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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 돈을 준다고?

우당탕탕 첫 독서모임

by 지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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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봄, 태어나 처음으로 독서모임이란 걸 해보게 됐다. 원래도 책을 좋아했지만 독서모임을 해볼 생각은 그전까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하는 건지 전혀 몰랐을뿐더러 독서모임이란 개념 자체를 알지 못했다. 그러니 독서모임이란 것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군 전역 후 복학한 해, 스물세 살의 나는 학교의 여러 프로그램을 나름 알차게 활용하는 학생이었다. 돈은 필요한데 힘든 아르바이트를 할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학교에서 진행하는 지원 사업들은 한 줄기 빛이요 희망이었다. 새내기 시절 학과 선배와 함께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의 단맛을 처음 경험한 후 앞으로 계속 참여해야겠다고 다짐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한 학기 내내 활동하고 인당 5만 원을 받았으니 가성비가 썩 좋지 않아 보이긴 하지만 그 당시 내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존재였다.)

멘토링뿐 아니라 조건이 되는, 내가 참여할 만한 프로그램을 찾아 헤매었고 2017년도부터 신설된 독서 소모임 지원 사업을 발견하게 된다. 인원을 모아 어떤 책들을 읽을지 선정해 신청서를 제출해 통과하면 지원금 약 30만 원 정도를 주는 사업이었다. 30만 원, 그것은 당시 내 한 달 생활비만큼의 금액이었다. 신청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물론 그 돈이 모두 내 돈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내가 독서모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분명히 '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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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처음으로 독서모임을 꾸렸다. 당시 우리 학과에서 독서모임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주변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딱히 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지원금을 명목으로 여러 사람을 유혹했다. 최소 활동 인원은 4명이었다. 최소 인원을 다 채울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없었기에 자연스레 기준보다 많은 사람에게 제안했다. 여기저기 찔러봐야 4명이 간신히 모이지 않을까? 싶었다. 며칠 후, 신청서를 적을 때 보니 우리 모임은 최대 활동 인원인 10명을 꽉꽉 채워 마감됐다.

활동 인원이 많으면 어떨까? 더 다양한 의견이 나와 좋을까? 자연스레 독서모임의 퀄리티가 높아질까? 그렇지는 않았다. 활동 인원이 너무 많으면 모임 일정을 맞추기도 어려우며 각자의 발언 시간이 줄어들어 충분히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운영상의 문제나 충분한 토론의 보장 같은 문제뿐 아니라 또 다른 큰 문제가 있다. 바로 ‘지원금’이다. 애초에 이 독서모임에 왜 참여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물론 책이 좋아서도 조금은 있긴 할 것이고 앞으로 책을 좀 읽어보자는 당찬 마음도 있긴 하겠지만 진짜 목적은 ‘학교에서 주는 지원금(공돈)으로 우리끼리 맛있는 거 먹자!’였다.


자, 생각해 보자. 여기 독서모임 지원금 30만 원이 있다. 이걸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커피 한 잔? 간식으로 사 먹을 과자? 다 같이 밥 한 끼 하며 관계를 돈독히 하기? 이것들은 모두 그다음의 순서다. 우선 책부터 사야 한다. 당연하게도.

책 한 권 가격을 대략 12,000원 정도로 잡아 보자. 소모임을 신청할 때 우리는 하필 또 최대 선정 권수인 3권의 도서를 꽉꽉 채워 골랐다. 그리고 우리 모임원은 총 10명이다.

그렇다. 책만 사도 지원금이 부족한 지경이다. 이 쓰디쓴 실패(?)의 경험 이후 독서 모임을 꾸릴 때 난 절대로 총인원을 5명 넘게 모집하지 않았다. 책 읽는 것도 좋지만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도 중요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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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첫 독서모임이 시작됐다. 책 선정은 전적으로 내가 주도했다. 모임원들은 아무래도 책 좋아하는 사람이 골라주는 게 좋지 하고 생각했을 것이고 귀찮아서 떠맡긴 것도 있긴 할 것이다. 난 단편 소설집을 주제로 권여선 작가의 『안녕 주정뱅이』와 어슐러 K. 르귄의 『바람의 열두 방향』, 스콧 피츠제럴드의 『피츠제럴드 단편선 2』를 골랐다. (1과 2를 모두 고른 것도 아니고 1을 읽어서 2를 고른 것도 아니고 2만 읽었던 이유는 뭘까...? 아마도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이란 유명한 단편이 실려있어서였던 듯하다.)

모임 내에서 내가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사람이었기에 나의 취향이 반영된, 문학을 위주로 한 도서 목록이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운 점이 있다. 독서모임의 묘미 중 하나는 함께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안 읽었을 책을 읽어보게 된다는 점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거듭된 독서모임 끝에 경험한 것이니 당시에 알 도리가 없긴 했다.


인원이 많다 보니 10명 모두가 모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나를 포함해 다들 독서모임이 처음인지라 어떻게 진행하고 참여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해 얼렁뚱땅 시간이 흘러갔다. 어떤 얘기를 할지, 누가 발제를 맡아 준비해 올지 등등 토론에 앞서 필요한 것들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우리는 그냥 책을 가지고 와(인증 사진을 찍어야 하므로) 즉석에서 생각나는 것이나 책을 읽으며 떠올랐던 것을 바로바로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질문에 대해 미리 생각해 올 수 없었으므로 대답을 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고 토론의 질 역시 그다지 좋지 못했다.


물론 회차를 거듭하며 조금씩 나아지긴 했다. 질문을 미리 생각해 오기도 하고 답변도 좀 더 공들여 하는 사람도 생겼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점점 더 설렁설렁 참여하는 인원도 생겼다. 참여하지 않는 개인의 탓도 있겠지만 애초에 이 모임의 구성부터가 문제였다. 이 모임에 책이 좋아서 참여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런 나조차도 '책도 읽고 맛있는 거도 공짜로 먹고!'라는 독서만을 위한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으니 다른 참여자들은 오죽 했을까. 학교에서 주는 돈으로 커피도 먹고 밥도 먹고 거기에 책 읽는 버릇도 좀 들일 수 있다 하니 참여했는데 커피도, 밥도 없고 오직 책만 있으니 의욕이 나지 않았겠지. 그럼에도 열심히 참여해준 친구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열심히 참여하진 않았지만 함께해준 친구들에게도 역시 미안함이 남는다. 아마 그 미안함을 주간 보고서와 최종 보고서를 혼자 다 쓰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던 듯하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긴 했지만.


그렇게 나의 첫 독서모임은 낮은 퀄리티의 토론이나 목적를 이루지 못했다는 점에서 큰 아쉬움을 남긴 채 있는 듯 없는 듯 사라져 버렸다. 지금은 저 책들로 어떤 얘기를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첫 모임을 스스로 꾸렸다는 점에서 뜻깊다. 첫 모임에서 오히려 실패를 겪었기에 그다음의 모임들을 더 잘 운영할 수도 있었게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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