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승무원 Dec 08. 2020

승무원이지만 유니폼이 싫습니다

모순(矛盾)과 애증(爱恨)사이

정식 승무원이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우리 회사의 유니폼

처음 유니폼을 받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6개월간의 지옥 같은 훈련을 마치고 유니폼을 받던 그 날은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몇 개 월내 내 지겹도록 입어대던 교육생의 상징인 흰 블라우스와 검정치마를 냅다 집어던지고 명찰도 채 달리지 않은 새 유니폼을 끌어안고 너도나도 사진을 찍기 바빴다. 정식 승무원이 되었다는 희열감에 기뻤던 걸까 새 출발을 의미하는 새 옷이 좋아서였을까. 이유야 어쨌건 이 유니폼을 입는 순간부터 모든 승무원들은 항공사를 대표하는 사람이 된다.  항공사를 대표하는 '얼굴'이자 회사의 '신념' 보여주기 때문에  너도나도 앞다투어 거액의 비용을 투자하면서까지 유명 디자이너와 손을 잡고  공을 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에어프랑스의 유니폼

우리 회사의 경우 파리지앵의 감성을 유니폼으로 옮긴 에어프랑스 유니폼과 흡사한데 , 패션업계의 거장인 프랑스 출신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라크르와가 한 땀 한 땀 만들어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니폼 5위권에 드는 나름의 퀄리티 있는 유니폼  하나이기도 하다. 단지 유니폼이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승무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단순히 아름답다는 표현 그 이상의 판타지와 로망, 아무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어떤 마력이 존재한다. 아무나 갖다 입혀도 예뻐 보이는 마력! 남녀 불문하고 말이다. 하지만  유니폼의 로망은  달도  안되어 ‘불편한 작업복 되고 만다.


가뜩이나 살이쪄 허벅지를 가리고 싶은데 가운데 사이로 가위로 오린 듯 트여버린 희한한 디자인의 유니폼 탓에 점프싯에 앉으면 재빨리 두 손으로 벌어진 치맛자락을 감추기 일쑤였고, 손님이 바로 앞에 앉아있는 비상탈출 좌석 앞자리에 마주 보고 앉는 날이면 서로 얼굴 붉히며 당황하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누굴 위한 옷인걸까. 의문이다. 더군다나 나날이 복부를 조여 오는 이놈의 허리 벨트  덕분에 당장이라도 풀어헤치고 휴- 하고 숨을 깊게 내뱉고 싶지만,  매번 다이어트에 실패해버린 나의 몸뚱이를 탓할 뿐. 그저 평소보다 화가 더욱 차올라 부풀대로 부풀어 올라온 배를 꼭 부여잡고 다짐한다.  ‘오늘은 저녁 굶어야지’

승무원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이륙과 착륙을 반복하며 쪼그라졌다가 다시 팽창해지는 패트병을 보며 한 번쯤은 이렇게 생각해봤을 법도 하다. ‘내 몸안의 장기들도 저렇게 수도 없는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겠지..’그야말로 악조건 속의  높은 압력의 수축과 팽창으로 어느샌가 내 몸은 얼굴부터 종아리까지 퉁퉁 불어있기 마련이고 ,  몸 하나 맘 편히 움직이기 힘든 좁은 기내 안에서  딱 달라붙는 치마와 검정 하이힐은 그저 불편하고 성가신 겉치레에 불과할 뿐이다. 되도록이면 편안하게 좀 만들어주지 대체 왜 이리도 타이트하고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보는 사람도 불편해지게 말이다.


미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른데 여성의 신체적 특성과 편안함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 오로지 남성 중심주의의 정형화된 미의 기준으로 마네킹 찍어내듯 만들어버린 유니폼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편으론 속상하기도 하고 씁쓸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까.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야 하는 일의 특성상 짧은 치마보다 편한 바지를 입어보고 싶은데 '여성의 미' 자체를 무조건 ‘치마’ 하나로 단정 지어버린 사회적 잣대와 기준에 그저 아쉬움만 가득할뿐이다.

그래도 유니폼이 주는 좋은 점도 있다. 저 멀리 공항을 거닐다가도 우리 회사 유니폼을 발견하면 마치 나의 동지를 만난 듯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고, 수많은 승객들 사이를 거닐 때면 왠지 모를 우리만의  ‘유대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나와 똑같은 옷과 같은 쪽머리 헤어스타일을 한 사람들과 다 같이 승무원 전용 라인에 줄을 서있을 때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특별한 '소속감'을 느끼기도 했다. 커플들이 커플티를 입으며 그들만의 친밀감과 유대감을 자랑하듯, 같은 옷, 같은 제복, 같은 유니폼은 그 세계만의 ‘동질감을 주기 마련이다.


촌스러운빨간색 립스틱과  끼는 유니폼을 향해 매일같이 불편해서 싫다고 툴툴거리다가도 막상 사진 속의  모습을 보자니 그저 ‘예쁘게 보였고, 보수적인 집단을 자랑하는   답답한 ‘항공사 문화 싫어 죽겠다며 아우성쳐대도 , 때로는 같은 회사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를 마음껏 챙겨주던 소속감 가득한 동기들과의 ‘공동체 문화 그립기도 했다. 그야말로 모순  자체다. 싫은데 좋고 싫다고 하면서 결국 다시 그리워하는 꼴이라니..

미워할래야 미워할수 없는 애증의 모순덩어리!

                     승무원이지만 유니폼이싫다.

           (아니, 사실은 유니폼 너가 너무나 좋다!)

이전 06화 승무원에게 볼펜이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