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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대하여

by 요니

오랜 자취 생활이 무색하게도 나는 요리를 안했다. 레시피 없이 할 줄 아는 요리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고, 그나마 신혼 시절 충동적으로 만들어 놓은 레시피 노트는 열 장을 넘기지 못했다. 맞벌이라는 핑계로 저녁은 배달이나 밀키트로 대충 때웠다. 결혼 후 4년이 지나서야 밥솥을 구매했으니 말 다 했달까. 식탐은 많으면서도 요리하는 데에는 관심이 잘 가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고 가장 걱정됐던 것 한 가지도 이유식이었다. 나는 배달 음식을 먹을 수 있어도, 아이는 건강한 것을 먹어야 하니까. 생각보다 국내 이유식 시장이 잘 활성화되어 있는 걸 알고 안도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은 무거웠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육아휴직을 하고 나니 내가 가장 성장한 건 바로 요리였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남편과 먹을 저녁을 만들어보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몇 달 전 방문한 친정엄마는 우리 집에 부족한 조미료와 재료들을 보기 좋게 채워주었고, 그 이후 우리 집 주방은 한식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깨달음도 컸다. 양파, 대파, 마늘과 같은 기본 재료만 냉장고에 잘 챙겨 놓으면 되었고, 찜, 국, 찌개 등은 기본적인 틀이 비슷했다. 오래 묵혀 놓은 엄마의 김치, 고추장, 된장은 감칠맛이 뛰어났기에 맛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보장이 되었다. 먹을 때마다 “이제는 믿고 먹는 요리”라고 말하는 남편의 칭찬 역시 나를 춤추게 했다. 블로그에서 본 황금 레시피들은 따라 하기 쉬웠고, 하나둘 시도해 보니 어느새 요리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생겨, 가족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게 되었다.


그렇게 몇 달간 요리 실력이 늘더니, 이유식도 결국 자연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유식을 시작한 지 한 달 반밖에 되지 않았고, 도아에게 맞는 식감을 찾기 위해 계속 시도하는 단계지만 보람차다. 도아는 밥에 관심도 많고, 이유식도 잘 먹는다. 내가 건넨 이유식을 입에 넣고 오물거릴 때면, 여간 흐뭇한 게 아니다. 손수 해 먹이니 가격 대비 좋은 품질의 식재료를 쓸 수 있는 것도 만족스럽다.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요리 실력이 늘었을까. 평생 관심 밖일 줄 알았던 요리가 이렇게 친숙하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육아로 보내는 올해는 개인적인 성장보다는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는 시간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하나둘씩 성장하는 나 자신을 볼 때면 우리 둘 다 성장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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