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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영신 Sep 06. 2024

1001호 도서관관장님

관장님 파이팅

내가 여섯 살 때인가? 일곱 살 때인가?

이사 온 지 며칠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와 아파트의 작은 도서관에 처음 갔다. 


안경 쓰고 단발머리에 갈색털이 달린 무릎까지 오는 긴 카키색 패딩을 입은 선생님이 다가왔다.

도서관이 너무 추워서 패딩을 끝까지 잠그고 안경에도 선생님이 말을 하거나 콧바람을 낼 때마다 김이 서려 얼굴이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5동에 2층에 새로 이사 온 집 맞죠?"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들이 둘이구나! 우리 5동에 사시는 분들이 여기 도서관에서 제일 많이 봉사를 해요! 우리 동 바로 앞이잖아! 이 시간에 여기 온 거보니 애기엄마도 집에 있구나? 여기서 같이 봉사해 보는 거 어때요? 봉사시간도 채워주고 아이들도 엄마가 여기 있으면 도서관에 더 자주 온다고! 엄마가 도서관에 있으니 아이들이 자꾸 오고 오다 보면 책을 보고 보다 보면 자꾸 똑똑해지는 거지 뭐! 나도 우리 애들 그렇게 키웠어!"

"......"

엄마는 방학계획을 하며 굳은 결심을 했지만 그날 이후 아파트 단지도서관에는 우리만 보냈다. 



언니가 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방학 엄마는 매일매일 도서관에 갈 거라고 했다.

아침을 먹고 도서관에 가서 계속 책을 보고 

점심을 먹고 놀이터에서 신나게 노는 것으로 겨울방학을 보낼 거라고 했다.


 그때 우리 집은 지금 살고 있는 2층집으로 이사 온 지 며칠 되지 않았고 우리는 전에 집에 살 때 다니던 유치원, 학원을 모두 그만두고 왔기 때문에 아무 스케줄이 없었다.

나는 곧  미술학원이랑 태권도학원을 다니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엄마는 방학 동안 이렇게 지낸다고 했다. 


매일 도서관에 오는 일이 좀 귀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학원에 가는 일도 귀찮기는 마찬가지이고 공원 안에 있는 도서관에 가면 매점에 가서 엄마가 가끔 컵라면도 사주고 가끔 핫초코도 사주고 더운 날이면 설레임도 사준 것이 생각나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아파트에 오고 아파트 도서관이 꽤 넓다는 것에 엄마는 만족했고 우리와 함께 도서관 나들이를 할 생각에 신나 했다. 그런데 도서관에 간 첫날 엄마는 편하게 책을 보고 싶었는데 엄마가 책을 한 장 넘길 때마다 따뜻한 둥굴레차 마셔라 이쪽 코너는 무슨 책이다 저쪽 코너는 무슨 책이다 하는 선생님의 이야기에 "네~네~"만 하다가 세 시간을 보내고 지쳐버렸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그 도서관 관장님이었고 아파트 도서관을 이만큼이나 성장시킨 잔다르크였다고 한다. 좋은 분이기는 하지만 엄마는 그 선생님의 레이더에 잡혀 편하게 책을 볼 수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엄마는 다음날부터 차로 5분 정도 걸리는 공원 안 도서관으로 우리를 다시 데려갔다. 우리가 오늘은 거기까지 가고 싶어 하지 않으면 아파트 도서관에서 각자 3권씩 책을 빌려오라고 하시고 아래에서 기다렸다가 집으로 가지고 가서 따뜻한 유자차와 함께 책을 읽었다.


엄마는 도서관관장님을 싫어하지 않았지만 너무 가까이 두고 싶어 하지 않았고 나도 그랬다.


우리는 도서대여의 기능을 충실히 하며 아파트 도서관과 가까이 지내고 도서관관장님과 적당히 거리를 두며 그렇게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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