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의 감성을 공유한 아이돌과 K팝
발행시간: 2022년 8월 21일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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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지나김 (예술마케터 & 예술감독)
알고보면 소름돋는 이유있는 클래식 샘플링
파멸의 감성을 공유한 아이돌과 K팝
"드뷔시 달빛 아름다운 선율에 감춰진 깊은 슬픔,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움이 파멸로 이끌다"
[BTS, 샤이니, 그리고 드뷔시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움이 파멸로 이끌다.]
유포리아 [다행감]
신체적 및 정서적으로 행복한 상태로서....이 상태는 보통 인위적으로 유도된다. 즉 다행감은 더 이상 자연적으로 생기지 않는 행복감이나 기쁨의 경험을 되찾으려는 시도로 인한 결과이다...개인은 외부 현실이나 심리 내적 현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다행감의 극단적인 형태는 기질적, 중독적, 또는 외상적 뇌 증후군에서 나타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BTS의 유포리아라는 곡의 제목이 품고 있는 사전적 정의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뜻을 품고 있을 줄이야.....
'유포리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행복한 상태', '거짓 행복' '현실과 내면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어떠한 심적 상태'를 의미함 정도로 해석해본다.
현실과 내면의 부조화를 여실히 그리는 BTS 유포리아
19금으로 설정된 BTS 유포리아의 뮤직비디오는 BTS멤버 태형이 바다에 뛰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 다시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어린 소년들의 가슴 아픈 장면들이 이어지고
'현실과 내면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거짓 행복감을 뜻하는 '유포리아'의 사전적 의미를 그대로 반영하듯
한 소년의 피에 물든 두 손은 겹겹이 포개 놓은 하얀 꽃잎을 쥔 두 손으로 변한다.
이어 드뷔시 달빛이 흐른다.
그렇게 영상은 행복한 한 때, 그리고
다리 아래, 병원, 바닷가 등을 배경으로 두 손을 활짝 펼치고 중심 잡으려 애쓰는 BTS 멤버들의 모습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평온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위태위태한 순간마다 드뷔시의 '달빛'이 울려 퍼지고 이어 밝고 명랑한 유포리아가 흐른다.
굳이 긴 설명을 보태지 않아도 '거짓 행복'을 의미하는 곡의 제목을 영상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BTS 곡 자체에 대한 심오한 설명은 나보다는 '아미'가 훨씬 더 잘 알고 이미 깊게 해석해 놓았기에 곡에 대한 소개는 이쯤 하기로 한다.
그런데 왜 이 작품은 수많은 클래식 곡 중 드뷔시의 '달빛'을 샘플링했을까?
유독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로 한국인에게 인기 많은 클래식이라는 단순한 이유는 아닌 듯하다.
금지된 사랑의 파멸을 사모한 드뷔시의 '달빛'
'달빛'은 작곡가 드뷔시와 동시대를 살았던
프랑스의 시인 폴 베를렌의 작품 하얀 달(Clair de lune by Paul Verlaine)을 모티브로 삼아 탄생한 곡이다.
드뷔시가 한창 예술활동을 하던 때 그는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으로 알려진 '화요회'에 나가곤 했다.
화요회의 젊은 예술가들은 기존의 미학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들은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의 집에서 모이곤 했다. 그때 함께 했던 예술가가 화가로는 고갱, 모네, 마네였고, 문인으로는 베를렌, 발레리, 푸루스트, 음악가로는 드뷔시가 있었다. [출처 객석 2018.12.31 드뷔시 '달빛']
플로렌의 작품을 사랑했던 클로드 드뷔시는 그의 작품 '우아한 축제(Fêtes galantes)'에 영감을 받아 6개의 시에 곡을 붙인 '베르가마스크 모음곡(Suite Bergamasque)'을 작곡하였다.
이번 편에서 소개하는 '달빛'은 총 4곡으로 구성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3번째 곡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담스럽지 않은 길이의 바로 이 세번째 아름다운 피아노 곡 '달빛'에 익숙하다.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서정적이고 유난히 아름다운 멜로디가 아주 매력적인 곡이다.
'달빛'에 얽힌 사연의 주인공인 시인 폴 베를렌은 사실 시인 랭보의 연인이었다.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영화 '토탈이클립스'의 소재가 되기도 해서 꽤나 알려진 스토리이기도 하다.아그니에슈카 홀란트 감독, 랭보 역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베를렌의 데이비드 슐리스 주연의
1995년 개봉작이다.
프랑스 천재 시인 랭보와 베를린, 이 둘의 사랑은 당신의 예상대로 금지된 사랑이었다. 당시에도 그들의 사랑은 사회적으로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이었다.
특히나 베를린은 이미 기혼자인 상태에서 랭보와 사랑에 빠졌으니 그 둘 사랑의 처참함은 예견된 바와 다름이 없었다.
폴 베를렌 '하얀 달'
하얀 달이 빛나는 숲 속에서
가지마다 우거진 잎사귀 사이로 흐르는 목소리
오 사랑하는 사람아
깊은 겨울 연못에 드리운 버드나무의 검은 그림자는 바람에 흐느끼네
아, 지금은 꿈꾸는 때
별들이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하늘에서
크고 포근한 고요가 내려오는 듯 아득한 이 시간
폴 베를렌 하얀 달의 우리말 번역본이다. 아름답지만 쓸쓸하고 사랑하지만 슬프다.
서로의 글과 정신세계에 매혹되어 "사랑한다 착각했던" 그들의 사랑은 현실과 동떨어진 거짓 행복인 '유포리아'에 가까운 감정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복잡하고 방탕한 연인으로 지내던 그들은 결국 베를린의 타오르는 질투심으로 파국에 치닫는다.
약 2년에 걸친 그들의 열정적이고 비현실적 사랑은 베를린이 랭보를 권총으로 저격하며 끝을 맺는다.
다행히 랭보는 작은 부상만을 입고, 이후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이란 시집을 통해 파멸에 이르는 그간의 체험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리고 베를린은 이 사건으로 수감되어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감옥에서 그의 원래 아내인 마틸드와의 향수를 그린 작품 '말 없는 연가(Romances sans paroles)'를 써 내려간다.
그의 말년은 알코올 중독, 약물중독, 자살시도 빈곤에 이르는 고통과 비극이 가득 찬 삶이었다.
랭보 역시 베를린과의 방탕한 연인 생활을 끝내고 유랑생활 중 병마로 인해 37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천재 음악가와 천재 시인의 합작으로 탄생한 심오한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드뷔시의 '달빛'은 공교롭게도 또 하나의 비극과 맞닿아 있다.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안식: 샤이니 故 종현의 '하루의 끝'
2017년 겨울 수많은 팬과 가요계에 슬픔을 가져온 사건이 있었다. 샤이니의 종현이 세상을 떠나버렸다.
샤이니 종현의 자작곡으로 완성된 노래 '하루의 끝'에서 그는 노래한다.
너의 그 작은 어깨가 너의 그 작은 두 손이
지친 내 하루 끝 포근한 이불이 되고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故 종현의 자작곡 '하루의 끝' 중에서]
그리고 끝내 그는 2017년이 끝나가던 어느 날
영원한 '하루의 끝'이 되어 '포근한 이불'로 돌아가버렸다.
이후 2020년 그의 소속사였던 SM은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 공교롭게도 드뷔시의 '달빛'을 샘플링한 오케스트라 버전 '하루의 끝'을 선보인다.
故 종현의 팬들에 의하면 그가 달을 좋아한다는 말을 종종 했다고도 전해진다.
그리고 실제 그가 세상을 떠나던 날 그의 많은 팬들은
대낮에 뜬 기묘한 에메랄드 빛 달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그의 마지막 선물이라 이야기했다.
우리를 떠난 아름다운 아티스트 한 명이 그저 달을 좋아했다는 이유였을까?
그런 단순한 이유로만 그의 작품에 드뷔시의 '달빛'이 입혀진 것만은 아니라 믿는다.
그가 꿈꾼 영원하고도 포근한 '세상에 없는 휴식',
베를린이 꿈 꾼 '금지된 사랑',
그리고 BTS가 그린 '거짓 행복' '유포리아'는
"어쩌면 모두 존재하지 않는 희미한 달빛과 같은
서글픈 아름다움이었을지 모르겠다."
사라질까 조마조마한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예술처럼
결국에는 모두 파멸로 이끌어 버리는
그런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 뒤에 감춰진 드뷔시 '달빛'이 전해주는 이야기다.
[조성진 Seong-Jin Cho] Debussy Claire de lune 드뷔시 달빛 감상하기
글 예술 마케터 지나 김
발행시간: 2022년 8월 21일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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