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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Aug 22. 2021

야시카 T4

디지털 보다 아날로그가 좋을 때

  나는 필름 카메라를 좋아한다. 예전부터 카메라를 좋아했었지만 굳이 필름 카메라까지 관심이 가지 않았는데, 한 사진집을 보고 필름에 매료되었다. 진득한 색감, 자연스러운 노이즈, 빛의 주는 감성은 내 마음 한구석을 흔들기엔 충분했다. 


  내가 사용하는 필름 카메라는 야시카 T4라는 모델이다. 일본에서는 교세라 슬림 티라고 불리지만, 해외에서는 야시카 T4로 이름이 바뀌어 나왔다. '가난한 이의 라이카'라고 불리기도 한다. 칼자이스 렌즈가 부착되었지만, 가격은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포토그래퍼 라이언 맥긴리가 애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6년 전 이베이에서 산 야시카 T4의 중고 가격은 198달러였다. 30달러의 배송비를 주고 1달 만에 택배가 도착했다. 가벼운 플라스틱 재질이라 첫인상은 장난감 같았다. 군데군데 사용 흔적이 있었지만 렌즈는 깨끗했다. 자동카메라이기 때문에 따로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 가볍다는 장점 때문에 자주 들고 다녔다. 여행을 갈 때면 가장 먼저 챙기곤 했다.  제주도, 일본, 대만, 라오스, 사이판을 갈 때마다, 4 롤의 필름을 가방에 넣었고 야시카를 오른손에 쥐었다. 


  필름 카메라는 사진을 찍을 때도 돈이 든다. 36장을 찍을 수 있는 필름 한 롤에 2000원대부터 만원이 훌쩍 넘는 것도 있다. 현상을 하기 위해 현상비도 든다. 별도 리튬 배터리가 들어가기 때문에 건전지도 정기적으로 사주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돈이 더 드는 취미라고 볼 수 있다. 디지털카메라처럼 같은 컷을 여러 장 찍을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 장 한 장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무심코 찍을 때보다는 '이건 꼭 찍어야 해'라는 강렬한 느낌이 들 때 정성을 들여 셔터를 누른다. 그렇기 때문에 찍은 필름 사진을 보면 그날의 감정이 생생히 떠오르곤 한다. 




  휴가 때였다. 일주일 간 부산에 내려갔을 때, 야시카를 들고 갔었다. 가족들을 관찰하며 필름 카메라에 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동생들을 따라다니며, 남겨야겠다 느껴질 때마다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3 롤 정도를 찍고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일터에 복귀하자, 바빠졌고 찍은 필름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몇 년 뒤, 엄마는 더 이상 가게 일을 하지 않으셨다. 우리 가게는 다른 상호의 과일가게로 바뀌었다. 가끔 옛 가게 이야기를 꺼내셨다.  30년 가까이 한 곳에서 터를 잡았던 곳이었는데 사진 한 장 찍어 놓을 것 그랬다고 아쉬워하셨다. 


  불현듯 나는 야시카로 찍은 필름 사진이 떠올랐다. 인화를 하고 사진첩을 샀다. 그리고 한 페이지에 2,3장씩 붙여 넣었다. 가게에서 장난치는 동생들의 모습, 손님과 말하는 엄마의 모습, 쉴 때 미소를 지으며 밖을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 그리고 조용히 먼 곳을 응시하는 아빠의 옆모습, 가게의 아침의 모습도 밤의 모습도 담겨있었다. 


  다시 부산을 찾았을 때, 나는 엄마에게 사진첩을 건넸다. 예전에 필름 카메라로 찍었었는데, 한동안 까먹고 있었다고, 엄마 추억이라며 보여주었다. 

 

  엄마는 언제 이런 걸 찍었냐며 사진집을 한동안 천천히 넘겨보셨다. 몇 장의 사진은 꽤 오랫동안 들여다보셨다. 모든 사진을 읽어본 뒤 입을 열었다.


"우리 딸 정말 잘 찍었네. 고마워. 이렇게 사진이라도 남아서 참 다행이다"


  필름은 아직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인터넷에서 필름은 구매할 수 있고, 택배로 현상 의뢰를 할 수 있다. 아무리 디지털카메라가 필름과 같은 느낌을 내주어도 필름 카메라를 쓰는 이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필름이 주는 횟수의 한계가 순간을 집중하게 하기 때문이다. 기록해야 할 것을 골라 기록하게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여러 장 셔터를 눌러도 되는 디지털 사진과는 다르다. 덜어내야 할 것을 덜어낸다. 휴대폰에 담긴 수천 장의 사진 보다, 몇 장의 필름 사진이 내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내가 오래도록 기록하고 싶은 것을 찾았고, 정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몇 컷 찍지 않아 현상하기 애매한 필름이 야시카 안에 잠들어 있다. 이미 필름 유통기한이 지나 빛이 바래 있을지도 모른다. 60 롤을 채우고 나니 한동안 손에 쥐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나는 다시 야시카를 손에 들것이다. 또 다른 소중한 것들을 기록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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