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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승무원 Oct 22. 2020

특수식 100개는 좀 너무하지 않니?

밴쿠버의 채식주의자들


 " 또 밴쿠버...? 망할...."

나는 밴쿠버 비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인도 승객이 너무 많아서이다. 인도 승객이 많으면 왜? 인도는 여전히 계급사회(카스트 제도)가 존재하기때문이다. 신분제도가 있으면 왜? 즉 자신보다 아래계층의 사람들에겐 함부로 대할수 있다는것.


 또한 종교식, 채식이 많은 인도 승객분껜 탑승전부터 예약해야 하는 밀이 실리는데 이 특수식 종류만 몇십 가지가 넘고 같은 채식 이어도 계란이 없는 채식 밀 , 돼지고기가 없는 채식 밀 등등 이름도 천차만별이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 체크하는데도 어려운데 , 문제는 대부분의 승객이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영어를 써도 서로 의사소통이 안되니 뭐 도대체 이분들이 어떤 특수식을 시키셨는지 정확히 확인하기가 어렵다.


할 수 없이 아이패드에 표기된 손님 정보로 체크를 하는데, 자리 바꾸는걸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분명 좌석에 탑승하자마자 바로 이름과 특수식을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덧 이륙 후에 찾아보면... 이미 다른 분들과 자리를 바꾸셨다. 이름도 무슨 마하무라 , 알바라 등등 발음하기도 어려운 긴 영어 이름인데 얼굴들도 다 비슷하게 생기셔서 , 이분들이 사전 상의 없이 마음대로 자리를 바꾸시면 서비스가 잘못 나갈 수 있고 그  잘못된 음식을 드시면 탈이 날 수도 있기 때문에  곧바로 컴플레인이 발생하기 쉽다.  그리고 혼나는 건 나의몫.


*종교식 -이슬람교식 MOML 힌두교식 HNML 유대교식 KSML
*식사조절식-저지방 LFML 당뇨식 -DBML 저칼로식 LCML
*채식 -서양 채식   VGML , 힌두 인도식 채식 AVML, 엄격한 인도 채식 VJML , 동양 채식 VOML

(이외에도 정말 다양하다. 냄새나 육안상으로는 비슷해 보이는데 많이 다르다고 한다)


어느 날이었다. 매주 스케줄이 발표되는 금요일 밤 , 두근거리는 마음과 함께 스케줄표를 클릭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밴쿠버에 당첨됐다.


'와우...?? 각오 좀 단단히 해야겠는걸...'


혼자 방에서 짐을 싸면서 제발 내구역에 특수밀이 많지 않길 바랬다. 나는 7호였는데 큰 기종의 7호가 안 좋은 점이 있다면, 할 일이 너무나 많다. 화장실, 특수식 또는 휠체어 손님 확인 , 그리고 기조 휴게실(기조가 쉬는 공간 , 벙커)에 이불과 베개를 뜯어야 하는데 이불 배게를 뜯는데만 벌써 체력 고갈,  머리는 다 흥클어지고 손으로 쥐어뜯느라 손목이 너무나 아프다. 대충 뜯고 나오면 벌써 탑승 준비를 알리는 방송이 시작된다.


오 마이 갓! 향긋한 카레 냄새를 풀풀 풍기며 머리에는 흰 두건을 쓴 몇백 명의 스마프 군대의 행렬이 시작됐다. 짐은 왜이리 많은지  탑승한 지 몇 분도 안되어 벌써 오버헤드는 만석. 좌석이 이곳이 맞냐는 건지 좌석을 바꿔도 되냐는 건지 자꾸 물어는 보셨지만 알아들을수 없는 인도어와 영어가 섞인 인글리쉬? 덕분에 환장할 노릇이다.(이래 봬도 영국 어학연수생인데... 다시 다녀와야하나)


뒤죽박죽 정신없는 흰 두건의 생명체들이 하나둘씩 자리에 앉으면 , 다시 한번 특수식을 확인한다. 이륙 후 바로 서비스를 해드려야 하기 때문에 확인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기에 최대한 빨리 하는 편인데 ,  안타깝게도 그날 나의 통로는  대략  100개의 특수식이 예약되어있었다. 물론 나는 앞 구역만 하면 되지만,  뒤쪽 나와 같은 통로의 승무원이 사무장님이셨기 때문에 사실상 내가 거의 다 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진짜 딱 이런 모습!  귀여운 스머프들의 행진샷


툭...( 영혼이 빠져나가는 소리)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멘붕.. 아무것도 하기 싫다. 어쩌지.. 머리가 너무 아프다. 가까스로 확인을 끝내고 무거운 마음으로 점프싯에 착석한 채 종이에 써 내려간 그들의 정보와 특수식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되새긴다.


땡! ( 본격적 지옥 시작)


안전고도에 도달했다는 소리와 함께 급하게 갤리로 달려가 특수식을 먼저 제공해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 좌석에 계셨던 분이.... 그새 자리를 옮기셨는지 보이질 않았다. 알고 보니 다른 통로의 사람과 자리를 바꾸셨고 난 급히 옆 통로 승무원에게 내 승객의 이름 , 얼굴, 특수식을 알려드렸다.



특수식을 다 마치고 일반 기내식을 서비스하는데 어떤 분이 계속 나를 붙잡으며 자신이 시킨 밀은 왜 안 주냐며 정말 순수한 표정으로 물어보셨다. 순간 내가 무슨 잘못을 한 줄 알고 사무장님 아이패드까지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다시 확인해봤지만 그분의 명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시키지도 않아놓고 시켰다며 감 놔라 배 놔라 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자신을 믿어달라며 억지를 쓰셨고 , 사무장님께서는 귀찮다는 듯 기조식에 채소를 섞어 만든 밥을 내어주셨다. 단 , 다른 승객들 눈에 띄지 않게 몰래 드리라는 말씀과 함께..


“손님 , 주문하신 VGML(서양 채식) 나왔습니다”

“베지? 베지???? “


뻔뻔한 연기를 하신 그 남자분은 베지가 맞는지 확인까지 하시더니 그 자리에서 금방 다 드셨다. 그리고 그렇게 3번을 직접 기조식에서 따로 만들어 제공해드렸다. 내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속에선 말로 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고 스트레스를 풀 곳은 단 하나. 기내식 폭식하기. 유독 밴쿠버 만 다녀오면 살이 뿔어있었는데 ,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종종 정신적 체력적으로 영혼을 탈탈 털어버리는 항편들이 있는데 밴쿠버 비행은 손에 꼽히는 최악의 비행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특수식 100개는 진짜 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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