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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승무원 Dec 10. 2020

비행이 끝났다고 다 끝난 게 아니야

위기(危机)는 곧 기회(机会)

비행이 끝났다고 내 인생도 끝이난 걸까?

어려운 면접만 통과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승무원이라는 꿈을 위해 사표를 집어던지고 , 새로운 꿈을 향해 도전하는 모든 순간이 설레면서도 짜릿했고 , 질긴 노력 끝에 마침내 원하던 회사에 입사하고 사원증을 메던 그날 ,  더 이상 코 찔찔 찌질하기만 했던 사회 초년생이 아닌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취업을 위한 지극히 의무적인 자격증은 더 이상 따지 않아도 될 줄 알았고 , 불확실한 미래에 이리저리 밤잠을 설칠 필요도 없을 줄 알았다.


‘나 이제 뭐해야 하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라며 길을 잃은 채 진로 걱정을 하는 주변 친구들의 얘기는 더 이상 나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어딜 내놔도 손색없는 부모님의 자랑거리이자 자랑스러운 딸인 줄만 알았고 매달 무거운 짐을 이끌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면 고생했다며 나를 반겨주는 가족들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것조차 행복했다. 적어도 내 인생에서 더 이상 항공사 취업만큼 힘들고 고된 여정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회사를 뛰쳐나올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고 , 그 타의 라는 것이 나의 sns를 매일 훔쳐보며 가십거리를 만들기 좋아했던 전 직장 상사의 험담과 몸에 맞지 않는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같은 지극히 '사람과의 관계'에 의거한 압박이 아닌 '역병'이라는 자연적인 재해로 인해 허무하게 비행을 하지 못하게 될 거라곤 전혀 생각지도 아니 상상치도 못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받아왔던 이전의 상처보다 더 답답했고 막막했다.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평탄하기만 했던 내 인생엔 마치 내 그릇이 얼마나 단단한지 시험이라도 해보겠듯 '아홉수의 저주'가 찾아왔고,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올해는 질리도록 놀아보자며 자발적 백수를 자처했다. 여태껏 달려오기만 한 내 인생을 위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 말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목적과 수단을 위한 성취가 아닌 오로지 나의 기쁨과 즐거움에 집중한 순수한 쾌락이었다. 꽉 낄 유니폼 걱정 없이 맘껏 먹고 싶은 대로 먹어댔고 역대 최고 몸무게를 찍어대며 앞 자릿수가 6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뭐 대수야 어차피 비행 없잖아’ 라며 점심엔 곱창을 저녁엔 치킨 닭다리를 신나게 뜯어댔다.

힘든 비행 스케줄로 이나라 저나라 뛰어다니는 바람에 그동안 자주 못 봤던 친구들과 만날 기회가 많아졌고 평일과 주말 상관없이 친구의 회사 앞까지 찾아가 이러쿵저러쿵 수다를 떨어대기도 했다. 비행 때문에 늘 눈치를 보며 마셨던 맥주를 손에 집어 들고 ‘이까짓게 뭐라고! ‘ 라며 콸콸콸 마셔대기 바빴고 , 9시 이후엔 통금이었던 재외 규정을 생각하니 그동안 놀지 못했던 걸 확 몰아주기로 다짐한 채 새벽까지 친구들과 파티를 벌였다. 그렇게 먹고 싶은걸 맘껏 먹는 생존적자유와 그동안 일을 하며 벌어두었던 돈을 마음껏 쓰며 금전적 자유를 동시에 얻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이상 노는 게 허무했고 지겨웠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더한 준비도 해본 내가 이대로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순 없다고.


돌이켜보면 지난 몇 년간 매달 3-4개국의 여행을 하면서 후회 없이 일과 비행을 반복했고 비행이라는 특수 직종 덕분에 월 15회 정도의 오프가 주어져 내 나이 또래 친구들에 비해 적게 일하고  많이 벌었던 나름의 꿈의 직장이라고 생각했다. 후회 없이 즐겼고 더 이상의 미련이 없기에 또 다른 꿈을 위해 그다음을 준비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어쩌면 위기 속에서 반드시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이 ‘위기'라고 불리는 이 위태로운 그릇을 깨트리지 않고 잘 다듬고 닦아내면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다양하게 담을 수 있는 기회가 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엔 타인에게 증명하듯 어쩔 수 없이 보여주는 ‘수동적 준비’가 아닌 하고 싶은걸 내 마음대로 하면서 오로지 나의 ‘휴식’과 ‘취미’에 초점에 맞춘 ‘능동적 준비’를 해보기로 했다.

타이트한 유니폼을 의식한 의무적 다이어트가 아닌 나의 규칙적인 생활과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기로 했고, 나 자신의 지속적인 계발을 위해 매달 한 개씩 어학 자격증을 취득했다. 월급만으로는 부자가 될 순 없다며 너도나도 주식과 부동산 재테크 붐이 불기 시작했고 , 나 또한  부의 서행 차선이 아닌 추월차선에 뛰어들었다. 재테크에 관련된 서적과 강연을 듣기 시작했고 돈이 스스로 굴러가는 대표적인 3가지 시스템인 유통, 창작, 의도적 뒤풀이를 이용한 사업소득을 얻고자 취미를 살린 ‘쇼핑몰 사업’으로 유통을 시작했고, 유학시절부터 좋아했던 ‘글쓰기’를 통해 창작 사업을 시작했다. 꾸준히 글을 쓰자 출간제의가 오며 적지 않은 수입으로 사업소득이 생겼고 , 현재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을 통해 또 다른 기회가 생겨 새로운 글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이 모든 게 위기 속에서 찾은 기회였다.


모든 일이 다 그렇다. 나쁜 일 뒤엔 좋은 일이 찾아오고 시련과 아픔 뒤엔 반드시 달콤함이 찾아온다.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지만 언제나 고진감래의 연속인 건 분명하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고 , 꿈을 잃다 가도 다시 새로운 꿈을 향해 다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도전하면 된다. 어찌 보면 비행과 우리들의 인생도 참 많이 닮았다. 나의 울타리이자 보금자리였던 집을 나와 여러 차례의 수속과 준비를 마친 후 들뜬 마음으로 기내에 탑승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기류를 만나기도 한다. 예전엔 그런 난기류를 만나면 지레 겁을 먹고 식은땀을 흘려댔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난기류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비행을 하다보면 피해갈수 없는 ‘ 난기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지친 내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었고 그 휴식의 시간 덕분에 또 다른 기회를 얻고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울 수 있었기에 ! 그럴 땐 그냥 ‘언젠가 지나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옆에 있는 안전벨트를 꽉 붙들어 매기만 하면 된다. 일정 구간을 지나면 어느덧 내가 원하는 나라, 원하는 세계에 다다르게 될 테니까. 잠깐의 난기류에 두려워할 필요도 , 걱정할 필요도 없다.    


위기(危机)는 어쩌면 지금 너무 위험하니 잠깐 멈추어 서서 쉬어가라는 신호가 아닐까. 곧 찾아올 기회(机会)를 위해 잠시 숨 고르기를 하라고! 그러니 비행이 끝났다고 다 끝난 게 아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또 수속과 탑승 준비를 하여 새로운 탑승 길에 오르면 된다.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세계의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할 테니! 그전까지 우리는 잘 ~준비하고 잘~쉬어주면 된다.


               오늘도 나는 꿈을 꾸고 도전한다

               훨훨 날아오를 내 모습을 기대하며!

이 글을 쓴 이유는 갑자기 찾아온 팬데믹이라는 ‘위기’ 속에서 얼마든지 ‘기회’를 잡고 도전할 수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서에요. 꿈을 이뤘지만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지금도 아홉수라는 힘든 시기를 겪는 모든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희망합니다.
                            -아홉수 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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