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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Aug 25. 2020

밥보다 명상(5)

명상은 밥보다 맛있다

일상에서 명상하면서 깨침과 함께 일어난 변화이다.


<아들의 풀어주다>


아들인 명우는 올해 10살, 초등학교 3학년이다. 그 나이 아이들이 그러하듯 게임을 좋아한다. 집에서는 엄격하게 통제해 오고 있었다. 휴대폰조차 아직 사주지 않았다. 게임은 일요일 3시간만 허용되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친구들하고 형들하고 몰래몰래 해오고 있었다. 집에 있을 때에도 나와 아내의 휴대폰은 어느 틈엔가 녀석 손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아무리 야단을 쳐도 호시탐탐 노리는 녀석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명상을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게임을 하는 게 잘못인가?" "게임을 자유로게 하도록 방치하면 아이가 게임 중독이 될까?"

"엄격하게 통제하고 야단치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나는 어땠지?"

그동안 당연하다고, 맞다고 생각했던 신념들이 단순히 내 고정관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하는 아이를 보면 나에게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것일 뿐이었다. 자동 반응이었다. 그것 또한 가짜인 내가 만들어낸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가차 없이 그 마음을 버렸다. 그런 마음을 가진 나도 버렸다. 


"아빠, 게임 30분만 하면 안 돼요?" 오늘은 주말이었다. 여지없이 아이는 보채기 시작한다.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아이 눈을 바라보고 말을 했다."아빠 화나셨어요?" 아이가 눈을 크게 뜨고 불안한 듯 물었다."아빠 화난 거 아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알았지? " 그리고 말을 이었다."명우야. 아빠가 생각해보니까 아빠도 어린 시절에 어른들 말을 잘 듣지 않았던 것 같아. 억지로 마지못해 하긴 해지만 그게 싫었어. 그리고 생각해보면 어른들 말을 따른다고 별로 도움도 되지 않았던 것 같아" 




내 신념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버리니까 아이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정확히 말하면 세상에 대한 믿음이다.

아이를 내 관념 속에 꽁꽁 붙들어 매지 말고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풀어주는 것. 불교에서 말하는 방생이다. 그렇다고 잘못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잘될 것이다. 


옆 동사는 어느 아주머니한테 이야기다. 남편이 술을 좋아할뿐더러 많이 마신다고 했다. 아무리 싫어하고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 아주머니는 소주를 박스 채로 사다가 베란다에 두었다고 한다. "앞으로 부담 갖지 말고 마음껏 드시라"고 하면서. 진심이었다고 했다. 눈치 보지 말고 한번 원 없이 마시라고.
그 후 놀랍게도 그 남편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고 하였다. 베란다에 소주 박스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남아 있다고.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걱정과 근심, 스트레스 속에 있지는 않는지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당당해진 나>


우리 부부는 많이 다르다. 좋아하는 음식이며 취향이며 비슷한 데가 거의 없다.  초식동물인 사슴과 육식동물인 사자가 함께 산다고 할까.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아내는 간호사다. 내가 휴무이고 아내가 출근을 했다. 오랜만에 근처 산책도 하고 책도 보면서 여유를 즐겼다. 쉬는 날은 왜 이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 아내 퇴근시간이 되었는데 집안 정리를 하나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빨래도 돌리고 청소도 해야 하는데... 아내보다 늦게 집에 돌아온 나는 아내 눈치를 살폈다. "하루 종일 뭐가 바쁘셨군요..." 삐져 있었다. 나는 군소리 안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갠다. 똑같이 일을 하기 때문에 가사를 분담하기로 했다. 아침밥은 아내가 챙기고 저녁밥은 내가. 이런 식이다. 번번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골을 낸다. 일이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명상을 하면서 '눈치 보는 나'를 발견했다. 언제부턴가 아내 눈치를 보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일이 있으면 그런 패턴으로 진행해 왔던 것도 알았다. 마음속에 불편함이 남아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 마음들을 버렸다. 아내가 그대로 수용되었다. 이해되었다. 놀라운 일이다.


"오늘 많이 힘들었지?" 내가 물었다. "아침부터 정신없었어. 병동에 한 분이 돌아가셨거든." "돌아가셨다고?"요양병원이라 그런 일이 종종 있다. 아내는 하루 있었던 일들을 쏟아낸다.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 '정말 힘들었겠구나, 집에 와서 정리되지 않을 것을 보고 화가 났겠구나' 진심으로 이해가 되었다. 


전에 같으면 사소한 다툼으로 불편한 마음을 가진 채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눈치 보는 나를 없애니 담담해졌다고 할까, 당당해졌다고 할까. 언제부턴가 내 마음 깊은 곳에 아내가 나와 그만 살겠다고 하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의존하는 마음이 많았기에 헤어지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명상을 하면서 미래에 대한 그런 불안이 없어졌다. 눈치 보는 내가 없어지니 나는 나로서 오롯하게 있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있고. 서로 기대와 실망, 의존과 착취, 물고 물리는 혼탁한 관계에서 살았다면 이젠 서로 독립적인 인격으로 새롭게 만나고 있다고 할까. 어째튼 신기한 일이다. 




<혼자 있는 즐거움>


일상에서 명상을 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혼자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이다. 

유튜브를 보거나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보면서 소일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힘들어한다. 그런 나를 한심하다고 생각하며 자책한다. 하지만 명상을 한 후로 자책하는 마음이 없어졌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줄어들면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뭔가 내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쉬는 날이면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 불편했다. 특히 휴일 오후가 되면 다음날 출근해서 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울했다. 하지만 그런 나를 버리니까 편안했다. 그대로 괜찮았다. 있는 그대로 충만했다. 


처음 내가 쓴 글을 보고 피드백을 주었던 그녀와의 일화가 떠올랐다. 불과 6개월 전이다. 나를 힘들게 했던 원수가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은인이 되었다. 그녀의 사무실에 가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뭔가 도와주고 싶고 같이 차라도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녀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명상은 과거의 모든 상처와 고통조차 변화시켰다. 



일상에서 하는 명상은 삶에서 수많은 깨침을 주고 있었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내 모습을 보고 있다. 표독스러운 마음, 미워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그동안 그런 마음으로 얼마나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을까. 


직장에서 어떤 사안이 있으면 내가 맞다고 옳다고 우겼다. 상대가 상사라면 속으로 앙심을 품었고 아랫사람이라면 윽박지르고 살아왔다. 내가 잘났고 내가 전부였다. 상대는 보이지 않았다. 명상은 진실한 참회와 회개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속박했던 모든 집착으로부터 방생하는 것이다. 


내 마음은 그렇게 조금씩 가짜인 나로부터 벗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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