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린 Jul 19. 2021

견성에 문제있어?

얄궂은 우리집 짱이와 느긋한 검둥이의 우정에 관하여





“견성 문제 있어?” 엄마가 짱이에게 자주 하는 말로, 가짜 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유행하게 된 “인성 문제 있어?”의 패러디이다. 짱이는 사랑스럽지만 얄궂은 강아지이다. 내가 사는 곳은 시골인지라 가슴 아프게도 대부분의 강아지들은 목줄에 묶여 있다. 오직 짱이만 집안에서 자라고, 매일 하루 두 번 자유롭게 산책을 한다. 문제는 산책 시 발생한다. 짱이는 다른 강아지들이 묶여 있기 때문에 행동이 자유롭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다면 가여운 마음을 가져야 할 텐데, 엄마 말마따나 견성에 문제가 있는 짱이는 다른 강아지들을 한껏 놀리는 데에 몰두할 뿐이다.


산책을 하다가 다른 강아지들의 개집을 지날 때면 짱이는 목줄이 닿지 않을 정도로 멀지만, 한 발자국만 앞으로 나서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왕왕 짖으며 뛰어다닌다. 엉덩이를 높이 들고 허리는 낮춘 사냥 자세로 달려들 듯 말 듯 뛰어다니는 짱이를 보고 있자면 나는 상대 강아지가 아닌데도 약이 오른다. 그래서인지 평소엔 얌전하기만 하던 강아지들도 짱이가 등장하면 흥분하기 일쑤이다. 목줄이 팽팽해질 정도로 앞으로 뛰쳐나오려고 하고, 두 발로 일어서서 분하다는 듯 컹컹 짖는다. 언젠가 동네 강아지들이 모두 풀려난다면 짱이는 저 중 누구에게 물려도 이상하지 않다. 엄마가 노상 하시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런 짱이에게도 친구가 있다. 유일한 친구이다. 이름은 검둥이다. 짱이가 여섯 살이 되던 해에 우리 동네에 새로이 정착하신 선생님 내외가 키우시는 강아지로 검정색 삽살개다. 검둥이는 30kg 가까이 되는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지만, 처음 짱이를 만났을 땐 아직 아가였기 때문에 짱이보다 체구가 작았다. 첫 만남의 기억이 지속되는 것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짱이보다 덩치가 족히 열 배는 더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검둥이는 여전히 짱이를 깍듯하게 대한다. 사실 친구라고 칭하긴 했지만, 둘 사이의 우정은 검둥이의 희생과 배려로 인해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


검둥이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다른 강아지들과 다르게 밖에서 자라지만 목줄에 묶여 있지 않다. 그래서 검둥이가 유유자적 마실을 다니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짱이와 산책을 하던 중 검둥이를 마주하면, 짱이는 절대로 먼저 검둥이를 아는 체 하지 않는다. 언제나 먼저 다가오는 건 검둥이이다. 검둥이는 짱이를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멈춰 서서 빗자루 같은 꼬리를 휘적휘적 흔들기 시작한다. 짱이가 눈길을 던지면 검둥이는 그제서야 천천히 짱이를 향해 다가온다. 검둥이의 태도는 느긋하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짱이의 의사를 존중하는 검둥이를 보고 있자면 그 젠틀한 태도에 감격스러울 지경이다.


짱이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검둥이와 놀지 말지를 결정한다. 기분이 내킬 때는 검둥이네 집 마당까지 따라 들어가 한참 서로 냄새를 맡으며 논다. 그러는 와중에도 검둥이의 밥을 몰래 빼앗아 먹는 걸 잊지 않는다. 짱이와 검둥이가 노는 걸 발견하신 선생님이 나와 간식이라도 주시려 하면 짱이는 검둥이의 몫까지 탐을 낸다. 밥도, 간식도 다 빼앗겨도 검둥이는 화내지 않는다. 도대체 검둥이는 짱이의 어디가 좋은 걸까? 어쩌면 검둥이는 유교 강아지일지도 모른다. 여섯 살이나 많은 짱이 할머니를 극진하게 모시고 있는 걸지도.




작가의 이전글 휘이이- 호오오-, 밤마다 들려오던 휘파람 소리의 정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