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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베어 이소연 Apr 08. 2024

맛있어하는 내가 너무 짜증나

정말 싫은 너에게 난 왜 중독될까

얘 죽을 것 같아. 얼른 먹이자.


몸은 식욕호르몬을 미친듯이 내보낸다. 눈 앞이 하얘지도록 배가 고프다.


바쁘지 않고, 혼자있는 시간이 많은 밤이 온다. 덩그러니 혼자 있다보면 '과자 하나만 먹어야지' 하는 생각에 집어먹는다. 그리고 동시에 분출된 식욕 호르몬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와구와구 먹어버린다. 평소에 먹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과자, 빵, 아이스크림 같은 고지방 인스턴트 제품들만 골라 먹는다. 이성을 잃었으니 마구 먹을 수 있고, 이성을 잃고 먹었으니 살이 또 찐다. 굶다가 먹을수록 살이 쉽게 찌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살도 음식도 더 무서워진다. 


공포가 커진다.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뭘 먹어야 살찌지 않는지에 대한 인지가 완전히 무너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먹는 것에 대한 갈망이 커진다. 못먹는다고 생각하니 더 먹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먹을 것 생각만 한다. 뭘 어떻게 조금만 먹을지, 이걸 먹으면 살이 찔지 고민만 한다. 길거리를 걸어가면 온통 먹을 것만 보인다.  




이 이중적인 심리는 유년시절 학대하는 부모에 대한 감정과 비슷하다. 


1. 부모에 대한 사랑을 갈망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학대당하고, 상처받고 두려워하지만 그럴수록 애정결핍은 더 커지는 이중적 감정. 그래서 섭식장애의 증상이 깊고 오래된 사람일수록 학대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2. 아이러니하게도 반대상황도 똑같다. 지나치게 온실 속에서 보호받으며 작은 선택과 의사결정 하나까지도 부모가 다 대신 해 주었던 사람들 또한 부모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을 가진다. 너무 사랑하는데, 너무나도 벗어나고 싶다. 늘 옆에 있으면서 의존하고 싶지만, 그만큼 도망치고 싶다. 


먹는 것이 너무 좋고 행복하지만, 이 의존성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의 갈망. 폭식하고 구토하는 것은 이런 이중적인 마음의 행동화다.


먹는 게 너무 달콤하지만 동시에 먹는 게 정말 싫어
맛있어하는 내가 너무 짜증나


내 경우는 전자였다. 

학대라는 표현은 마치 부모를 악마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도하지 않은 경우에도 아이들에게는 학대가 될 수 있다. 아이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없어도, 잘못된 양육방식과 부모의 불안정한 정서가 만나면 학대와 정서적 방임이 이루어진다. 내 유년시절은 정서적 학대와 정서적 방임, 지나친 동일시, 그리고 훈육이라는 포장을 한 신체적 학대까지 복합적인 경험들이 어지럽게 얽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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