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뻤나요? 지금 보면 그래요.
나는 날씬해지고 싶었을까? 그게 다였을까?
스물한 살, 거울 앞의 나로 돌아간다. 울룩불룩한 바디라인이 거울 속에 비친다.
'살이 쪄서 예쁘지 않네, 그래서 빼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저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자체가 혐오스러운 감정이 더 컸다. 살이 덜 쪘어도 똑같이 혐오스러웠을 것이다. 내 모습의 장점보다는 단점만 확대경으로 비추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거울을 깨버리고 싶고, 살을 잘라내버리고 싶었다. 의자에 앉으면 누구나 당연히 눌려서 넓적해지는 허벅지가 코끼리다리처럼 느껴졌다. 배는 남산만 해 보였다. 밥을 먹으면 왜 배가 나오지?? (당연한 소릴, 밥 먹으면 배가 나오지 그럼 어디로 가냐)
지금 그때의 나를 보면 어떻냐고? 어리고 탱탱하지 뭘. 지금은 서른의 나만 돌아봐도 '오!! 젊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사십 대가 지나면 노화가 진행되어 살을 빼도 예쁘지 않다. 그 젊고 발랄한 에너지가 없다.
이십 년 전 거울 앞으로 다시 돌아가자면,
'살이 쪘으니까 빼야겠네'라는 논리적인 생각을 했다면 어떻게 빼야겠다는 계획을 세울 텐데, 그게 아니라 내 모습을 지금 보는 것만으로도 괴롭고 수치스러운 감정이 드니 앞뒤 생각 없이 그냥 당장 굶는다. 회피다. 내 몸을 관찰하고 내 상태가 어느 정도 되는지 인지해야 계획을 세울 수 있는데, 내 몸을 정확하게 보지도 않는다. 내 몸도 회피하고, 먹는 것도 회피한다.
이것은 마치 바퀴벌레가 나타났을 때의 반응과 비슷하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벌레를 정확하게 보고 잡는 것이 적절한 방식이다. 하지만 바퀴벌레 공포가 있다면 극도로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감정에 휩싸여 소리 지르면서 도망가버린다. 그리고 다시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 벌레가 있던 곳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꼼짝도 못 한 채 벌벌 떤다. 바퀴벌레처럼, 거울을 보기도 싫고 체중계는 더 끔찍하다. 아니 대체 이 살에 대한 혐오와 공포는 어디서 왔을까? 바퀴벌레처럼 병을 옮기는 것도 아니고, 나와 다른 존재도 아니고, 나 자체인데. 살이 나를 죽이기라도 하는 걸까? 내 능력을 낮추기라도 하는 걸까?
이렇게 살이 무섭고 공포스러운데 내 몸에 붙어있으니 도망치기도 어렵다. 최대한 보지 않고 감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혹은 지나치게 신경 쓰고 하루종일 확인한다. 그리고 살에 대한 공포는 곧 음식에 대한 공포로 이어진다. 먹으면 살이 찌니까. 먹으면 찔까 봐 무서워서 도망쳐버린다. 문제는 음식은 벌레처럼 잡아 죽여 없앨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먹어야 살 수 있으니 하루 안에 다시 마주쳐야 한다. 먹으면 도파민이 분출되는 수단이기도 하다. 한참을 음식으로부터 움츠려 도망치다 보면 몸이 신호를 보낸다. 아주 강력한 식욕 호르몬으로.
얘 죽을 것 같아. 얼른 먹이자.
이것이 아이러니다. 그토록 도망치고 싶어하는데, 그토록 회피하는데, 내 몸의 호르몬은 음식을 외친다. 내 안의 다른 내가 있는 것 같다. 마치 이중인격자처럼, 내 안의 다른 내가 튀어나와 호르몬의 지시를 따른다.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은 대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