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다바리 : 일하는 사람 옆에서 그 일을 거들어 주는 사람 (네이버 국어사전)
영화 ‘친구’에서 유오성이 친구인 장동건을 친구가 아닌 부하 부리듯 하니까 친구로서 자존심이 상한 장동건이 유오성에게 눈을 부라리며 했던 명(?)대사가 “내가 니 시다바리가?”다. 사전에서 ‘시다바리’란 단어를 찾아보니, 일본어이고, 우리 말로 순화한 표현으로는 ‘곁꾼’, ‘보조원’ 등이 있다.
필자 세대는 영화 ‘친구’의 인기가 대단해 친구들끼리 장난을 치다가도 우스갯 소리로 자주 흉내내던 대사다. 그런데 필자가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저녁에 동기들끼리 모여 술이라도 한 잔 하며 신세를 한탄 할라치면 너나 할 것 없이 이 대사를 흉내내곤 했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 다들 짱짱한 대학교 4학년 선배들이었거나 대학원 석사 과정 조교 선생님이었던터라 누군가에게 심한 질책을 듣거나 자존심 구길만한 일을 당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회사 입사하고 나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치는 어린애 취급을 받고, 사사건건이 지적받고, 혼나는 코흘리개가 되었다.
요즘은 수시채용이다 경력 같은 신입이다 하며 신입사원에게 허드렛 일을 시키지도 않고, 그런 일을 시키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수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신입사원들이 회사에서 하는 일은 주로 복사하고, 짐 나르고, 문서 정리하고, 출장비 등 비용 정산하는 일들을 담당했다. 심한 경우는 상사가 개인적으로 시키는 개인사들도 당연하게 처리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게 동기 모임은 술이 한 두잔 돌며 격렬한 성토장이 되어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을 때 동기 한 명이 찬물을 끼얹는 말을 했다. 그 친구는 회사 내 각종 정보를 그 누구보다 빨리, 정확히 알고, 사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도 자초지종 상세히 설명해 주던 동기였는데, 우리들은 아마도 그 친구가 기획팀에 있어 정보력이 상대적으로 빠르구나 하고 감탄만 하고 있던 차였다. 그 동기 말인즉, 우리끼리 모여서 그런 신세한탄 해봐야 개선되는 것도 없는데,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까는 고민해 보는게 낫지 않냐는 것이다. (당시에는 엄청나게 야유를 받고, 재수 없다고 비난을 받았다)
그 친구의 직장 생활은 다른 동기들과는 조금 달랐던 것같다. 상사가 PPT로 문서 작업을 지시하면 다른 신입사원들처럼 건네준 자료를 기계적으로 Typing하고, 디자인 정도만 신경쓰는게 아니라 밤늦게까지 남아서 내용들을 꼼꼼히 읽는다. 복사해 오라고 업무 지시를 받아도 다른 신입사원들처럼 아무 생각없이 복사해 자리에 놓아두는게 아니라 문서를 복사하는 중에도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기도 하고, 급한 경우 헤드라인이라도 반드시 기억해 뒀다가 회사가 앞으로 어떤 사업을 진행하려고 하는지, 어떤 Issue가 있는지 저녁 늦게라도 반드시 알아서 다이어리에 메모를 해놓았다.
당시 필자는 그 동기를 보며 깜짝 놀랐었다. 자존심만 가득한 20대 후반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자신에게 중차대한 업무를 맡기지 않는 회사를 비난하고, 허드렛 일이나 하는 신세를 한탄하며 자기 자신을 ‘시다바리’라고 스스로 낮추어 푸념하고 있을 때 이 동기는 자기만의 경쟁력을 기르고 있었던거다.
예전 어느 TV 다큐에서 두산 박용만 회장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신입사원들이 처음 시작은 다 비슷하지만,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3년만 지나도 확 차이가 난다. 뭘 좀 아는 사람과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고, 거기서 핵심인재가 가려진다.’
공채로 입사한 신입사원이라고 하면 나름 Pride도 있고, 회사에서도 보호해주는 직원들이다. 그래서 3~4년간은 실적에 대한 압박 없이 가방 들고 재미있게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하다. 신나고, 재미있게 일을 배우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다 상사에게 혼나거나 기분 언짢은 일이 발생하면 동료들과 술 한 잔 하면서 안좋은 기분 털어내고 그렇게 깊은 생각 없이 지낼 시간인데, 시다바리가 아닌 핵심인재들은 자신이 직장에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필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신입사원들은 자신의 내부에서 문제를 찾기 보다 남탓을 하기 바쁘다. ‘난 잘했는데, 동료가 잘못해서’, ‘상사가 앞뒤가 꽉 막혀서’ 등등 핑계를 대곤 하는데, 필자가 이제와 지난 신입사원 시절을 돌이켜 보면 필자는 평균 이하의 직원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스스로 시다바리가 아닌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직원으로 성장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었나 생각해 보면 다소 민망해 진다.
조금 더 냉정하게 말해 나이가 들면 시다바리로는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결국 조직은 피라미드의 형태를 띄기 때문이다. 결국 피라미드의 하층부에 위치해 있을 때 철저히 준비해 두어야 Position이 생기고, 기회가 왔을 때 밀리지 않고,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시다바리가 되느냐, 핵심인재가 되느냐는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