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볼펜 있나요?
‘ 손님 , 필요한 거 있으십니까?’
‘혹시... 볼펜 있나요?’
저도요!!!!
저도요!!
저두여!’
또 시작됐다.. 마의 구간 ‘볼펜 빌리기’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둘씩 손을 들기 시작한다. 벨이 울리고 너도나도 같은 노란 종이에(입국신고서) 바삐 적기 바쁘다. 입국카드를 드리는 동시에 다급한 표정으로 펜을 찾기 시작했고, 유니폼에 꽂아둔 마크가 그려진 회사 볼펜이 하나둘씩 사라질 때마다 연신 죄송하다는 말씀만 드릴뿐이다. 펜을 빌려드리는 건 의무가 아닌데.. 마치 서비스를 드리지 못해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이 마의 구간은 보통 한중 비행에서 잘 일어나는데 , 비행거리가 짧은 관계로 서비스도 재빨리 해 드려야 하고 ( 최근엔 부족한 시간 관계상 기내식 밥에서 빵으로 대체되었다) 입국카드도 드려야 해서 매우 정신없이 바쁘다. 내구 역의 손님은 몇십 명 아니 몇백 명인데 내 유니폼에 꽂아져 있는 펜은 단 2자루. 빌려가신 분들 중 단체로 오신 분들이 하나의 펜을 가지고 펜 돌리기를 하시면.. 결국 처음 빌려드렸던 분의 손을 멀치감치 떠나 착륙 전까지 펜의 행방을 찾지 못할 때도 있다.
이리 빌리고 저리 빌려드리다 보면 결국 누가 누구 펜인지 손님 얼굴도, 좌석도 기억이 나지 않기도 하고 , 괜히 직접 가서 펜을 다 썼냐고 물어보기도 애매하다. 아주 자연스럽게 펜을 가져가시는 분도 계시고, 또 어떤 분은 모르고 가방 속에 넣기도 하시니까.
왜 그깟 펜 하나에 집착하냐고?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의외로 우리들은 승객의 특이사항, 정보, 요구사항( 담요, 물 등등) , 휠체어 승객, 특수식, 유아 안전벨트 좌석 위치, 고장 난 좌석 또는 기기 , 기내 암호, 사무장님 브리핑 주의사항 등등 매 항 편마다 정보를 기입하는 작은 종이를 들고 다니며 매 순간 체크해야 하기 때문에 없으면 절대 안 된다는 것! 어찌 보면 우리의 목숨줄을 붙들고 있는 게 이 ‘볼펜’인데!! 손님들께 이리저리 다 빌려드리다 보면 정작 필요한 급한 상황에 메모를 할 수가 없다는 것.
모든 분들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일부의 분들은 ‘펜’ 도 일종의 ‘서비스 물품’ 비슷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이 펜 하나쯤이야 하고 돌려주시지 않은 분들이 계시기 마련이다. 승객들 입장에서는 사소한 일일수 있지만 , 매일 하루에도 몇 번을 아니 몇백 명씩 상대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매항편마다 펜을 다 드리고 돌려받지 못한다면 참으로 찜찜하고 불안한 법이다.
사실 비상용으로 모아둔 회사 볼펜들이 아주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한자루 한자루 내겐 소중한 ‘생명’같은 존재다.
소중한 당신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