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사무소에서 알려드립니다.
"엄마 오늘도 그 할머니 마스크 안 썼어!"
"휴... 그 어르신 정말 어쩜 좋지?"
엄마는 분노를 넘어 슬픔이 보였다.
엄마는 왜 사람이 저렇게 까지 공중도덕에 무뎌지는 건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건지 슬프기까지 하다고 했다.
"관리사무소에서 알려드립니다. 마스크 착용 의무 안내방송입니다.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에 따라 현재 심각단계로 마스크 착용은 의무입니다. 특히 엘리베이터와 같은 밀폐공간에서는 코와 입이 완전히 가려지도록 마스크 착용 부탁을 더욱 철저히 해 주시기를 바라며 마스크 미착용 시 벌금이 부과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내가 엄마에게 집에 오자마자 마스크를 쓰지 않은 12층 할머니의 이야기를 하는 순간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엘리베이터에는 나 말고도 6층 서연이와 13층 아줌마가 함께 타고 있었는데 다들 그 할머니를 째려보고 있었으니까 누군가 관리사무소에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서연이는 집에 가면 이모가 출근하고 없으셨을 테니까 아마도 13층 아줌마가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내 생각이지만 13층 아줌마의 빠르기라면 벌써 우다다다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서 말씀하셨을 것 같다.
12층 할머니는 여러모로 우리 동 사람들의 적이다.
처음 만난 건 몇 년 전 우리가 이사하는 날 1층에서였다. 이삿짐이 들어오는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그 할머니는 1층에서 전화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엄마가 어쩌고 저쩌고 하시면서 소리를 지르셔서 할머니 딸이나 아들이랑 통화하는 거로 생각만 했고 그냥 화가 많이 났나 보다 했다. 화장도 안 하고 파마도 안 하고 군인가방 같은 가방을 멘 할머니는 아주 날씬하고 꼿꼿했는데 그래서 나는 더 무서웠다.
엄마는 그냥 할머니가 무슨 일이 있으신가 보다 하고 눈인사를 하고 얼른 2층으로 올라왔다. 1층에서 부담스럽게 소리를 질렀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우리 동의 유명인사였다.
어느 날 등굣길이었는데 할머니가 손에 쓰레기를 들고 내려오셨다. 그러더니 종량제 봉투 투입기계를 '삑'경쾌하게 열더니 쓰레기를 넣어버렸다. 엄마는 기겁했다. 특히 우리 엄마는 쓰레기에 민감한 편인데 화가 나서 펄쩍펄쩍 뛰었다.
"어머! 저 할머니 뭐 하는 거야? 왜 저래? 저거 봉투 값이 아까워서 저러시는 거야? 세상에... 애들 학교 가는 길에 뭐 하는 거야?"
엄마는 쉼 없이 분노를 쏟아냈다.
엄마가 분노를 쏟아내고 있는데 나희 이모가 오더니 유명하다고 했다. 늘 쓰레기를 손에 들고 와 그냥 투입하고 가버린다고...... 아무리 관리소에서 이야기하고 아무리 사람들이 민원을 넣어도 소용이 없다고......
엄마는 우리에게 학교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고는 그 길로 관리사무소로 찾아갔다고 한다. 문도 열려있지 않아 방재실에 들러 경비 아저씨와 한 참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도 나는 그 할머니가 작은 봉투 같은 데나 장바구니에 쓰레기를 들고 나와 쓰레기만 버리고 봉투는 챙겨가는 장면을 몇 번이나 봤다. 똑바로 쳐다보면 그 할머니가 헨젤과 그레텔 과자집 할머니처럼 나를 무섭게 쳐다볼 것 만 같아서
정확히는 잡아먹을 것만 같아 힐끔힐끔 보고 도망갔다.
그 할머니는 쓰레기만 그렇게 버리는 게 아니었다. 학교 앞 횡단보도를 두고 무단횡단을 했다. 한 번은 엄마와 코스트코에 가려고 아파트 주차장 모퉁이를 도는데 갑자기 인도에서 확 튀어나와 엄마가 끽 서는 바람에 내가 머리를 쾅 부딪힌 적도 있다. 엄마가 창문을 열고 뭐 하시는 거냐고 크게 소리를 질렀지만 그 할머니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하나만 안 지키는 사람은 없구나......
역시나 코로나가 유행해서 모두들 마스크를 쓸 때 그 할머니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우리 엄마같이 화가 많은 사람도 그 할머니에게는 더 이상 화라는 감정조차 남지 않는 것 같았다.
그냥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이 엄마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하더니 그날부터 엄마는 그냥 그 할머니를 투명인간 취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