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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승무원 Dec 21. 2020

승무원에게도 통금시간이 있습니다

레이오버의 두 얼굴


띵동

00 사무장님이
실시간 위치 공유 방에 초대하셨습니다


항공사에 입사하자마자 통금시간이 생겼다. 내일모레 서른에 통금시간이라니.. 해외 베이스로 비행을 하는 우리들에겐 ‘재외 규정’이 존재하는데 이 규정은 한국을 떠나 상해에 체류하여 레이오버 비행에 가는 그 모든 순간까지 쭉 지켜야 하는 규율이다. 비행이 없는 쉬는 날까지도! 상해에서의 오프(비행이 없는 날) 에도  절대 술을 마실수 없을뿐더러, 밤 9시 이후에는 외출이 금지된다. 무조건적인 ‘금주와 , 9시 통금’ 이라니.


금주는 몰래 마신다고 한들, 9시 통금을 잘 지키는지 확인은 어떻게 하냐고? 레이오버 비행을 가면 사무장님의 주도하에 그날 항 편의 기조들( 기장, 부기장을 포함한 전체 승무원 방) 과의 전체 단톡 방을 만든다. 이 단톡 방을 만드는 이유는 혹여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상황을 공유하거나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 각 기조들의 실시간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실시간 위치 추적을 어떻게 하냐고? 우리나라 카카오톡엔 아직 현재 위치 공유 기능이 없지만 중국의 카카오톡인 위챗의 여러 기능 중엔 실시간 위치 공유 기능이 있다.

현지시각 밤 9시가 되면, 사무장님이 실시간 위치를 공유하시고 그때 다 같이 참여함으로써 각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만약 이때 위치가 벗어나 있거나 제시간에 참여를 하지 않으면 호텔방으로 콜이 오는 건 물론, 호텔 콜도 받지 못하면 사무장님이 직접 방 검사를 하러 오신다. 조금이라도 호텔 범위 내에 이탈하거나 , 실수로 참여하지 못하면 재외 규정을 어긴 것으로 간주되어 경위서를 작성해야 한다.


호텔 주변 맛집에서 저녁을 맘껏 먹다가도 이놈의 9시 통금 덕분에 음식을 다 씹어삼키지도 못한 채 한 손으론 밥을 먹고 한 손으로 시계를 쳐다보며 부랴부랴 짐을 챙겨 호텔로 뛰어들어가기도 했고, 혹여나 차가 막혀 9시를 조금 넘길 것 같으면 극도로 예민해져 애꿎은 택시기사의 귓가에 대고 연신 잔소리를 해대기도 했다. 맥주가 너무 마시고 싶지만 당당하게 맥주 한 캔 사지 못한 채 혹시나 적발되진 않을까 걱정되어 이리저리 눈알을 맘껏 굴려대며 눈치 보는 내 모습을 보자니 ‘낼 모래 서른인 내가 대체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3박 4일 하와이 레이오버였던 어느 날이었다. 어느 때처럼 9시 통금을 기다리고 있었고 정각이 되자마자 실시간 위치 참여를 한채 얼굴 화장을 지우고 있었다. 유난히 그날 항편의 사무장님이 까다로웠기에 혹시 몰라 실시간 참여된 카톡방 화면을 캡처해뒀다. 역시 여자의 직감은 틀린 적이 없다. 그 예민 까탈스러운 사무장으로부터 호텔 전화가 따르릉하고 한번 울리더니 나가서 받으려는 순간 전화가 끊겨버렸다. 그러더니 곧바로 채팅방엔 나를 찾는 톡이 연거푸 떴다.


‘한국인 승무원 지금 어딨냐’ ‘실시간 채팅방에도 없고 전화도 안 받는다’ ‘재외 규정을 어겼으니 한국 승무 원부에 고발하겠다’ ‘지금 빨리 본인 호수로 전화 걸어라 등등.. ‘ 어처구니없는 말로 나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곧바로 사무장님 호텔방으로 전화를 걸었고 분명히 실시간 위치에 참여한 사실을 설명했지만, 그녀는 내 프로필 얼굴만 자신의 폰엔 보이지 않았다며 무작정 나를 탈주범으로 우기기 시작했다. 어떤 말로 입증해야 할지 모르던 찰나, 아까 9시 2분에 찍어놓은 캡처본이 문득 떠올랐다.

곧바로 내가 실시간 참여한 캡처본을 단체 톡방에 올렸고 증명해 보이자 그제야 사무장님은  자신의 폰이 잘못된 것 같다는 말 한마디로 사건을 마무리하셨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수화기 너머로 뚜뚜뚜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말로 표현할수 없는 깊은 빡침이 끓어올랐다. ‘방금 뭐가 지나간 거지...’  화장도 제대로 지우지 못한 채  달려오느라 테이블과 바닥엔 물기가 뚝뚝 흘러댔고, 그저 그 자리에서 몇 분을 채 앉아있었다.후- 하고 숨을 내쉰 채 다시 화장을 지우면서 다짐했다. ‘내일 돌아가는 비행도 힘들겠구나...’


그리고 그 캡쳐본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상해에 도착하자마자 면담에 끌려가야했겠지...?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선배나, 동기들도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유독 한국인 승무원을 싫어하는 사무장님들도 많이 계시기 때문에. 아무리 매 항편마다 팀원이 달라진다 한들,  그 날 항편만큼은  나의 상사가 눈 시퍼렇게 뜨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혹여라도 가는 항편에서 밉보이기라도 한다면 비행 내내, 돌아오는 항편 내내 아니 여행하는 자유의 시간들마저 모두가 가시방석이었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면 안전벨트 하나 못 채웠다고 트집 잡아 일쑤고, 그냥 눈감고 넘어가 줄 수 있는 사소한 문제마저 꼬투리가 잡힐 수 있기에.. 승무원은 해외 가서 술도 마시고 마음껏 놀고 여행해서 행복하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상 모든 레이오버 비행이 행복하기만 했다면 그건 완벽한 거짓말이다. 상사와 함께 출장을 간다고 생각해보자. 완벽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래도 사소한 일탈의 짜릿함도 있다. 몰래 숨어서 마시는 맥주 맛이 그렇게 맛있는지 몰랐고, 답답한 비행기 안에만 있다가 마주한 드넓은 와이키키 바다와 푸른 산을 보자니 가슴이 펑하고 뚫리기도 했다. 출발지의 시간과 현지 도착지의 시간이 달라지다 보니 마치 내가 시공간을 초월하는 시간여행자가 된 것 같기도 했고, 눈떠보니 다른 세계에서 현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매 순간이 짜릿했고 신기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떠나는 발걸음도 마냥 무겁지만은 않았다. 어차피 스케줄이 뜨면 또다시 올 거니까.

다시가고 싶다 하와이!

갑자기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코로나로 인해 자의 반 타의 반 9시 통금이 생기면서 저 또한 회사에서 통금 시간을 지키며 지내왔던 지난날들이 문득 생갔났어요. 그 당시엔 너무나도 싫었는데 지나고 보니 추억의 한 부분이였고, 이렇게 웃으면서 말할날도 오네요:) 얼른 코로나가 사라져서 , 통금 없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모두가 맘껏 여행하는 날이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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