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냄새
' 손님 여러분 ,
우루무치 항편에 탑승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작년 12월의 겨울이였다
두루무치인지 우루무치인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비행을 갈 때였다. 기내에 탑승하자마자 그 누구보다 빠르게 사원증과 코트를 벗어던진 채 급히 캐리어 가방에 쑤셔 넣는다. 손이 빨라야 살아남는 승무원 세계에서 스피드는 생명이다. 느릿느릿 굼뜨면 자칫 '일 잘 안 하는 승무원'으로 찍히기 쉬우니까.
얼른 기내화와 입국카드를 꺼내어 갤리 안 공간에 넣어둔 채 바로 안전장비 검사와 내 구역의 화장실에 비누와 화장지 , 물수건을 배치하고 마지막 거울 앞에서 오늘은 머리뽕이 잘 살았는지 다시 한번 머리와 스카프를 매만진다. 올라간 뽕만큼 자신감도 오르는 법.
어느 때와 같이 자본주의 미소를 장착한 채 승객 탑승을 준비한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준비가 빨리 끝났다. 어떤 기내식이 실렸는지 오븐과 카트를 뒤적거리는 4호 갤리 승무원이 보인다. 아침을 안 먹었다며 급하게 빵 한 조각을 먹던 그녀가 이제야 놀란 눈으로 갑자기 묻는다.
" 엥??? 너 한국인 승무원아냐 ? 너네도 우루무치를 가? "
이친구가 이렇게 놀라 물어본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 항편은 테러, 강도범이 많기로 유명해서 잘 뜨지도 않는 항편일뿐더러 외국인 승무원은 잘 배치하지 않는다는것! 예를 들어 우리나라 에어부산 부산행에 베트남이나 중국 승무원이 서비스한다고 생각해보자. 뭔가 이상하지 않을까. 심지어 땅덩어리가 넓은 중국엔 수많은 방언이 존재하는데 같은 중국인들끼리도 서로 못 알아듣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니 외국인 승무원은 굳이 배치할 이유가 없다는 거다.
자본주의 미소를 알릴때가 됬다는 다급한 보딩 소리가 울렸고 꾀죄죄한 얼굴의 다소 산적?처럼 생긴 남성들이 우르르 들어오기 시작했다.대체 이렇게 많은 짐들을 공항 수하물에 맡기지 않고 무겁게 여기까지 들고 오시는지 당최 그 이유를 모르겠다. 어떤 분은 자기 몸집만한 쿠쿠 압력밥솥을 , 어떤 분은 보따리 장사를 하시는지 큰 천으로 담긴 장바구니를 이고 오시고 대체 여기로 가는 이 분들의 정체가 뭔지 궁금해질 노릇이다.
‘우루무치는 대체 어디지...? ‘
‘이번 비행도 힘들겠구나...’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도중, 어떤 승객 한 분이 내게 자신의 자리가 맞냐고 물어보셨고 입을 여는 순간 이상한 향이 코를 찔렀다. 중국 국내선엔 중국분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사실 중국 특유의 향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아마 중국을 한 번이라도 다녀와봤거나 중국인과 대화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유난히 후각이 민감한 나여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불편한? 냄새가 있다. 참고로 나는 중국사람들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냥 그 향이 불편할 뿐. 그래서 국내선이 있는 날엔 유독 향수를 많이 뿌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기했던 건 그 승객에겐 내가 여태까지 맡았던 며칠 동안 안 씻은듯한 냄새와 방금 막 훠궈를 먹다 나온 진한 훠궈와 고수 냄새 , 각종 향신료를 뒤덮은 정체모를 향과 음식물이 섞인 냄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전혀 다른 차원의 냄새였다. 정말 죄송한 말이지만 썩은 충치 ...냄새라고 해야 할까.
누런 이빨에 이미 거뭇하게 다 썪어버린 이빨들을 내보이신 채 웃고 계신 손님 앞에 인상을 찌푸릴 수는 없는 법. 코로 숨을 참은 채 미소를 머금고 자리 안내를 도와드렸다. 웬걸.. 하필이면 내 구역 비상출구 좌석. 이 자리가 꾀나 민망한 게 점프싯에 앉는 우리들과 마주 보는 자리인지라 다소곳하게 앉아도 여전히 민망한 자리라고나 할까.
우여곡절 끝 착륙 방송이 떴고 앞에 계셨던 그 손님은 기지개를 켜며 손조차 가리지 않으신 채 나를 면전에 두고 크게 하품을 하셨다. 아까 드신 기내식과 커피 냄새가 함께 더해진 향이 순식간에 내 코를 덮었고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당장 벨트를 풀고 화장실로 뛰어가고 싶었지만 착륙 중엔 이동 불가. 대략 20분을 참고 견뎌야 했고 정통으로 맞은? 냄새를 잊을 다른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아참 아침에 뿌려둔 향수가 있었지’
조금 이상해 보일수도 있었겠지만 얼른 코를 손목에 박고 향을 조금이라도 맡아보기위해 킁킁거렸다. 그 모습이 이상할법도 한데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의 사람들이 신기할뿐이였다. 오랜 시간의 비행 동안 다들 무감각해진신걸까? 공기 탓일까.
생각해보면 중국의 의식 수준이 아무리 나아졌다 한들 , 그렇지 않은 분들이 대다수였다. 특히나 나이 때가 있으신 분들은 더욱 심하셨다.기내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쩌렁쩌렁 큰 소리로 대화하는 건 물론 , 좁은 기내안에서 굳이 향이 많이 나는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드시고 , 지나가는 승무원들을 마음대로 사진찍거나 툭툭 치시기고 하고, 기내 바닥엔 온통 해바라기씨 껍질로 난장판에, 비행기가 완전히 착륙하기도 전에 너도나도 일어나서 짐을 꺼낸 채 앞다투어 나가기 일쑤시다. 중국인을 싫어하지도 차별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무례한 사람에게 화가 나는 것뿐
그날의 우루무치 비행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중국 사람들 특유의 향
우리에게도 김치와 마늘냄새가 날까
그 무엇이 됐든 더 이상 맡고 싶지 않은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