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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승무원 Jan 27. 2021

‘비행’ 말고 , ‘여행’ 을 합니다

자유의 맛


승무원 시절 비행보다 더 힘들었던 건 몇 시간짜리 비행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간과의 싸움 그리고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였다. 예를 들어 제주비행의 경우 한 시간 거리로 밀 서비스도 나가지 않는 아주 짧은 항편의 비행이지만 이 한 시간을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서 준비를 시작한다. 보통 제주비행의 경우엔 새벽쇼업시간이다. 새벽 4시쯤 일어나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는데 한 시간 , 그리고 기조들과 브리핑을 하기 위해 회사로 이동한다.


알코올 음주측정을 하면 그날 항편의 브리핑실 호수가 뜬다. 1시간 정도 다 같이 금일 항편의 정보에 대해 브리핑을 한 후 다시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한다. 공항에 도착해서 안전검사를 마친 후 , 게이트를 향해 일렬로 이동한다. 기내에 탑승해서 각자의 호수대로 일을 하고 나면 그렇게 또 1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비행 한 시간을 위해 대략 4시간의 시간을 준비하고 비행이 끝난 후에도 호텔로 이동하기까지 몇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선배님들과 , 사무장님들과 같이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는 순간까지도 아직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만약 장거리 비행을 가서 선배와 같이 방을 쓰는 경우엔 밥먹는 것 조차도 내 맘대로 먹기 불편한 상황이 다분했다.

아름다운 천국의 섬 ‘하와이’

노래도 크게 틀지 못하고 , 누가 먼저 씻을지 눈치껏 행동해야 하고 일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내 맘대로 큰소리로 마음껏 친구들과 통화조차 할 수 없었다. 비행이 끝나도 자유는 없다. 내 맘대로 맥주 한 캔 못하는 생활이라니. 모든 것이 답답했고 숨이 막혔다. 진짜 자유를 얻고 싶을 땐 호텔 안이 아니라 호텔 밖에서 이뤄져 버렸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캐리어를 집어던진 채 혼자 나가서 쇼핑을 하거나 그날 오프인 동기와 커피 한잔 하는 순간이 내게 주어진 작은 자유의 시간이었다.


밤늦게까지 있고 싶었지만  이놈의 재외 규정 때문에 9시 이전에는 반드시 호텔로 돌아와야 했고 문득 비행 중의 여행이 아니라 그냥 자유로운 여행이 하고 싶어 졌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즐기는 자유가 아니라 내가 내 마음대로 놀고 싶을 때 들어가고 싶을 때 그저 내 마음껏 내키는대로 시간을 쓰는 자유로운 여행을 하고 싶었다.

코나커피

2020년 1월 , 나의 1년 치 연차를 다써버리로 작정하고 무작정 친한 친구와 함께 하와이로 여행을 떠났다. 승무원이 되고 나서 처음 해본 여행이었다. 쉬는 날에도 비행기를 타면 마치 일하는 기분이 든 것만 같아서 그 흔한 제주도도 한번 다녀오지 않았는데 큰맘 먹고 승객으로 비행기를 탑승하고 여행길을  떠났다.


승객으로 탑승하는 것도 나름의 신선한 충격이였다. 차라리 일을 하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너무나 길고 지루했다. 일할땐 승객들처럼 편히 쉬고 싶었는데 막상 쉬라고 자리펴주니 몸이 움직이고 싶어 안달이라도 난듯 답답하고 지루했다. 그렇게 몇시간을 달려 하와이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매일같이 코나 커피를 마셨고 늦잠을 잔 채 친구와 방 안에서 노래도 부르고 춤추며 시공간적 제약 없이 맘껏 즐기기로 했다. 눈치 봐야 할 사람도 없었고 밤늦게까지 술을 마셔도 그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늦은 시간 호텔에 입성해도 나를 지적할 사람조차 없었다.나는 당당하다!

자유로운 여행!

그렇게 자유를 만끽한 채 와이키키 해변에서 친구와 함께 모래에 우리들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 발에 묻은 모래만 보고도 서로 깔깔거리며 웃어대기 바빴다. 맥날의 치즈버거는 또 어찌나 그리 맛있는지 1일 1 버거를 만끽하고 식후로는 코나 커피를 마시기위해 카페로 달려갔다. 하와이로 혼자 비행을 와서 마셨던 커피보다 여행으로 친구와 같이 마신 커피가 100배 더 맛있고 달콤했다. 이렇게 맛있는 커피였던가..


오후엔 쇼핑을 즐겼다. 먹고 싶은 것 , 사고 싶은걸 마음껏 사재 끼며 마치 환락의 섬에 온 듯 즐기고 또 즐겼다.  서른이 오기 전에 꼭 친한 친구와 하와이를 가고 싶어 했던 나의 오랜 버킷리스트가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그보다 가장 좋았던 건 회사를 입사한 후 오랜만에 느껴본 자유로움 이였다. 가장 편한 친구와 함께 떠나는 무계획 여행! 비행 아니고 여행! 승무원 아니고 승객으로 여행길을 떠났던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립다


그 순간 그 장소에서 마셨던

하와이 맥주와 코나 커피의 맛

여행의 맛


그 자유의 맛이 그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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