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제 슬픔을 애통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소서

토마스와 도마씨

by 권박

애도는 상실에 대한 우리의 정서적 반응이다. 애도는 순간적인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라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애도는 누가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혹은 누구를 상실했는지에 따라 너무 다르다. 트라우마는 매우 강렬한 상실 경험이다. 갑자기 사건 이전의 삶을 잃어버렸고 다시는 되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사건으로 인해 이전에 굳게 믿었던 사실들이 다른 각도로 비치면서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해진다. 서야 할 땅이 꺼져 버린 듯한 느낌이다.


네팔에서 2015년 4월 지진을 경험한 재외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트라우마 심리상담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들의 트라우마 나래티브는 지진 발생 당시 어디에 있었는지 혹은 같은 장소라도 그 건물 몇 층에 있었는지 따라 달랐다. 같은 층에서도 출구 가까이 있었는지 안쪽에 있는지에 따라 달랐다. 지진 당일 아침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떤 시간을 보냈는가에 따라 상실에 대한 그들의 정서적 반응은 달랐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상실의 경험으로 다른 사람의 애도의 과정을 평가할 수 없다. 지진이 발생하고 대처하는 과정에서 부부관계가 깨지고 믿었던 신앙이 흔들렸다. “땅이 갈라졌는데 그동안 덮어 놓았던 우리 삶의 및 낯이 그대로 다 드러나버렸다”다는 말이 깊이 마음에 남았다.


그 일이 있기 전의 삶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자각은 어마한 슬픔을 가져온다. 그 슬픔은 시시각각 달라져서 혼란스럽고 괴롭다. 실존심리치료자로서 유명한 얄롬 박사는 그의 아내 매릴린이 다발성 골수암으로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마지막 여정과 죽음 이후의 삶을 솔직하게 나누었다. <얄롬 박사 부부의 마지막 일상:죽음과 삶> 책의 앞부부분은 그와 아내가 번갈아 가며 기록한 상실의 과정을 이야기하다가 아내가 조력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 홀로 남겨진 그가 애도한다. 그는 아내의 사진을 볼 때마다 많은 아픔을 경험하고 사진을 벽 쪽으로 돌려놓았다가 다시 돌려놓고 똑바로 응시하다 다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나는 큰 소리로 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고통으로부터 나를 지켜야 할까? 아니면 그 반대로 그녀를 강렬하게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울어야 할까?” 202


상실의 아픔을 계속 느끼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가 떠난 것을 아파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 처지가 불쌍해서 우는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혹시 내가 슬픔을 과장하는 것은 아닐까요?”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고 '일상'의 삶을 사는 듯이 보이는 도마씨는 물었다. 그러다 슬픔의 마음이 좀 가라앉아 괜찮아져서 밥을 챙겨 먹었다. 영화를 한편 보았고 산책을 했다. 조금 무감각해진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내가 죽은 남편을 벌써 잊었다고 손가락질하지 않을까요? “ 도마씨는 물었다.

애도할 때 우리는 매우 혼란스럽다. 분노와 죄책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생기다가도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누구도 나를 이해할 수 없고 내 슬픔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생각에 극도로 외롭다. 애도의 경험을 할 때 이래도 괜찮은 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그 혼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심리치료자에게도 똑같이 찾아온다. 어빈 얄롬은 스탠퍼드 대학 심리학부 교수로서 심리치료에서도 죽음과 대면하는 방법을 모색해서 치명적인 병에 걸린 많은 환자들을 치료했고 이런 사람들을 모아 집단치료까지 진행했다. 그는 이런 치료과정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의 죽음들 보면서 자신도 죽음에 대한 불안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도 롤로 메이와 2년 동안 매주 만나면서 심리상담을 받았다. 롤로 메이 역시 실존심리치료에서 매우 저명한 학자이며 치료자이다.

이런 그가 자신의 아내의 죽음 이후 경험하는 강박 증상이나 우울증은 우리가 애도할 때 만날 수밖에 없는 고통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어빈 얄롬은 아내가 죽은 후 몇 주 후 악몽을 꾸었다

“어두운 밤중에, 수년만에 처음 진짜 악몽을 꾸었다. 어두운 밤중에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침실문이 열리는 것을 알고 문쪽을 향했을 때 한 남자의 머리를 보았다. 그는 미남이었고, 짙은 회색의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어쨌든지 나는 그가 깡패이고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가운데 잠에서 깨어났다. 이 꿈이 주는 분명한 메시지 하나는, 나에게도 역시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나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도마씨의 불안도 비슷하다. “사는 것에 대한 집착이 없어졌어요.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죠. 아니 내가 아파서 죽게 될까 봐 걱정돼요. 그럼 내 아이들이 너무 힘들잖아요.” 아직 자신의 불안을 근원을 다 인식하지 못했지만 결국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죽음을 마주한다. 우리는 우리의 죽음을 미리 애통해야 시간을 갖아야 한다. 이런 유한성의 인식이 지금의 내 삶을 진실로 살게 한다. 타인을 위한 애도는 곧 나를 위한 애도로 이끈다.


잠시나마 제 슬픔을 애통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소서. 제가 돌아오지 못할 띵,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 마음에서 우러나는 참된 회개와 겸손은 용서의 희망을 품게 합니다. 그럼으로써 곤궁한던 양심에도 평화가 찾아오고, 잃었던 영광을 다시 찾으며 불행을 막을 수 있습니다.
298 (3부 52장)

IMG_4204.PNG


작가의 이전글22. 죽음을 명상하는 것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