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감성을 담은 K팝 속 클래식 이야기
발행시간: 2022년 10월 27일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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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지나김 (예술마케터 & 예술감독)
그땐 그랬지-시대의 감성을 담은 클래식 샘플링
응답하라와 뉴노멀 사이 우리의 감성
신승훈, 신화, 장나라, 소녀시대
BTS, 블랙핑크, 레드벨벳, 그리고 여자아이들 등 세계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아이돌 그룹은 연이어 클래식 샘플링 곡을 발매했다. 일부 팬들에게는 클래식 샘플링이 마치 시대적으로 유행하는 창작기법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K팝 속 클래식 샘플링하면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곡과 가수가 있다. 발라드의 황태자라 불리는 가수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란 곡이다. 1991년 말 발매된 이 곡은 베토벤의 가곡 ‘Ich liebe dich’의 한 소절을 도입부에 인용했다. 당시에는 꽤나 신선한 가요와 클래식 가곡의 만남이었기에 클래식 음악을 접목했다는 것만으로도 이슈가 되었다. 곡의 시작과 함께 울려 퍼지는 베토벤 가곡은 본 곡의 감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삽입한 깜짝 선물과 같은 느낌이다. 대신, 앞서 만난 요즘 아이돌 그룹의 K팝처럼 가곡 ‘Ich Liebe Dich’의 멜로디나 클래식 곡 자체가 지닌 감성이 가요 전반적으로 스며들어 있는 형식과 다소 차이가 있다.
베토벤 가곡 ‘Ich Liebe Dich’의 가사는 독일 작가 칼 프리드리히 빌헬름 헤로세의 ‘Zärtliche Liebe(부드러운 사랑)’라는 시로부터 발췌한 것이다. 이 시는 슬픔과 위안을 나눌 수 있는 연인 혹은 사랑하는 자를 축복하는 내용이다. 가수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에 담긴 떠나버린 사랑 혹은 슬픈 사랑의 모습과는 다르다. 물론 신승훈이 이 곡을 작곡했을 당시 진정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할 수 없었던 베토벤의 사랑(‘베토벤 환희의 송가 HOT 빛’ 편에서 자세히 소개됨)이 그가 노래하는 보이지 않는 슬픈 사랑과 닮은 면도 있다. 작곡가 원래의 생각이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보이지 않는 사랑’ 발표 이후 1999년 말 대한민국 가요계에 또다시 가요와 클래식이 함께한 히트곡이 등장한다 보이 그룹 ‘신화’의 T.O.P.(Twinkling of Paradise)다.
이 곡 또한 K팝과 클래식 샘플링을 논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곡이다.
첫 멜로디부터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Suite from the Ballet ‘Swan Lake’ Op.20) 중 정경(Scene)이 울려 퍼진다.
많은 이들이 어릴 적부터 동화, 영화 혹은 발레로 적어도 한 번 즈음은 접했을 법한 곡이다. 당시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등장했던 친숙한 클래식 작품이다.
발레 모음곡 ‘백조의 호수 정경’의 메인 테마가 신화 T.O.P. 전체에 녹아 있다. 익숙하고 아름다운 클래식 멜로디가 트렌디하고 세련된 신화의 댄스와 만나며 T.O.P는 그들의 상징적인 곡이 되었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소개해본다.
발레 ‘백조의 호수’는 오데트 공주와 지크프리트의 불행하고 슬픈 사랑을 담고 있다. 악마 로트바르트에 의해 지크프리트 왕자가 의도치 않게 저주스러운 마법에 걸린 오데트를 배신하게 된다. 악마의 딸 오딜과 결혼하지만 그의 속임수를 알아차린 지크프리트는 밤이면 백조의 모습으로 변하는 오데트를 공주를 찾아가 다시금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오데트 공주와 함께 물에 뛰어든다. 그들의 숭고한 사랑은 지긋지긋하고 사악한 로트바르트의 마법으로부터 결국 그들을 구한다. 떠난 사랑과 멍든 가슴 그리고 다시 돌아온 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T.O.P.’ 가사를 살펴보니 많은 클래식 명곡 중 ‘백조의 호수 정경’을 선택한 이유가 그저 멜로디만은 아니었나 보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며 사랑스러운 감성의 미뉴에트를 만난 밝고 사랑스러운 감성의 K팝 작품들이 발매되었다. 귀여운 청춘스타로 엄청난 인기를 누린 가수 겸 배우 장나라의 겨울일기(2004년 겨울 발매)가 그 중 하나다. 이 곡은 바흐의 ‘미뉴에트 G장조’를 샘플링한 곡이다. 이어 2010년 발매된 소녀시대 뻔&Fun은 보케리니의 '미뉴에트(String Quintet in E Major 3 Mov. Minuet)’을 샘플링했다. 밝고 경쾌한 소녀감성을 잔뜩 머금은 작품이다. 예쁜 드레스를 입고 미뉴에트를 추는 어린 소녀의 감성 그 자체의 느낌이다.
90년대 말에서 2010년에 이르는 K팝 속 클래식은 전반적인 곡과의 분위기와 멜로디의 어우러짐에 중점을 두고 있는 작품이 많다. K팝 만의 독특한 세계관과 철학적 연결고리로 이어가는 요즘 패턴과는 차이를 보인다. ‘요즘’이란 단어도 세월이 지나 ‘그때’가 되어 무색해지겠지만, 비교적 더욱 세련되고 심오해진 요즘 K팝의 매력과는 또 다른 그 시절만의 감성이 넘친다. 비교적 심플하게 가요와 클래식이 편하게 만나던 시절이다. K팝 리스너들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즐겁고 행복했다.
묵직한 저음을 지닌 젊은 음대생의 싱그러운 독창 후, 신승훈이 가녀리고 구슬픈 목소리로 ‘사랑해서는 안될 게 너무 많아’를 부르면 관객은 즐거워했고 때로는 깔깔 웃기도 했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익숙했던 그때, ‘즉시’ 대신 '기다림'도 괜찮았던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 어딘가를 살았던 그때의 K팝 감성이 때때로 그리워진다.
추천곡
London Symphony Orchestra
Boccherini 'String Quintet in E Major, G. 282: III. Minuetto - Trio'
Little Suite From The Anna Magdalena Notebook: I. Menuet in G Major, BWV Anh. 114
Tenor Daniel Behle & Pianon Jan Schultsz
Ludwig van Beethoven: Ich liebe dich, so wie du mich
발행시간: 2022년 10월 27일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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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지나김 (예술마케터 &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