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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린 Mar 24. 2020

n 번방 사건을 지켜보며

나는 절대로 저들이 내 안온한 일상을 망치게 두지 않겠다.

N 번방 사건이 연이어 화제다. 이미 몇 달 전에 저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커뮤니티를 통해 알았지만, 다시금 언론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추악한 진실들에 노출되다 보니 주말 동안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느끼는 공포. 내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자유로울 수 있었을 이 공포로 인해 가슴이 내려앉던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소라넷, 웹하드 카르텔, 버닝썬… 하지만 이 역시 잠시 화제가 되고 말았을 뿐, 내가 사는 이 국가에는 여전히 n 번방 사건을 규제할 마땅한 법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주말 동안 여자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는 온통 n 번방에 대한 것들뿐이었다. 피부로 체감하는 공포. 우리는 분노했고, 무엇보다도 두려워했다. 청원에 동참해달라는 글이 우후죽순 올라오자 이제는 n 번방 해시태그를 걸면, 검색을 통해 그 글을 올린 여자들의 사진을 캡처 해 ‘능욕방’에 올린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어떤 친구는 그러니 내게 스토리 게시글을 내리라고 말했다. 또 다른 친구는 모든 sns 계정을 비공개로 돌렸다고 했다.


나 역시도 계정 설정을 변경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문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러지 같은 새끼들 때문에 내 행동에 제약을 둬야 하나? 이렇게 생각하자 누가 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돌연 분노가 가라앉았다. 그들에게는 분노하는 시간조차 아깝다. 나는 악마도 무엇도 아닌(범죄자들을 악마화 하지 말자. 악마화 또한 다른 이름의 신성화이다.), 패배자들이 내 일상을 침범하게 두지 않겠다.


일어나서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플레인 요거트를 먹으며 생각했다. 이럴 때일수록 더 나 자신을, 내가 쌓아온 일상을 보듬어주어야겠다고. 물론 지치고, 힘들고, 역겨움에 토악질이 나오지만 지금 이렇게 갈 데 없는 분노에 잠식당해 무너져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늘이 되어줄 힘을 비축해야 한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 사건들의 소식을 접하며 시시각각 무너져 내리고 있을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분노는 동력이 될 수는 있지만, 결국 분노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니 이제는 그저 담담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관심을 쏟아야지.





나는 절대로 저들이 내 안온한 일상을 망치게 두지 않겠다. 더 배우고, 더 목소리 내며 나의 정원을 가꿀 것이다. 그 정원 안에서 다른 지친 이들이 쉬다 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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