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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승무원 Dec 03. 2020

승무원에게 캐리어란

승무원의 캐리어

어휴, 내일 어떻게 다 끌고 가지....


나에겐 총 4개의 캐리어가 있다. 장거리용의 큰 캐리어와 중단거리용 작은 캐리어 , 옷이나 유니폼을 담는 전용 가방과 마지막으로 매일 들고 다녀야 하는 기본 가방! 이렇게 총 4개의 가방을 다 들고 다니냐고? 다~ 끌고 다닌다. 한 손엔 큰 캐리어와 작은 손가방을 ,  또 한 손엔 작은 캐리어와 옷가방을 동시에 든 채 말이다. 누가 보면 마치 저~멀리 유학길에 오르는 사람마냥 내 몸집보다 큰 가방을 낑낑거리며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상해에서 한국 또는 한국에서 상해로 들어가는 경우엔 매 달 한 번씩 이 무거운 짐들과의 사투가 시작된다. 한국에 입국할 때엔 그동안 상해에서 체류하며 비행할 때 사온 오만가지 기념품들을  꾹꾹 눌러대어 기어코 데려왔고, 한국에서 일주일간의 행복을 맛보고 어느덧 다시 상해 입국을 알리는 불행한? 날이 점차 다가올 때면 다시 어딘가 처박혀있는 검정 캐리어들을 하나둘 주섬주섬 꺼내어 다시 긴 여정을 떠날 준비를 한다. 여행지에서 입을 옷들과 가방, 컵밥, 화장품 등등 그렇게 짐을 싸고 풀면서 채움과 비움을 반복해댔다.

늘 빵빵한 캐리어

어쩌다 한번 여행을 가는 사람들에겐 출발지에서 짐을 싸는 순간부터 여행지에 도착 후 짐을 푸는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설레기 마련이다. 승객이었을 때의 나도 그러했으니까. 하지만 승무원들에게 짐 싸기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적어도 나의 경우엔 짐을 싸는 그 순간부터 스트레스 시작이었다. 꽉꽉 눌러 담긴 캐리어를 보자니 저 무거운 짐을 공항까지 혼자 어떻게 끌고 가지 하는 불안감과 , 공항버스를 기다릴 때면 제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픽 픽 쓰러져가는 캐리어를 부여잡고 사람들 사이에서 땀을 뻘뻘 흘리기 일쑤였고 , 공항에 내려서는 무슨 놈의 안전검사가 이리도 많은지  2단 서랍장처럼 생긴 가방을 조립하듯 분리하며 하나둘씩 빼었다 끼었다 하는 지겨운 행위를 반복해야 하기 마련이다.


이때 동작이 느리면 자칫 앞에 계신 선배님을 놓쳐 버릴 수 있으니 정작 내 코트 끈도 제대로 묶지 못한 채 스카프를 휘날리며 선배님의 그림자를 쫒아 달려야 한다. 게다가 규정 힐을 신은채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다 보니 한쪽으로만 힘이 쏠린 탓에 왠지 모르게 내 골반이 뒤틀려가는 느낌은 물론, 거울을 보면 유난히 내 오른쪽 팔뚝만 울그락 불그락 튀어나온듯하다. 기분 탓일까. 예쁘고 늘씬한 모습은 글렀다. 에스컬레이터 발판 간격은 또 어찌나 좁은지 양손으로 쿵-짝 쿵-짝 박자에 맞추어 내발 한번 , 캐리어 한번 , 이렇게 손과 발을 맞추어 장단을 추어야 하는 법. 한눈 파느라 장단을 제 때에 맞추지 못하면 캐리어 친구들과 함께 앞으로 쏠리어 큰 코 다칠 수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나의 동반자

캐리어와의 전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내에 들어가서는 2차전쟁이 시작된다. 탑승전의 기내 안은 말 그대로 전쟁통이다. 여기저기 널부러져있는 신문과 각종 쓰레기,  청소기를 들고 우렁찬 소리를 내뿜며 반겨주시는 청소 아주머니 , '비키세요'하며 돌격하시는 진격의 카트차량 아저씨 , 부랴부랴 짐을 싸고 이제 곧 내리는 전 항편 승무원 부대들 , 그리고 이제 막 그곳을  들어가려 하는 우리들. 그렇게 조그마한 복도식의 기내엔 들어가려는 자와 나가는 자와의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나가는 자들이 더 급하기에 다시 영혼까지 힘을 끌어 모아 내 몸뚱이와 캐리어를 함께 좌석 칸 사이사이로 퍽하고 밀쳐 넣은 채 얼른 내어가라고 자리를 비켜준다. 그리고 다시 복도를 헤집으며 저 맨 끝 갤리까지 질질 끌고 간 후 오버해드 맨 끝에 우리들의 짐을 넣으면 된다.


이때 다시 캐리어 분리해체 작업을 시작하여 예쁘게 각을 잘 맞추어 짐칸에 보관 후 그때부터 본인 듀티의 일을 시작하면 된다. 여기까지가 집에서 출발해서 기내에 도착하는 순간까지의 짐과의 사투다. 그렇게 온갖 힘을 쓰고 나면 정작 본래 해야 하는 일에 쓸 에너지가 없어지고 만다. 이미 녹초가 되어버려 찢길 대로 찢긴 종이 쪼가리 같은 내 몸뚱이와 쭈글쭈글 주름진 내 얼굴을 보며 다짐한다.

힘들다... 다음부턴 적게 챙겨야지’

우리의 인생과 닮은 캐리어

가만 보면 캐리어는 마치 우리들 삶과 비슷하다. 가방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짊어지는 게 많으면 많을수록 한 발짝 내딛는 것 자체가 고되고 힘들다. 배낭이 무거우면 걸음도 무거운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다.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채우기만 하는 삶은 그만큼 걱정도, 불안함도 큰 법이다. 욕심이 많으면 많을수록, 남의 것을 탐내면 탐낼수록 , 모든 것을 가지려 들고 그저 소유하면 할수록 신경 쓰일 일들이 너무나 많다. 욕심은 끝도 없기에.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채우는 삶만 고집했던 것 같다. 호텔에 도착하면 줄곧 마트로 나가 그 나라의 음식과 과일들을 냉장고 안에 즐비하여 꽉꽉 채어대기 바빴고 밖을 나서면 그 나라에서 유명하다는 음식은 하나씩 다 먹어봐야 직성이 풀렸다. 채우고 담고, 맘껏 먹고 사고 난 뒤 빼곡빼곡 나란히 모여있는 식량 비슷한? 것들과 기념품들이 내 눈앞에 보여야 그제서야 마음이 편했고 호텔 침대 옆엔 무조건 1.5리터짜리 물통이 몇 통씩 즐비되어 있어야 했다.  짐의 부피가 크면 클수록, 물질적으로 더 많이 소유하면 할수록 내 마음도 덩달아 가득 채워지는 줄 알았다. 그게 결핍인 줄도 모르고.

유명하고 좋다는건 싹 쓸어담는게 취미였던 욕망의 지난날들

내게 있어 캐리어란 ,

어쩌면 욕망 덩어리가 아니었을까.

채우기만 할 줄 알았지 비워낼 줄 몰랐던 것처럼.

온통 더하려고만 했지 덜어내는 법을 몰랐던 것처럼.


바퀴 달린 채 제 할 일을 다하며 이나라 저 나라를 함께 달려대던 내 진격의 캐리어들은 코로나로 인해 어느덧 옷장 속에 깊숙이 처박혀있는 짐짝이 되어버렸다. 갈 곳을 잃어버려 속이 텅-빈 채로 눕혀져 있는 캐리어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찡하다. 문득 바쁘기만 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생각나는 오늘이다. 그 안엔 내 지난 삶과 여행이라는 추억들이 고스란히 묻어있기에.


이제는 저 캐리어 안에 꽁꽁 숨겨두었던 승무원 시절 속의 그 기록과 삶의 이야기를 ‘브런치’라는 이 공간에 하나둘씩 풀어갈 예정이다. ‘채우는 삶’에서 ‘비워내는 삶’으로!

그래도 가끔은 그립다


              빵빵한 캐리어를 끌며 공항을 거닐던

                       욕망 가득 찬 내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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