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니제이 Apr 10. 2020

이 와중에 베이징 이사가 결정되었다

꿈은 이루어진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아


그렇게 그는 중국 특파원에 도전했다.



8년 전 봄, 당시 맞벌이를 하던 나와 남편은 모처럼 평일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두 회사의 중간지점에서 만나 특별할 것 없는 점심식사, 특별할 것 없는 대화를 시작으로, 10개월 뒤 우린 뉴질랜드에 1년짜리 둥지를 틀었더랬다. 그때도 그랬다. "우리 바람이나 쐬러 갈까"라고 말하듯 그는 "우리 외국에서 좀 살아볼까" 물었다.


국어국문학과 한문학을 전공한 나와 정치외교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남편은 영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남들은 토익학원에, 어학연수에, 영어공부에 그렇게 열심이었지만 우린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랬던 그가 더 늦기 전에 영어공부를 하고 싶다며 외국살이를 제안했던 것이다. 그것도 다섯 살 난 쌍둥이 아들이 딸려있는 상황에 말이다.


영국을 1순위로 희망했지만 비자 문제 때문에 힘들 거라는 유학원의 답이 돌아왔다. 2순위는 캐나다였다. 유학원은 자꾸 필리핀을 권유했다. 영국이든 캐나다든 필리핀이든 아이들의 유치원이 문제였다. 집세와 생활비, 남편의 어학원 비용에 두 아이 유치원비까지 더해지니 한숨만 나왔다. 절반은 포기한 상태로 별 기대 없이 인터넷 검색창에 '외국, 공짜 유치원'을 두드렸는데 길이 열렸다, 바로 뉴질랜드에서.


오클랜드에서 두 시간 거리, 일 년 내내 기후가 온화하고 낚시와 해양스포츠의 거점이며, 키위(뉴질랜드인)들이 휴가를 보내고 싶은 최고의 도시로 꼽는 타우랑가에서 일 년을 지냈다. 뉴질랜드는 내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 여행객에게도 주 20시간의 무상보육 혜택을 제공하는데 유치원에 따라 주 30시간까지도 가능하다. 쌍둥이 아들들은 무상보육 혜택을 알차게 받아 주 30시간씩 유치원에서 보낼 수 있었다.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학연수를 선택했던 남편은 뉴질랜드 생활 말미에 조금 더 나은 곳으로 이직에 성공했다. 물론 영어로 인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상관없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19로 팬데믹이 선포된 이때, 베이징 이사가 결정되었다. 이사는 내년 2월이다.


언제부터였을까, 3~4년쯤 전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가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영어가 아닌 중국어를 공부하는 이유는 영어권 특파원 자리는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불가능하니 중국 특파원에 도전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중국어를 생전 처음 접하는 그였고, 몇 년 공부한다 해서 특파원을 할 정도의 실력이 될까 의심스러웠으며, 딱 한 자리뿐인 중국 특파원이 그의 차지가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공부해서 손해 볼 건 없으니 열심히 해보라 토닥였다.


그는 기어이 기회를 잡고야 말았다. 적당한 연차에 적당한 중국어 실력을 가진 적임자가 없었다. 작년 여름 두 달 기러기 생활 중에 따놓은 HSK 자격증도 쓸모가 있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느라 힘들 때도 많았지만 그는 이미 기회를 잡을 만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가 중국어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특파원이 되더라도 중국은 따라가지 않겠다 선포했지만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아빠와 아들들이 떨어져 지내는 건 그들보다 나에게 힘든 일이 될 것이 뻔하고, 아이들이 중학교 3년 어쩌면 고등학교 1년까지 4년을 중국에서 보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 판단했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편견을 부딪혀 생활하면서 깨보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고 할까. 지난 겨울부터 지인들에게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호기심이 생겨나던 참이었다. 우리가 흔히 대륙의 스케일, 대륙의 마인드라고 부르는 것들 말이다.


지나고 보니 일이 딱딱 들어맞았다. 갑작스럽게 이사할 일이 생길 거라는 친구(사주와 점성학 전문가이다)의 예언, 결혼 15년 차 살림살이와 10년 된 자동차까지 죄다 바꾸고 싶었던 나의 바람, 아이들 중학교 입학에 맞춰 집을 한 번 옮길까 했던 이사 고민 등이 일시에 해결되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자연스레 흘러갈 것이다.


남편의 발령 소식에 선배들이 축하인사를 전해오며 물었다. 중국어 잘하나 봐?? 못 해서 걱정이 많다 하니 걱정 말란다, 중국 다녀오면 잘할 거라고. 헛웃음이 피식 나오지만 걱정도 내려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신상의 승리'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숙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