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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김 Sep 27. 2022

HOT 빛,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환희의 송가

교향곡9번 극심한 고통 속 피워낸 인류최대의 역작  

발행시간: 2022년 9월 27일 16:30

copyright reserved @ 지나김

글쓴이 지나김 (예술마케터 & 예술감독)


그땐 그랬지-시대의 감성을 담은 클래식 샘플링

힘든 시기를 함께 한 K팝과 고난의 아이콘 베토벤

HOT빛,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환희의 송가

베토벤 교향곡 9번 극심한 고통 속 피워 낸 인류 최대의 역작





최근 지속적인 달러 환율 상승에 관한 뉴스를 비롯하여 우울한 경제 뉴스가 단골로 등장하며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한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이라면 하나 같이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나 몸서리쳐지기도 한다.

잊을 수 없는 1997년 가을, 나는 다소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달러 환율은 약 1달러에 800원 수준이었다. 새 학기를 시작한 9월 이후 약 2개월 정도 되던 어느 날이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따뜻한 목소리에 왠지 모를 걱정이 묻어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치솟아 오른 환율로 인해 자고 일어나니 학비가 2배가 되어버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800원 수준의 1달러 가치가 원화 2,000원을 불쑥 넘겨 버렸다. 실제 그해 겨울 이후로 학업을 미쳐 마치치 못하고 귀국해야 하는 한국 유학생들이 곳곳에 있었다.

1997년 11월 22일 조선일보 기사


물론 나 역시도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알 수 없는 미래에 떨고 있느니 하는 일이나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학업에 임하기로 했다. 새벽 4시가 조금 넘는 시간이면 일어나 과제와 복습을 마치고 발표가 있는 날이면 아예 'Hello Everyone'이라는 인사부터 마지막 "Thank you for listening"까지 미리 영문 대본을 작성해서 달달 외워 준비를 했다. 언어로 인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조금 더 빨리 영어와 친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그 누구도 등 떠밀지 않은 내가 선택한 유학의 길이기에 그렇게 해야만 했다. 고난과 역경은 늘 희망의 밑거름이 된다는 불변의 진리와도 같다.

미국 뉴햄프셔 주에 있던 나의 모교 정경


그렇게 아슬아슬한 1년의 시간이 흘러가고 감사하게도 학업을 중단하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다.  이듬 해인 1998년 어느 추운 늦가을 날 한국에서 소포가 왔다. 미국 오긴 전 여느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학교 앞 분식집에서 맛있는 조미료 가득 품은 밀 떡볶이를 나눠먹으며 깔깔대곤 했는데, 그때 어울리던 친구들은 먼 곳에서 종종 아기자기한 편지와 선물을 보내주곤 했다. 이런 따뜻하고도 아득한 감성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 모두 최전선의 현실 일상에서 경험한 밀레니얼 세대의 혜택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SNS를 비롯하여 각종 채팅앱, 영상통화까지 언제든 할 수 있으니 굳이 번거롭게 손 편지나 소포를 보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시대니까 말이다.  


여하튼 사춘기를 통과하는 싱그러운 10대만이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라면 특권인 '허세' 가득 품고

나와 함께 문학과 예술에 대한 감상을 공유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때 나는 '도스토옙스키'에 그 친구는 '헤르만 헤세'에 푹 빠져있었다. 우린 늘 취향이 좀 다르긴 했다.

항상 같이 숙제하고 음악 듣고 책을 읽었던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터라 한국을 떠난 이후에도 꾸준히 연락을 하며 지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보내온 소포를 열어보니 "사랑하는 친구, 내가 너무 좋아하는 노래야 꼭 들어봐"라는 따듯한 글씨와 함께 발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당시 최신 핫 아이템이 있었다.

HOT의 3집 앨범이었다.

HOT3집

그렇게 나는 HOT를 처음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야 HOT 열풍이 불고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SNS는커녕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나우누리'와 '천리안' 시대를 살던 때라 먼 나라 시골 한 구석에서 고국의 유행가를 알기는 쉽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숙사 한 켠에 놓은 소형 오디오에 CD를 넣은 뒤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도 여전히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친구가 애정 하는 곡이란 생각으로 듣다 보니 자연스레 귀가 즐거워졌다. 그중 한 유난히 친근감 가고 익숙한 듯 다가왔던 곡이 있었다.


'HOT'의 '빛'이다. 유독 춥고 어두운 미국 동부 시골 사립학교의 작은 기숙사 한 한편에서 흘러나오는 HOT의 발랄하고 활기찬 목소리가 내 마음을 적셨다.


역경을 딛고 희망을 노래하는 베토벤의 생애와 그의 음악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시대,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외롭게 마련이라 나는 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학교 강당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시간만 나면 피아노를 치곤 했다. 덕분에 전공자도 아닌 내가 베토벤에서 라흐마니노프 쇼팽까지도 섭렵할 수 있었는데, 이 역시도 고독이란 고난이 내게 선물한 열매이기도 하다. 여하튼 당시 즐겨치던 곡 중에는 이번 편의 주인공이기도 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기숙 하교라 주말이면 집으로 돌아가 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오는 백인 친구들이 많았고, 집에 가지 못하는 친구들- 주로 캘리포니아와 같은 서부지역에서 온 친구들과 유학생-을 위한 각종 주말 프로그램이 있었다. 한 달에 한번 매주 금요일마다 피아노가 있는 바로 그 대강당에서 영화를 상영해주는데, 내가 한참 템페스트를 즐겨치던 어느 금요일 학교에서는 베토벤의 일대기를 담고 있는 영화 '불멸의 연인'을 마침 방영해주었다. 버나드 로즈 감독, 베토벤 역에 게리 올드만이 등장하는 1995년 작품이다. (믿고 보는 배우 게리 올드만이 연기한 베토벤이 볼만하다. 2007년 개봉한 '아그네 츠가 홀란드' 감독의 '카핑 베토벤' 대비 버나드 로즈 감독의 불멸의 연인이 위대한 예술가로서 베토벤에 대한 이야기를 훨씬 더 풍성하게 담고 있다.)

 

영화 불멸의 연인 포스터

한참 베토벤에 빠져있을 때라 나는 그 영화를 보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눈물은 영화 속 베토벤에게 온전히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도 상당하지만,

아직은 어렸던 10대인 내가 지고 가야 했던 고국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비록 타국에 있었지만 전해져 온 IMF 외환 위기를 감내해 내고 있는 가족과 지인들의 무거운 어깨가 느껴져였음이 더욱 컸던 것도 같다.





극심한 고통 속에 탄생한 인류 최대의 걸작 교향곡 9번


여하튼 비록 나의 취향이 아니었음에도 HOT 빛이란 곡이 내 귀에 쏙 들어온 이유는 그 유명한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선율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향곡 9번은 베토벤이 작곡한 9개의 교향곡 중 마지막 작품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받는 곡이기도 하다. 너무나도 유명한 곡이라 '베토벤'을 몰라도 '교향곡'이 뭔지 몰라도 연말연시가 되면 우리나라 거리 곳곳에서 그리고 다양한 공연에 반드시 등장하는 곡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곡이기도 하다.


루트비히 반 베토벤(독일 Ludwig van Beethoven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예술사에 있어 큰 업적을 남긴 대음악가이다. 그의 교향곡 9번(Symphony no.9 in D minor, op.125)은 삶의 다양한 고통 속에서 살아간 베토벤이 무려 32년간 계획해서 만들어 낸 인류 최고의 예술작품이란 수식어가 붙는 작품이기도 하다. 베토벤은 청력상실에도 불구하고 음악사에 길이 남을만한 위대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화가 Joseph Karl Stieler (1781–1858)가 그린        베토벤의 초상화

뿐만 아니라 어린 베토벤의 재능을 알아본 그의 아버지는 그를 모차르트와 같은 신동으로 만들어 아들을 통해 부를 이루려 했던 폭력적인 알코올 중독자였다. 심지어 어린 베토벤은 지병을 앓던 그의 어머니와 일찌감치 작별을 해야만 했다. 폭력과 공포의 그늘로 뒤덮인 유년시절을 딛고 음악가로 성장하지만,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인 청각장애까지도 극복하며 위대한 작품을 남긴다. 이런 그가 역경을 이겨낸 위대한 인간승리의 상징이 됨은 당연한 일이다.


'교향곡 9번'은 '교향곡 8번'을 발표한 후 약 11년 정도가 지나서야 발표되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아예 작곡을 하지 않은 암흑 같은 공백의 시간도 거치는데, 워낙에 굴곡진 그의 인생이기도 하지만 유독 고통스러운 사건이 많았던 위기의 시간이었다. 그에게 가느다란 실 오라기처럼 남아있던 청력마저 잃고, 아버지가 떠난 후 가장이 된 그가 가장 아꼈다고 알려진 그의 친동생 '카스파'가 폐병으로 죽게 된다. 이후 동생의 아들인 조카 '칼'의 양육권을 두고 '카스파'의 아내인 '요한나'와 법정공방을 벌이는 시기이기도 하다. 조카에 대한 양육권 분쟁에서는 승소하지만, 조카 칼을 그의 대를 이을 후계자로 세우는 계획은 완전히 실패하게 된다. 영화 불멸의 연인이 다루고 있는 소재이기도 하지만 이 시기는 고통스러운 천재, '베토벤'의 삶에 유독 더 힘든 사건이 연이어 있던 때였다. 이런 지독한 고통 가운데 1817년 영국 '런던 필하모닉 소사이어티'가 교향곡 작곡을 의뢰하며 인류 역사 최대의 역작이라 불리는 '교향곡 9번'이 탄생한다.


영화 불멸의 연인 중 한 장면: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초연을 담은 장면으로 들을 수 없었던 베토벤을 대신하여 '미하엘 움라우' 지휘하였다.

4개의 악장으로 이뤄진 9번 교향곡의 1악장은 마치 천지 창조의 모습을 담고 있는 듯하다는 당시의 평론도 있었으리만큼 신비롭고 웅장하다. 개인적으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선율을 담고 있는 2악장과 3악장을 좋아하지만, 가장 유명한 선율인 환희의 송가를 담고 있는 부분은 4악장이며 교향곡 9번이 합장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것 또한 4악장으로 인해서이다. 당시로서는 교향곡에서 합창을 삽입하는 것은 최초의 시도였다. 베토벤은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의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 초고를 접한 뒤 깊이 감동하여 교향곡 9번에 대한 착상을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실러의 자필서명(출처 위키백과)

환희의 송가: 1785년에 지은 시로 단결의 이상과 모든 이류의 우애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른 편에서 소개된 위대한 예술가들의 삶에서도 엿볼 수 있지만, 위대한 예술가들이 동시대에 서로 스승과 제자 등의 관계에 있거나 사교 모임을 통해 교류를 하는 모습은 언제나 인상 깊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보는 것인지, 천재들 가운데 천재가 태어나는 것인지 혹은 시대가 천재를 낳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예술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은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를 담은 그 시절 희망가 HOT 빛


여하튼 다시 HOT 이야기로 돌아가서, HOT는 SM 대표 이수만이 처음으로 기획한 5인조 아이돌 그룹이다. 그룹 결성 다시 SM의 첫 가수였던 현진영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한 차례 위기를 겪고 난 후 특별한 실적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위기 가운데 이수만이 운영하던 카페를 정리한 자본으로 마지막 도전이란 마음으로 결성한 그룹이 HOT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1998년 HOT의 '빛'은 대한민국이 외환위기 사태 이후 큰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는 시점에 국민 응원가와 같이 희망의 멜로디가 되어주었다.


인류애를 예찬했던 실러, 그리고 실러의 작품에 깊이 감동해서 세상과 고별의 시점에 완성한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 9번은 절망 속에, 고통 속에 그리고 극심한 낙심 가운데서 인간을 일으켜 세우는 숭고한 예술적 힘을 담고 있다.


지금은 전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사로 성장한 'SM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도 절망의 시간을 통과해야만 했던 순간이 있었다. HOT의 빛 가운데 흐르는 환희의 송가를 담은 선율은 베토벤 9번 교향곡이 담고 있는 엄청난 역경을 통과하고 나서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그런 기쁨이고 희망이다.




때 아닌 전염병과, 경제위기, 기후위기, 그리고 2022년이라는 숫자가 무색해지는 전쟁을 마주하는 지금 베토벤과 같은 위대한 예술가가 곁에 있다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격언과 같이 베토벤은 곁에 없지만 그의 예술작품에 담긴 예술혼이 함께 하기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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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예술 마케터 지나 김

발행시간: 2022년 9월 27일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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