 잔소리 쟁이 아빠 때문에 많이 불쾌하고 힘들었다고 하니 잔소리도 줄이고, 옆에서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힘을 길러야겠습니다. 저에게 딸은 매일 새로운 딸이기 때문에, 난감할 때가 많기는 해도 아이에게 잔소리쟁이 영감탱이라는 소리는 더 이상 듣지 말아야겠습니다. 아직 영감이 되려면 멀었는데 몇 주전에 본 영화 속 대본을 저에게 종종 써먹고 있네요.


“잔소리쟁이 영감탱이” 조금 억울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마당에 피어나는 푸른 매화, 밝은 자두꽃, 담아내 오른 노란 꽃 수선화 무리, 꽃대가 오르기 시작한 색색이 튤립, 향을 내기 시작한 애플민트, 5월을 준비하는 장미처럼 설레고 화사한 사춘기의 세상으로 다가서는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고마운 계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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