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승무원 Oct 07. 2020

승무원의 네 가지 단점

우리는 감정노동자

1. 불규칙한 스케줄

비가 많이왔었던 여름의 상해. 주륵주륵 비소리만 가득했던 호텔방안에서


"3시간밖에 못 잤는데..
이번 밤 비행도 힘들겠네.."
" 해피 뉴 이어!
파리는 좋은데 가족들은 보고싶어”
" 결혼 축하해!!!
근데 어쩌지..나 그날도 비행이야.."

생활리듬이 다 깨져버리는 불규칙한 스케줄이 가장 큰 단점이 아닐까 싶다. 밤 비행과 새벽비행이 일상이 되어버린 뒤죽박죽 스케줄. 밤 비행엔 대낮에 억지로 멜라토닌을 먹으며 잠을 청해야 하고 새벽비행엔 졸림 방지를 위해 커피를 마시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한다. 손님들 잘 때 나도 같이 자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지만,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까지 밀 서비스를 하는 나 자신이 안쓰럽다.
 
남들 출근할 때 퇴근하고 퇴근하는 시간에 출근하는 경우가 다분하다 보니 끼니를 챙겨 먹는 시간이 뒤죽박죽이라 어떤 날은 폭식을 하기도 하고 , 충분한 수면이 부족한 탓인지  늘 피부가 말썽이었다.스케줄 근무라 일반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과 시간 맞추기도 힘들다 보니  오프가 맞는 동기들과 자주 만나게 되고 , 친구의 결혼식이나 가족행사, 불금, 불토의 개념은 일찍이 포기해야 할 부분이다.

      

                 불금 , 불토가 뭐더라.... 까마득하다

                

2. 시차 적응 

벤쿠버에 가면 영양제가 한국보다 싸서 이렇게 늘 쟁여왔다
" 언니, 나 좀만 잘게 혹시 멜라토닌 있어?"


수없이 많은 항편에서 레이오버를 해봤지만 변한 없이 늘 시차 적응에 실패했다. 장거리를 갈 때면 더욱이나 힘든데 하와이의 경우 밤 비행으로 출발해서 도착하면 그곳은 이미 쨍쨍한 밝은 대낮이다. 낮에 잠을 자버리면 현지시각으로 저녁이 되었을 때 불면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운동을 하든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든 몸을 혹독하게 만들아야만했다. 오마이갓


고작 며칠 가지고 너무 오버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자야 할 시간에도 잠이 오질 않는 그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혹하고 답답하다.그래서 승무원의 필수템이라 불린다는, 멜라토닌을 늘 챙겨두고 다니는 동기, 선배들도 많이 보았고 나 또한 늘 가지고 다니며 먹었는데 .... 그럼에도 잠이 안 와 애를 먹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늘 달고 살던 두통, 몸살감기약 Advil!이거 한알이면 10시간 비행도 끄떡없다

                       잠이 만병통치약이라는데...

            그걸 내 맘대로 못하니 작은 일에도 예민했고

           점점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다.

                        


3.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 어디야? "
" 나 병원"
" 너는?”
" 나도!"


한국에서 주어지는 8일간의 오프는 너무나 귀하다.그 귀한 시간을 알차게 쓰고 싶은데 막상 병원 다니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중이염에 자주 걸렸었는데 일을 시작하면서 중이염이 쉽게 찾아와 늘 약을 달고 살았고 , 높은 힐을 신고 다닌 탓에 무지외반증도 생겨버렸다.


정형외과에서 도수치료도 꾸준히 받고 그다음 날엔  체력 보충용으로 비타민 수액주사 , 마늘주사, 등등 몸에 좋은 모든 주사를 꽂아대기 바빴으며 , 혹여 충치는 생기지 않았는지 치과도 정기적으로 가줘야 하고 , 피부관리 , 네일케어 등등 관리 데이 한번 해주고 나면 어느새 3-4일이 훌쩍 지나가버린다.하루는 은행업무 하루는 치팅데이 하루는 케어 데이... 한국에 있는 8일은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버린다.


이외에도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는 동기도 종종 있었고 , 무거운 짐이나 카트를 들다 보니 손목 염증이나 통증을 자주 호소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정말이지...
                  모두가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다

                        이젠 그만좀 아프고싶다


4. 감정노동자

교육생 시절 받았던 서비스 교육
사람으로 상처 받고 사람으로 위로받는 직업"
감정노동의 대명사인 서비스직


얼굴은 늘 웃고 있지만 우리도 사람인지라 슬플 땐 슬픈 대로 , 아플 땐 아픈 대로 그날의 그때의 감정이 흐르는 대로 그대로 두고 싶다.하지만 슬프다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손님을 대하면 불친절하다고 컴플레인을 받기 일쑤고 , 아프다고 아픈 표정을 지으면 승객이 안전에 위협을 느낄 수도 있다며 상사에게 혼나기 일쑤다. 


아파도 안 아픈 척 , 슬퍼도 행복한 척 , 무서워도 괜찮은 척,  그놈의 척척척 ! 척하는 착한 가면을 써야 하는 직업.사람을 상대하는 모든 직업은 감정 노동자가 아닐까?

#에피소드

발리에서 생긴일

그날따라 내 구역에 유독 휠체어 손님이 많았고 ,이날은 여러모로 정신이 없기도 했고 , 몸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하필이면 깐깐하신 사무장님을 만났고 비행 내내 뒷 갤리로 와서 자꾸 웃으라며 내 표정을 지적하셨다.  사무장의 끊임없는 잔소리에 더욱 짜증이 났고 손님들께 웃으면서 대할 여력조차 없었다. 그렇게 기분이 다운된 채로 안전검사를 진행하고 비행기가 착륙했다.


손님들이 모두 내리신 후 ,내 구역의 나이가 많으신 휠체어 손님을 부축하고 나가는  그 때였다 .갑자기 손님께서 내손을 꼭 잡아주면서 말씀하셨다.


 아가씨~~~
나도 손녀가 있는데
아가씨처럼 너무 예쁘고 친절해~
덕분에 편히 쉬었다가~
고마워요 예쁜 아가씨 !!

연신 고맙다고 말씀해주시는 손님의 말에 나도모르게 울컥해서 눈물이 나왔다. 오늘 내 자신이 생각해도 한 분 한 분 제대로 잘 못 챙겨드린 것 같은데.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너무 부끄러웠다.

그날 잡아주신 따듯한 온기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게 하루 온종일 힘들다가도 누군가 무심코 툭 던지는 위로의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어주는 직업.

사람으로 상처 받고 사람으로 위로받는

참 아이러니한 직업.


나도 어느 누군가에게 따듯한 위로를 줄수 있는 사람일까

 

이전 09화 승무원의 네 가지 장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