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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 돈을 준다고?

성장할 수 있을까?

by 지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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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독서모임'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 내용의 활동뿐 아니라 책과 관련된 여러 모든 활동을 독서모임으로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임이나 북토크, 도서 강연 등도 모두 독서모임의 일환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이런 것들 모두 책, 독서와 관련하여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을 다니며 다양한 종류의 독서모임에 참여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독서 소모임 지원 사업이 꽤 큰 호응을 얻어서일까? 학교에서는 책과 관련된 다른 여러 지원 사업들을 만들어 진행했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듣는 '이 달의 도서 특강', 특강을 들은 후 그 책에 대한 서평을 쓰는 '비평문 쓰기' 프로그램 그리고 '글쓰기 소모임 지원 사업'까지 아주 다양했다. 난 역시나 이 모든 프로그램에 될 수 있는 대로 참여했다. 언급한 이런 프로그램들은 현금으로 지원금을 주는 사업은 아니었지만 이때의 내게 그런 것쯤은 이미 문제 되지 않았다.(물론 여전히 중요한 부분이긴 했지만.)


여러 독서 관련 프로그램들에 참여한 것은 모두 흥미 때문이었다. 단순히 재밌어 보여서 신청했다. 다행히도 참여한 프로그램들은 기대했던 만큼의 즐거움을 내게 전달해 주었다. 그뿐 아니라 확실히 혼자 읽고 끝낼 때보다도 책에 대해, 그 문장이나 내용, 주제, 교훈 등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 보게 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일반적 독서모임만 해도 토론을 하기 위해 독서할 때부터 좀 더 집중해서, 꼼꼼히 읽게 되며 다 읽고 나서도 그 내용을 다시 한번 곱씹는 과정을 가지게 된다. 또한 질문을 만들기 위해 책의 내용을 더 깊게 파고들게 되고 다른 이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으로 시야를 넓히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작가의 생각과 이야기를 듣거나 읽은 감상을 글로써 정리해 본다면? 당연하게도 이는 더 넓고 깊게 책을 이해하는 기회가 된다.


물론 독서모임을 하면서 가시적 변화를 즉각 느꼈다거나 인격적으로나 지적으로 아주 성숙해졌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 회차 모임을 진행하며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음을 느꼈다. 확실히 이전 모임을 할 때보다 다음 모임을 할 때 질문을 더 능숙하게, 심도 깊게 만들어냈으며 답변 역시도 마찬가지로 보다 수월하게, 성의있게 작성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성장이 쌓여가는 것, 그것이 독서모임의 효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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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의 성공적 독서모임 경험들을 통해 성장해오기도 했지만 매번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었다. 실패의 경험을 통해 성장을 하기도 한다지만 내가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실패한 경험이라 할 수는 있지만 이를 통해 성장을 했다고는 말할 수 없어 보여서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를 알게는 되었으니 분명 배운 게 있긴 한데 그다음에 같은 활동에 도전한 적은 없으니 결국 배운 걸 써먹어 보지는 못하고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그 실패의 경험은 바로 '독서토론대회'였다.


독서모임을 매번 운영한 덕분에 나는 학과에서 '책 좋아하는 애'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후배 한 명이 내게 독서토론대회에 함께 나가자고 제안해 왔다. 어색한 사이는 아니지만 아주 친하지도 않은 사이의 후배였다. 어떤 책을 가지고 토론 대회를 하는 건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 건지 정도는 물어보았어야 하는건데... 독서와 관련된 모임이란 모임은 일단 하고 보는 당시 적극적 태도 탓에 무작정 승낙해 버렸다.

처음 열리는 독서토론대회의 선정 도서는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와 리처드 로즈의 『원자 폭탄 만들기』였다. 제목만 보아도 압도되는 느낌이 드는 이 두 책에 대해 제안을 승낙하기 전 미리 알고 있었다면 거절했을까? 아니, 자신감에 차 있던 당시의 난 아마 알고 있었어도 흔쾌히 승낙했을 거다. 10만 원이란 지원금과 상금이 탐났기도 했지만 그보단 어떤 책이든 다 읽을 수 있을 거란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의 그 자신만만함이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그렇게 학교 후배와 나, 그리고 후배의 지인 두 명과 함께 독서 토론 대회를 준비하게 됐다. 대진표가 나왔고 그전까지 책을 읽고 팀원들끼리 토론을 준비하면 됐다. 당연히 그중 가장 먼저 할 일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이것부터가 고비였다. 두 책은 당시 나에게 너무 버거웠다.(아마 지금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검은 건 글씨요 흰 건 종이요...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거구나 하고 절로 떠올랐다. 분명 읽고는 있는데 머릿속에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물론 그전에도 몇 번의 비슷한 경험이 있긴 했지만 그때는 곧바로 책을 덮으면 되었는데 이번엔 그게 불가능했다. 그렇게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책을 부여잡고 몇 날 며칠을 힘겹게 보냈다.

1차 점검을 하려 모인 날, 나뿐 아니라 모두가 힘겨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사실에 안도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나만 이해 못 한 게 아니라 다행이긴 한데... 우리 조, 이대로 가도 괜찮을까?'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지원금으로 먹는 눈앞의 비싼 음식과 어떻게든 되겠지란 안일한 생각 때문에.

지원금을 한 방에 탕진해 대왕갈비탕과 육회를 먹은 그날 이후로 우리는 한 번의 모임을 더 가졌을 뿐 토론 대회 준비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해 다른 인원들 또한 어차피 1등 못할 거 같은데?라는 생각에 잠겨 있던 듯했다. 거기다 한 명은 해외 일정이 생겨 대회 참석이 어렵다며 모임에서 빠져 버렸다. 결국 우리는 이기면 좋고 지면 어쩔 수 없지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토론 대회에 나갔다. 뭐 큰일 있겠어? 하는 생각은 항상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도 모르고.


독서토론대회의 결과는... 생각보다도 더 처참했다. 질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완패'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탓이다. 그렇다. 우리는 상대 팀에게 제대로 된 변론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무참히 패배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너무나 열심히 토론을 준비해 온 상대 팀에게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아아 부끄러워라. 내가 만약 아주 열심히 토론을 준비해 왔는데 상대 팀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어버버거리며 가만히 있는다 생각하니 노력한 게 아깝고 화날 것 같았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 머쓱해하며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날 이후로 단톡방에는 단 하나의 알람도 오지 않았다. 그다음 년도에 독서토론대회가 열렸는지는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다. 알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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