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 가면 한 가지 놀라는 점이 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생각보다 오래 기다려야 한다. 주인이 다니는 곳은 예약제이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대기 시간이 짧지만, 긴 상담을 하는 내담자가 있을 때는 20분 이상 기다릴 때도 있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힘들지 않다. 주인도 긴 상담을 할 때가 있고, 다른 내담자도 마음이 너무 힘든 상황들이 있을 테니 말이다. 이런 이해와 배려가 없으면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는 게 힘들 수도 있다.
이렇게 병원을 다닌 지 7년. 예전과 비교하면 주인은 많이 좋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짐이 느끼기에는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 또 언제 상태가 나빠질지 무서워 좋아졌다 말을 하지 못하겠다.
치료를 받아 온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의사 선생님에게는 아마도 어려운 환자였을 거다. 왜냐하면 주인은 쉽게 말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물어보는 질문에 가장 많이 한 대답이 몰라요일 거다. 몰라요. 잘 모르겠어요. 어려워요. 내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어요? 전 왜 그랬을까요. 정말 모르겠어요. 어떤 질문에도 손쉽게 대답하지 못했던 주인이 변한 것은 몇 개월이 지나서였다. 자신의 상처를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 후에도 모르겠다는 답변이 수두룩했지만.
주인의 첫 번째 고백은 병원을 다닌 지 6개월 정도 됐을까. 엄마가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것. 주인 역시 그렇게 될까 무섭다는 거였다. 갑작스러운 주인의 고백에 선생님은 당황한 듯했다. 그전까지 매일 해맑게 웃는 모습만 보여줘서일까. 감정이 격해져 펑펑 우는 주인의 모습에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는 게 느껴졌다.
선생님은 만약 정신질환 전조증상이 있었다면 자신이 알아챘을 거라 했다. 절대 걱정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고. 그 순간에 그 말이 너무나 큰 위로가 되었다. 나의 불안이 하나 걷어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마음과 달리 실제로는 오랜 시간 상담받은 후에야 온전히 내려놓게 됐지만 말이다.
두 번째 고백은 그로부터 일 년 후였을거다. 정서가 안정되고 잘 지내던 때였다. 갑자기 병원에서 공황발작이 일어났다. 숨이 안 쉬어졌다. 요즘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다른 비밀 하나를 오픈했다. 그 비밀은 일을 하면서 있던 성추행 사건이었다. 그 사건을 덮어놓고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주인은 무의식 속에서 고통받고 있던 것이다.
그 후에도 주인은 잘 지내는 시점에 툭툭 하나씩 고통스러운 과거를 꺼내었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이제 안정된 환자가 급격히 감정의 격동을 일으키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오히려 선생님이 날벼락을 맞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주인이 이렇게 모든 사건과 감정들, 특히 스스로 부끄럽고 안 좋다 생각되는 감정들도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지 않을까. 이 부분에 있어 짐은 항상 선생님에게 감사하고 있다. 잘 이끌어준 덕분에 주인이 한 걸음씩 용기 내 걸을 수 있던 것이니까.
쉽지 않은 환자일지는 모르나 누구보다 신뢰를 보이는 환자일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극도로 꺼리는, 가족들에게 조차 비밀 이야기를 안 하는 주인이 속을 터놓았으니 말이다.
병원은 주인에게 안전지대 같기도, 때로는 감정의 소용돌이 휘몰아치는 태풍 속 같기도 했다.
지금은 안전지대다. 이 감정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언제 또다시 불안한 감정이 튀어나고, 무의식의 기억이 괴롭힐지 모른다. 그때 되면 또다시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