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30분. 침대에서 일어나 물을 한잔 마신다. 곧이어 에스프레소를 내려 따뜻한 물을 붓는다. 의자에 앉아한 모금 마셔본다. 씁쓸하면서도 고소하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이 시간, 홀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은 마치 의식처럼 느껴진다.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건 입사했을 무렵부터였다. 회사 선배들은 출근하고 먼저 탕비실로 가 커피를 탔다. 점심시간 밥을 먹은 뒤는 항상 카페를 찾았다. 나도 그들을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아메리카노를 마신 건 아니었다. 처음 아메리카노를 마셨을 때 한약 맛이었다. 맛 때문에 마시는 게 맞을까 싶었다. 누군가가 사준 아메리카노는 어김없이 반 정도를 남겼다. 그래서 나는 다른 커피를 골랐다. 에스프레소에, 우유와 초콜릿을 첨가한 커피. 카페모카 같은 것 말이다. 생크림까지 더하면 더욱 달콤했다.
시간이 지나자 첨가한 커피들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마실 때는 단맛에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빈 속에 마시면 메스꺼거워졌고, 텁텁한 맛이 오래 남았다. 밥을 먹고 마시면 뱃속에 과하게 채워진 느낌이 불편했다. 나는 하나씩 덜어내기 시작했다. 생크림을 뺀 카페모카를 마셨다. 그러다 초콜릿을 뺀 카페라테를 골랐다. 그리고 우유까지 뺐다. 남은 건 에스프레소와 물이었다. 별로라고 생각했던 아메리카노는 마실 수록 더 좋아졌다.
아메리카노로 정착하고 난 뒤 나는 더 이상 바꾸지 않는다. 매일 마시는 시간도 비슷하다. 물과 원두만으로 이루어져 군더더기 없이 심플함이 좋다. 한 모금 마시면 그윽한 향기가 입안에 풍부하게 남는다. 무언가를 첨가하지 않아도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원두를 골라 마시게 되어 다채롭다. 원두의 맛의 차이를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적은 칼로리로도 삶의 원동력이 된다.
나는 아메리카노처럼 오히려 덜어내는 것이 더 행복할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1년에 한 번도 안 입는 옷을 정리한다. TV나 뉴스도 내가 필요한 분야 외에는 구독을 해지한다. 더 이상 안보는 오픈 채팅방을 정리한다. 불필요한 SNS는 그만둔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정리하고 나면 한결 가벼운 느낌이 든다. 결국에 물과 에스프레소만 남은 아메리카노처럼 말이다. 단순함이 삶의 원동력이 될 때가 있다. 더하지 않고 줄일수록 더 풍부해질 수 있다.
삶의 군살을 빼는 일은 필요하다. 불필요한 것들을 더 빼면 행복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매일 아침 마시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