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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 언제 불러도 가슴 먹먹한 그이름 어머니 -

by 노병


어머니의 삶은 '희생'이자 '사랑'이었습니다.

작은 '브로치' 하나에도
어머니의 손길이 남아 있습니다.

별나라로 떠나신 뒤에도
더 깊이 깨닫게 된 그리움의 무게입니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익어가던 계절,


"언제 불러도 가슴 먹먹한 그 이름,

어머니!"


어머니는 같은 고향에서 아버지와

이웃으로 지내시다가,


일제강점기 젊은 여성들을 공출한다는

소문에 서둘러 시집을 오셨다고 한다.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를 뒷바라지하며,
시부모님을 모시고 논밭을 일구고,


여섯 남매를 길러낸 어머니는
말 그대로 ‘억척’ 그 자체였다.


아버지가 지병으로 세상을 뜬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도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돌아가신 후 의사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다.


어머니는 돌부리에 넘어져서
고관절 골절상을 입고도 수년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우리는 그저 '연로하셔서 그러시겠지'

라고만 생각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봐
그 고통을 묵묵히 참고 견뎌내신 것이다.
그 시절의 어머니들은 참으로 위대했다.


어머니가 떠나신 뒤,
세상이 텅 빈 듯 슬펐다.
‘슬프다’는 말이 이렇게

무거운 줄 그때 처음 알았다.


지금도 문득 어머니가 떠오르면

눈가가 젖는다.


유품을 정리하던 날,
어머니의 향기가 남은 물건

하나쯤 간직하고 싶었다.


묵주는 막내가 가져갔고,
나는 어머니 저고리에 달린

작은 '브로치'를 챙기려 했다.


그런데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굵은 바늘실로

여러 겹 단단히 꿰매 놓으셨던 것이다


5일장에도, 이웃 잔치에도
평생 그 하나만 달고 다니셨던 '브로치'였다.


'브로치'를 보면 괜스레 눈물이 났다.
어머니의 손끝에는 언제나 '사랑'이

묻어 있었다.


지금도 나는 내 지갑 속에
어머니의 사진 한 장을

코팅해 넣고 다닌다.


해외여행이든 국내 출장길이든
언제나 어머니를 가슴속에 품고 다닌다.


어머니 푸른 시절


세상살이 버거워 질때면

흐릿한 사진을 꺼내 본다.


빛바랜 얼굴이지만, 그 얼굴을 보면
이상하게도 다시 힘이 난다.


“어머니…”
그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먹먹하다.


고생만 하시고 별나라로 가신 우리 어머니.
오늘도 '그리움'으로 살아간다.


모든 희생은, 결국 '사랑'이었다.




#어머니 #회상 #가족이야기 #그리움

#삶의기록 #추억에세이 #브로치#묵묵한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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